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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창 May 12. 2023

방과 후 티 타임 #4

라면과 홍차의 고향 .상


 차에 관한 글을 쓰는데 자꾸 라면에 대해서 말하게 됩니다. 어쩌면 차는 라면이나 밥만큼 일상과 밀접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 라는 말이 있습니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듯 흔하게 있는 일이라는 말인데요. 예전에는 그만큼 차가 우리 생활과 밀접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자! 여러분이 앞서 설명서와 제 지시대로 잘 우려낸 홍차가 왜 그냥 마시면 맛이 없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죄인(홍차)을 신문하면서 먼저 이름과 나이 출신지를 물어봐야 합니다.
그래 00년 0월 제조 홍차! 너 고향이 어디니?”
…묵비권? … 안타깝게도 차는 말이 없습니다. 원산지 정보를 봅시다.


제(필자) 고향은 충청도입니다. 산 좋고 물 좋은 곳. (어디든 안 그렇겠습니까 만은…) 논산에는 딸기가 좋고 부여에는 수박이, 금산에는 인삼이 유명하고 그 옆 추부에는 깻잎이, 바로 붙어있는 우리 동네에는 포도가 유명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우려낸 차의 고향은 어디일까요? 아마 앞장의 꼬임대로 차를 샀다면(밀크티를 위한 홍차티백) 인도와 스리랑카, 케냐 등지에서 재배된 차 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혹시 라면의 고향이 어디인지 아시나요? 라면의 탄생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일본에 정착한 중국인들이 만들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그 음식이 일본사람 입맛에 맞게 변형되고, 쉽게 먹을 수 있도록 개발된 형태가 인스턴트 라면의 시작입니다. 그러던 라면(인스턴트 라멘)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됩니다. 자, 여기에서 영국식 홍차와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현지화 과정을 거치게 된 것이죠.


차 나무의 고향은 잘 알려진 대로 중국입니다. 차 나무의 학명 Camellia sinensis 중 라틴어 sinensis는 ‘중국의’이라는 뜻입니다. 중국에서 태어난 차가 흘러 흘러 영국으로 들어가고, 차에 매료된 영국인들이 비싼 중국차 수입에서 벗어나려 식민지 국가에서 대량으로 차를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어디 원조집을 뛰어넘는 일이 쉽겠습니까? 석박사들이 다모여서 다양한 노력과 방법을 통해 재배와 제다방법을 연구해 봤지만 아쉽게도 중국 본토의 홍차와는 점점 멀어져만 갔습니다. 물론 우리 매운맛 라면처럼 고유의 맛을 찾아갔지만, 녹차처럼 은은하게 즐기던 중국식 홍차와는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있는 쓰고 떫은 홍차 한잔은 그런 존재가 아닐까 합니다. 처음 라면을 먹는 사람이 불*볶음면이나 辛熱한 맛의 라면을 먹는 격과 다를 바 없는 것이죠. 물론 우리 민족이라면 후루룩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라면을 처음 먹어보는 사람이라면 과연 고역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분식점에서 라면을 주문합니다.  찌그러진 양은냄비에 물이 끓어오르면 면과 수프가 들어가고, 이내 파와 달걀이 찬란하게 수놓아집니다. 그릇에 담긴 라면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아리따운 봄빛을 닮은 단무지와 잘 익은 배추김치가 함께 곁들여집니다. 보통 그렇지 않나요? 저는 그 라면을 영국식 홍차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칩시다.)

간단하게 대입해 봅니다. 라면은 홍차티백이 되고 달걀은 우유나 크림이 됩니다.(제발, 그렇다고 칩시다.) 마법의 가루(맛의 근본)와 후추는 설탕과 꿀, 단무지와 김치는 레몬과 사과로 바꿔보겠습니다.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나요? 흔히 영화나 만화에서 보던 홍차를 마시는 모습 말입니다.


보통은 우려낸 홍차에 우유를 넣어 마십니다. 기호에 따라 꿀이나 설탕을 첨가하기도 합니다. 저는 가급적 설탕을 넣지 않습니다. 차의 향과 맛이 가려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인데, 그저 개인의 취향입니다. 아침에 라면 역시 밀크티가 제격 이겠지만 점심시간이나 오후라면 홍차에 레몬 몇 조각을 넣어 마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지친 몸과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에너지 음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레몬이 없다면 사과조각이나 딸기도 좋습니다. 홍차의 향과 제법 잘 어울리면서 약간의 단맛이 돌게 하므로 마시기 한결 쉬워집니다. 저 쓰고 떫은 홍차를 그냥도 마시지 않냐고요? 당연히 그냥 마시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辛熱라면을 스트레이트로 끓여 먹을 수 있듯, 홍차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냥 마실 수 있습니다. 근데요. 사실 그냥 마시기에 거북한 건 고수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원래 홍차는요… 아 차차茶... 차가 식어갑니다.


자! 차가 더 식기 전에 마셔야 합니다. 더 많은 이야기는 차 마신 뒤에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우유나 과일을 퐁당 해서 마셔보세요!


끝으로 차를 사랑했던 소설 동물농장과 1984를 지은 영국의 작가 조지오웰이 차에 관해 쓴 글을 첨부합니다. 번역된 글은 찾아서 읽어봅시다. 그의 산문집 <조지 오웰 산문선> _열린 책들 中 ‘맛있는 차 한 잔’이라는 글에 잘 번역되어 실려 있습니다. 저작권 문제와 홍차 마시는 방법에 대한 견해차이로 원문 이미지만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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