일본인은 과연 재즈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걸까 (I)

무라카미 하루키

며칠 전 지인이 보내준 일본 재즈 전문지를 읽고, 미국의 인기있는 젊은 흑인 재즈뮤지션 브랜포드 마살리스가 미국판 ‘플레이보이’지 인터뷰에서 일본인은 재즈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발언한 것을 알게 됐다. 이 발언은 일본에서도 꽤 화제가 돼서, 이에 대해 재즈 관계자 몇 명이 의견을 표했다. “그러고 보니 그럴 수도 있다”는 사람부터 “당돌하네. 일본인만큼 재즈를 정당하게 평가하고 이해하는 국민도 없을 텐데”라 하는 이까지, 다양한 형태를 띠었다. 그러나 어찌됐든 자기들이 예전부터 재즈라는 음악에 호의를 갖고 진지하게 대해 왔다고 자부해 마지않는 일본의 재즈 애호가들에게는 이번 마살리스의 발언이 냉수마찰 같은 셈이어서 다소 쇼크였을 것이다.


마살리스가 발언한 요지는 다음과 같다. “일본인들은 이유는 몰라도 역사와 계승에 관련된 것들에 사족을 못쓴다. 흔한 타국 국민들과 달리 그들은 재즈라는 걸 미국 체험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고 잘 이해하고 있냐 하면 대부분 그렇지 않다. 적어도 내 콘서트에 온 사람들은 그렇다. 모두 ‘얘네들 대체 뭐 하는 거야?’라는 얼굴로 멍하니 우리를 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다들 굳이 들으러 온다. 클래식 음악과 똑같다. 누가 이게 좋은 음악이고 들을 필요가 있다고 말해줬으니 들으러 오는 거다. 그렇게 와서는 머리를 한번 갸우뚱하고 박수를 짝짝 치고 돌아간다. 대형 콘서트 홀의 청중은 어쨌든 기묘하다. 소형 클럽은 더 힙하고, 주인도 좋은 사람들이다. 친절하고 말이다. 맛있는 음식을 주기도 하고 내가 원하면 매력적인 여자를 소개해주기까지 한다. 난 사양하지만.”


이 발언을 읽고 먼저 든 생각이, 마살리스가 하는 말이 요 몇 년 사이 미국 흑인층 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지는 반유대주의 정서와 상당히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이건 일본인이 재즈를 이해를 하고 못하고의 단순한 음악적 훈계로 끝나지 않을 모양새다. 이번 발언이 뿌리를 둔 문제의 근원이 보기보다 훨씬 심각하지 않을까 싶다.


잘 알려진 것처럼 1960년대 전반 미국 정치의 거대한 태풍의 눈이 됐던 공민권운동의 현장에서 흑인과 유대인은 손을 잡고 공동투쟁을 펼쳤다. 동부의 젊은 유대계 미국인들이 흑인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속속 남부로 와서 흑인들과 말 그대로 노고를 같이했다. 같은 미국내 피탄압 소수민족으로서 함께 들고일어나 사회적 공정과 정의를 외쳤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분위기가 크게 변했다. 일부 흑인 지도자들이 요 몇 년 사이 놀라울 정도로 직접적인 반유대주의적 프로파간다를 개시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우리를 도와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결국 우리 운동을 이용해 자기들의 정치적 우위를 다지려는 것일 뿐 흑인의 지위향상 같은 건 처음부터 관심도 없지 않았냐, 그 증거로 유대계 미국인들은 대부분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고 위세를 떨치는데 비해 흑인들은 변함없이 유형 내지는 무형의 사회적 압박을 받으며 실질적으로는 슬럼으로 내몰리지 않았냐는 것이다. 도회지에 사는 젊은 흑인들이 특히 유대인에게 깊은 반감을 품은 모양인지 실제로 인종대립으로 말미암은 유대인 살인사건도 몇 건 일어났었다. 지역에 따라서는 유대계와 흑인의 큰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 중 양쪽이 코를 맞댈 만큼 가까이 사는 뉴욕에서는 이런 대립이 상당히 심각한 문제다. 전통있는 흑인 대학 하워드 대학은 학생 사이에 대립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로 퓰리처 상 수상자인 유대인 학자의 강연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바람에 유대계의 격분을 사기도 했다.


60년대의 공동투쟁의 기억을 아직 생생히 품은 옛 세대의 흑인들은 문제가 있더라도 옛날과 비교해 흑인의 사회적 지위가 크게 오르지 않았냐 하겠지만, 도회지의 높은 실업률과 만연한 마약, 거의 일상이 된 총기 관련 폭력범죄, 10대 소년의 압도적인 사망률과 10대 소녀의 압도적인 사생아 출산율 등 돌파구가 없는 숨막히는 환경에서 자랄 수밖에 없었던 젊은 흑인층에게는 법적 평등이라는 게 결국 그림의 떡이다. 실제로는 레이건 대통령 이후의 미국은 번영기 때든 불경기 때든 ‘가상현실’스러운 빛 좋은 간판을 걸고선 뒤에서는 흑인을 대거 포함한 저소득층을 소외함으로써 효율을 추구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흑인들이 느끼는 극도의 좌절과 분노가 때때로 바람직하지 않은 반유대주의로 이어진다. 이스라엘에 무력으로 봉쇄당해 영토를 빼앗긴 팔레스타인을 향한 일반적인 동정심도 이런 경향에 박차를 가했다.


(계속)



원작: 村上春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