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8점을 주었더니 화를 냈다
10점 만점에 8점은 나에겐 꽤 좋은 점수다. 학교 다닐 때 85점을 맞으면 그런대로 기분이 괜찮았다. 우리 아이들이 85점을 맞으면 난 잘했다고 칭찬한다. 내 딸아이는 항상 A를 받았다. 그리고 성적을 위해 무척 열심히 노력했다. 엄마(ex-wife)를 닮았다. 엄마는 85점에 만족하는 수준 떨어지는 아빠를 약간 경멸했다. 내가 나온 대학을 들먹이며 따라지 학교라고 했다. 자신은 아이비를 졸업해서 최고의 Law firm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내가 미국대학원에 있을 때 난 1년 만에 졸업을 했다. 수업을 일주일에 5개 정도 들으며 남들 2년 공부할 수업을 1년 안에 끝냈다. 빨리 일자리를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B만 받아도 만족했다. A를 받을 실력도 않됐을뿐더러 A를 꼭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1년 안에 졸업할 수 없었고 회사에 일찍 취업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덕분에 난 빠르게 미국에 정착할 수 있었고 운좋게 젊은날에 상당한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난 B를 좋아한다. 중요한건 성적이 아니라 그 성적으로 내가 뭘 할수 있느냐 하는것이다. 8점의 평가를 받아도 둘 사이가 행복할수 있도록 서로에대한 신뢰와 사랑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난 아내가 나에게 8점을 준다면 생각보다 좋은 점수라고 고마워 할것 같다. 객관적으론 7점인데 남편이라서 1점을 더 준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가 서로에게 반드시 10점일 필요가 있을까?
나에게 8점이라는 점수는 꽤 잘했다는 의미이다. 10점을 받은 사람은 왠지 성적에 집착하는 사람 같고 스스로 잘난 맛에 사는 교만한 사람같이 느껴진다. 10점은 완벽을 의미한다. 여백이 없다.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완벽해서 좋아하지 않는다. 최고의 스펙과 미모를 갖추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이쁜 여자를 좋아할 수는 있어도 반드시 사랑이 우러나오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항상 과부를 불쌍히 여기셨다. 약한 자에게 따뜻한 분이셨다. 겸손은 항상 최고에서 나온다. 지금은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예수님은 분명 내가 닮고 싶은 남자의 모델이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어디가 부족한 사람은 아니지만 완벽한 사람도 아니다. 난 그녀의 모습 그대로가 좋다. 그녀는 항상 10점이라는 칭찬을 받기 원한다. 그래야 더 열심히 하려는 동기가 생긴다고 한다. 그녀에게 계속적인 동기부여를 위해 난 앞으로 10점이라는 칭찬을 해야 되는 걸까? 칭찬에 인색한 나의 생각을 고칠 필요는 있다. 하지만 매번 차린 음식에 10점이라는 칭찬을 던지는 게 관계에 더 도움이 될까? 맛이 없더라도 아내가 헤준 밥상이니까 무조건 최고라고 하는게 지혜로운 남편의 모습이라고 아내는 말한다. 그녀의 생각에 따르면 난 지혜롭지 못한 남편이다.
난 그녀에게 언어가 가지고 있는 맹점에 대해 주제넘게 한마디 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8이라는 숫자와 내가 생각하는 8이라는 숫자가 가지고 있는 개념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의 대화에는 갈등이 발생한다고. 언어가 상징하고 있는 내용이 다를 경우 두 사람은 대화를 통해 같은 말을 하고 있지 않게 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단어도 사람마다 그 크기와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난 쉽게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행동으로 나의 사랑을 표현하고 싶다. 하지만 여자들은 말로도 표현하고 행동으로도 표현하라고 요구한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말로 표현되는 사랑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런 요구는 어느 정도 정당성이 있다. 하지만 쉽게 간과하는 단점이 있다. 나의 마음을 사랑이라는 언어로 표현했을 때 이때 나의 사랑은 실제 내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크기와 다를 수 있고 의미도 다를 수 있다. 왜냐하면 받아들이는 사람이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장님이 커다란 코끼리를 더듬거리는 것과 비슷하다. 어떤 장님은 말랑말랑한 코를 만지작 거리며 그게 코끼리라고 생각할 수 있고 어떤 장님은 커다란 다리를 만지면서 단단하고 흔들림이 없는 게 코끼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떤 게 진짜 코끼리인지 장님들은 알지 못한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인식을 할 뿐이다.
난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나의 언어가 아닌 나의 행동을 통해서 나의 사랑을 인식하길 원한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게 가정을 유지하며 다른 여성들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침실에서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능숙한 남자임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코끼리가 다양한 부분이 있듯이 나의 사랑도 다양한 모습이 있다. 늘 한결같은 남자의 모습도 나에게는 사랑의 한 표현이다. 앞으로 같이 살기고 결정했고 난 이 결정을 깨뜨릴 생각이 없다. 내가 잘못을 하던 아내가 잘못을 하던 남녀 간에 벌어질 수 있는 헤어질 만한 이유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난 나의 결정을 깨뜨리지 않기로 했다.
설령 누군가가 나에게 넌 할 만큼 했다고 위로를 하며 헤어지길 권한다 해도 난 그렇게 하지 않을 작정이다. 설령 여자가 나에게 싫증이 나서 날 떠난다 하더라도 난 쉽게 떠나지 않을 작정이다. 내가 조금 젊었을 때 가장 크게 후회한 사랑이 하나 있다. 난 끝까지 사랑하고 조금 더 오랫동안 기다려주지 못했다. 인생의 후반전에 나에게 주어진 이 사랑의 기회를 같은 실수로 잃을 수는 없다. 말로 자주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방식은 가벼운 언어로는 담을 수 없다.
그녀에게 10점짜리 음식이라고 칭찬하지는 못했지만 난 그녀를 10점 이상으로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생각이다. 나의 사랑은 감정보다는 의지에 가깝다. 때론 내 의지도 약해지니까 나도 그녀로부터 도움이 필요하다. 내 의지가 약해지지 않도록 내 감정이 쉽게 사라지지 않도록 일상의 삶에서 우리는 서로를 아껴야만 한다.
노자는 일찍히 이런 말을 했다.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 명가명 비상명(名可名 非常名) 여러 종류의 해석이 가능하지만 난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해석을 좋아한다.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건 늘 항상 그러한 도가 아니다라는 뜻이다. 노자는 그의 저서 첫머리에서 왜 이런 말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공자처럼 배움의 기쁨을 강조하지 않고 이해하기 힘든 애매한 표현을 그는 던져놓았다. 인간은 뭔가를 정의 내리기 원하고 명백한 진리를 소유하길 원한다. 여자들이 남자가 명백하게 언어로 사랑을 표현하기를 원하듯이. 하지만 세상의 원리(道)는 인간들이 원하는 데로 그렇게 자명하지 않다. 20년을 같이 살았어도 헤어질 땐 한방에 헤어질 수 있는 게 남녀 사이 사랑이다. 평생 너만을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게 여자이지만 인간의 사랑은 그렇게 영원하지 않다. 그저 주어진 하루하루를 아껴주고 옆에 같이 있어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노력을 평생 할 수 있을지 난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오늘 하루를 사랑하듯이 내일도 사랑하며 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