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함이다
언제부터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하면 마음이든 물건이든 완벽하게 채우고 시작하려는 나를 발견한다. 그림을 배울 때, 캠핑을 시작할 때, 등산을 할 때도 차박을 시작할 때도 다 구비하고 시작하지 하면서 채우는 건 없었다.
뭐든 아이템을 다 갖추고 시작해야 끝을 보는 성격이다.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뭔가 부족하다 여기면 흐름이 끊기다고 해야 하나? 개인적인 성향이기는 하지만 같이 사는 내 짝꿍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다.
단점이라면 이러한 아이템들이 나의 공간을 침범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나를 내어주고 들어와야 균형이 맞을 텐데 매번 새로운 것들이 채워지기만 하니 공간이 부족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래서 이제는 뭔가 시작할 때 얼마나 오래 할 것인지, 이것이 아니면 절대 안 되는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새로운 시작의 횟수는 줄고, 한번 시작한 것들의 집중도는 더 깊어졌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는 사람들의 짐이 천차만별이라 한다. 처음 떠나는 사람은 걱정과 욕심에 비례하여 그 짐의 크기가 엄청나다고 한다. 하지만 순례길의 시간이 지나가고 횟수가 여러 번인 사람일수록 오히려 짐이 가벼워진다고 한다.
나도 뭔가 열심히 해보겠다는 욕심이 앞서서 아이템으로 채우는 것이 습관이 된 것은 아닐까? 설연휴를 맞이하여 한라산 등반을 계획 중이다.
겨울 산행을 해본 적이 없어서 또 장바구니에 한가득 담아 놓고 그 리스트를 보면서 갑자기 이런 생각들을 해봤다. 머리로는 이해가 갔는데 마음속으로는 이미 장비를 장착하고 설산을 걷고 있는 내 모습을 새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