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통 두개, 한쌍으로 버려지면 덜 서러울까

버리기 위한 노력

by 명랑한김작가



버리는데도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가.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버리려 하는 거겠지.

차라리 가지고 있어야 하는 이유를 찾는 편이 깔끔한 결과를 내어 놓을지 모른다.

누가 줬는지도 모르는 필통 두 개를 나란히 앉혀 놓고 설득이라도 하려는 듯 마지막 촬영을 한다. 누가 준 선물인지 기억나지 않는 걸로 봐서는 누군가의 정리 대상이던 물건을 이어 받은 게 분명한데 나도 참 문제가 많다. 내 취향도 아닌데 왜 받아서 고민거리를 만들었을까?

받는 것보다 버리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인데, 갖은 물건이 많을수록 고민과 불안은 비례적으로 많아지는 거라는데, 그래서인지 늘 고민이 한 보따리다.

이제 시원하게 버려보고 싶다. 내 것일 이유가 없는 물건들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한 쌍으로 버려지면 덜 서러울까?

일부러 그런건 아닌데 어린 왕자에게 짝꿍이 생겼다.



어린 왕자이기 때문이었을까?

저 얼굴을 보고 차마 버리기는 쉽지 않다.

심플한 디자인이어서 필기구 몇 자루 넣어 다니기에 좋았다. 게다가 가볍다. 내가 설득 당하고 있는 건가?

아냐, 왠지 모르게 추레한 냄새가 나기도 했어. 빨간색 필통은 또 뭔가. 내 손에 들어온 이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새거라 아까워서 누굴 줘야 할지 고민해야 했던, 잘못 배달된 우편물과도 같은 빨간 필통의 웃는 얼굴은 어떻하고.

필통 두 개 버리는데 이렇게 힘들어서야 무슨 정리가 되겠나. 쓰레기봉투를 채우는 건 패스하고 바보 같은 어린 왕자 표정도 무시하고 당장 묶어서 버려 버렸다. 물건하고 인사하는 것도 이제는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