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종 버전의 ‘전우’ 소감>

by 성대진


고 피천득 선생이 아사코와의 ‘인연’을 평생 못 잊었듯이, 나는 드라마의 첫사랑과 같은 ‘전우’를 평생 잊지 못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런저런 사정으로 드라마에 집중하기가 어려웠고, 그냥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우연한 기회에 2006년 한예슬의 열연이 빛나는 ‘환상의 커플’을 보고 난 후에 단 한 번도 드라마를 처음부터 다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무려 2020년이 되어서 유튜브를 통하여 우연히 평생 못잊던 나시찬 버전의 1975년판 전우(나시찬 버전)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감동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무심한 세월탓인지 나시찬 버전의 엉성함이 따발총처럼 눈에 들어왔다. 나시찬 소대(드라마에서는 나시찬이 ‘지대장’으로 불렸다)의 주력무기는 미군의 M1소총이었는데, 고작 8발밖에 장착되지 않는 소총으로 무려 10여분동안 전투에 임하면서 탄창을 가는(reload) 장면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무한발사신공’을 발휘하는 괴력이 짜증이 났다.


그 무렵 TV에서 일본의 ‘과학닌자대(科學忍者隊)’의 원작을 ‘독수리 5형제’라 번역한 만화영화가 유행하였다. 어린 마음에도 독수리 형제들의 단순한 표창에 악당들인 개럭터용사들이 우르르 죽어나가는 것이 짜증났다. 표창이 그리 대단한가! 아무튼 나시찬 소대원들이 발사한 총알은 스치기만 해도 인민군들은 ‘으악!’을 연발하는데, 도무지 따발총(Ppsh-41)을 아무리 갈겨도 나시찬 소대원들은 기껏해야 다리나 팔정도를 스치는 정도였다. 실은 그러한 황당한 시츄에이션은 미국의 한시대를 풍미했던 서부영화에서도 무수히 반복한 클리셰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리 반 클리프는 리벌버만으로도 백발백중의 괴력을 발휘했다.


나의 아버지는 모두 10남매였다. 남자형제가 6명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일제시대 학도병부터 6.25참전용사는 물론 베트남파병용사까지 보유한 용감한 형제들이었다. 셋째 백부님이 그 유명한 백마고지 참전용사로 무공훈장까지 받은 분이었는데, 생전에 나에게 한 말이 있다.


- 영화나 드라마에서 조준사격하는 것 있잖냐. 그거 전부 거짓말이야. 실전에서는 하늘에다 대고 쏘는 것이 대다수야. 머리 위로 총알이 난무하는데, 조준사격을 하는 게 말이나 되냐!


기습을 하거나 개전 초기에 조준사격을 하는 경우는 있지만, 정작 교전에 임해서는 그냥 하늘에 대고 쐈다는 것이 정확한 사실이라 증언을 했다.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머리를 내밀고 조준사격을 하기는 본능적으로 어렵다. 셋째 백부님이 조카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 그것이 사실이리라 본다. 그리고 고지를 향해서 달려가는 용감한 국군의 대다수는 농부, 어부, 일용근로자 등 주로 하층계급의 사람들이었다는 증언도 단골레파토리였다.


나시찬 버전에서 소대원으로 등장했던 강민호(삼성 라이온즈의 포수와 동명이인이다)가 1983년에 소대장으로 다시 열연을 펼치는 1983년판 버전 전우(강민호 버전)에서도 상황은 대동소이했다. 여전히 인민군은 ‘스쳐도 으악!’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총알을 맞아도 여전히 인민군의 살과 뼈는 고사하고 피 한방울 흘리지도 않았다. 나시찬 버전과 강민호 버전은 그냥 흑백에서 칼라로 화면만 바꾼 수준이었다.


유튜브에서 처음으로 접한 것이 바로 이 2010년판 전우(최수종 버전)이었다. ‘블랙호크 다운’,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이미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국민들을 의식해서인지 시작부터 기존의 나시찬 버전이나 강민호 버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인민군의 유혈이 낭자한 장면과 팔 다리가 잘리는 장면이 비로소 등장했다. 이미 헐리우드영화에서는 오래 전에 등장했던 사실감 넘치는 장면이 이제야(!) 등장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6UzQH2xIVY


‘존 윅’ 시리즈가 사실감이 최고인 이유는 실제 장탄수와 정확하게 존 윅의 발사탄수가 일치하며, 반드시 탄창을 가는 장면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기본 중의 기본인 장면인데, 그동안 서부영화나 주윤발의 ‘영웅본색’시리즈에서는 무한발사신공을 너무나 남발했다는 반성에서 영화에서 의도적인 삽입장면이 바로 탄창을 가는 장면이다. 최수종 버전에서도 탄창 가는 장면은 찾기가 어려웠다.


최수종과 이태란의 열연에는 나름 박수를 치고 싶지만, 전장에서 생뚱맞은 신파의 남발이 무척이나 짜증이 났다. 전쟁 속에서의 트라우마를 그리려는 정태우의 등장은 어색하기만 했다. 전장에서 피는 꽃이라는 말을 구현하려는 제작진의 의도는 나름 이해는 하겠는데, 극의 흐름과 어울리지 않는 전우애의 부각과 애정라인의 형성은 부자연을 넘어 불필요하기만 했다.


그러나 저러나 이 드라마가 방영된지 무려 10년이나 지났음에도 이제야 보는 내 상황이 꿀꿀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시찬 버전에서 나름 업그레이드된 ‘전우’를 봤다는 기쁨은 맛 볼 수가 있었다. 국민들은 사실감 만점의 헐리우드영화에 이미 중독수준으로 눈이 익었다. 향후에는 전쟁드라마를 제작하기가 무척이나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추려면 천문학적인 제작비가 당연지사인데, ppl이 없으면 멜로드라마의 제작도 어려운 것이 현재 방송국의 사정이 아닌가! 그래서 ‘전우’를 보면서 나름 소득을 얻었다는 위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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