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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요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뭘 어떻게 시작하긴, 돈 벌라고 시작했지.

나는 흔히들 말하는 실패한 인생이었다.


대학을 중퇴하고, 배워둔 기술이라고는 하나 없는 런. 정말 밑바닥에 떨어져 어영부영 허송세월을 보내며 방황하 시절이 있었다.


그저 집에서 매일 게임 하고, 밤마다 술을 마시던.

뭐, 그때는 그럴만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지만 자세히 얘기하면 익명성의 보장이 불가능해지므로 앞으로도 깊게 얘기하지는 않겠다.


정말 말 그대로 실패한 인생 패배자, 그 자체였다.

모아둔 돈을 다 쓰고, 끌어올 수 있는 돈을 다 쓰고 보니 어느 순간 라면 하나 살 돈이 없었다.

꼴에 부모님께 신세 지는 한심한 아들놈은 되기 싫었다. 이제 일이라는 것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2018년 12월 말, 그 당시의 나는 28살이었다.


구인사이트를 뒤적뒤적 대니 여러 가지 일자리들이 있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놈 주제에 이것저것 참 많이도 가렸다. 꼴에 선생님 소리 들으면서 양복 입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던 그 허울조차 되지 않는 자존심에 3D업종을 기피했다.

택배 상하차, 공장 생산직, 건설현장 노동 등의 일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해당 업종들을 비하하는 것은 아님을 밝힙니다)


무슨 일을 하면 좋을까.. 뒤적 뒤적대다 보니 레스토랑 주방 막내 구인광고를 보게 되었다.

대충 뭐저시 기하면서 근무조건 내용 등이 있었다.


그중, "소스류를 대부분 수제로 만들기 때문에 배우실 수 있는 장점이 있다"라는 식의 내용이 있었는데, 이 부분에 상당한 흥미를 느꼈다. 해당 업장은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이었는데, 오너셰프님이 양식 외길 인생이셨고 프랜차이즈 시스템에 자신의 소스 노하우를 적용시키셨어서 타 지점에 비해 소스의 맛이 훌륭했다.


나는 무언가 하나 궁금한 게 생기면 해결이 안 되면 잠도 못 자는 성격이라 바로 해당 업장을 검색하여 블로그 리뷰를 찾아봤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아니.. 이건 괜찮은 게 아니라 배워보고 싶긴 한데..? 나는 바로 면접을 신청하였다. 하지 말걸. 아 진짜 하지말걸.


어릴 적, 요리에 대해서 엄청난 재능이 있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요리하는 것 자체를 상당히 좋아했었다.

집에 식당을 운영하시는 분도 없었다. 다만 친할머니가 생전에 요리를 잘하셨었는데, 손이 정말 크셨다.. 거의 뭐.. 응답하라에 어머니 역으로 나오시는 이일화 배우님 정도..?


 번 솜씨를 발휘하시면 그냥 동네잔치를 하고도 남아서 한참을 냉장고를 파먹다 보면 설날이 다가오고.. 또 냉장고를 파먹다 보면 또 추석이 다가오는.. 뭐 조금 과장하긴 했지만 정말 손이 매우 매우 크셨다. 어지간한 NBA 농구선수의 손 정도는  갖다 대지도 못하지. 어림도 없지. 이것이 K-할머니다


어머니는.. 음.. 자세한  나중에 한 번 다뤄보겠다.

사랑해요 엄마.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내가 나중에 효도할게요. 아니 엄마 음식이 맛없다는 소리는 아니라니까 그러네?


우리 집은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요리를 많이 잘하시는데, 아버지가 요리를 평소에는 잘 안 하시는 편이셔서 나는 잘 몰랐다. 잘해봐야 뭐 일반인 수준에서 잘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던 와중, 아버지가 소머리를 사다가 다 손질하고 시골에서 가마솥에 직접 끓이고 그걸 소분해서 냉동해서 여기저기 나눠주고 가져오신 적이 있었다.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왔더니 어머니가 그걸 해동해서 밥을 내어주셨.

뭐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겠어. 사랑으로 먹어야지.


어..? 한 입을 뜬 후, 소금간과 후추를 내 기호에 맞춰서 넣고 한 입을 다시 먹은 순간, 나는 아버지께 바로 플러팅을 날렸다.


아버지, 우리 소머리국밥집하자 아버지는 끓이기만 해요 내가 다 팔게. 가게 이름도 떠올랐어. 부자소머리국밥 어때? 아 아빠 진짜 나 지금 진지하다고!! 아니 이거 왜 맛있는데!!


훗날 아버지가 나에게 본인이 요리사를 해보고 싶었는데, 그 시절엔 요리사라는 직업의 인식이 너무 안 좋아서 할 엄두도 못 내셨었다고, 만약 했었더라면 어땠을까 궁금하다는 말씀을 하셨었다. 나도 정말 궁금하긴 하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정말로 피는 못 속이나 보다.

나는 지금도 아버지 친구분들이 넌 갈수록 니 아빠 닮아간다라고 하고, 고모나 매형이 술 마시고 하는 거 보면 말투 하나하나까지도 아버지랑 똑같다는 얘기를 듣는다.


아버지에게 야나기바보쵸(흔히 말하는 사시미칼) 중 유명한 브랜드인 아리쯔구(한자로는 유차)라는 브랜드의 백2강 혼카스미(이 부분은 궁금하시면 찾아보시길)를 한 자루 선물드렸다. 삥 뜯어가신 건 아니다. 진짜다. 진짜라니까?


이 당시에 한 50만원 정도에 구매를 했었는데 아버지가 참으로 좋아하셨고, 지금도 아주 잘 쓰고 계시며 친구분들께도 니들은 이런 거 없잖아~아들이 준거야 셰프들이 쓰는거야~ 라고 자랑한다고 하신다. 돈을 많이 벌어서 혼야끼 한 자루 사드려야겠다. 제가 가지고 있는거는 제 거니까 건들지 마세요 아버지. 아아, 불효자는 웁니다. 아니 아빠 그건 진짜 안된다니까? 아니 이 아저씨가 이게 얼마 짜린 줄 알고!


지금 생각하면 나에게 요리사로서의 피가 어느 정도 있었고, 하필 그때 돈이 다 떨어져서 구직을 해야 했고, 좋은 배움을 가질 수 있는 업장이 구인을 하는.

마치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이즈리얼의 삼위일체가 완성되었달까. 우스갯소리로는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절대 면접 안 갈 거라고, 인터스텔라처럼 책장 뒤에서 No!! 를 외칠 거라 한다. 우스갯소리같냐? 우스갯소리같냐고.


1월 3 추운 겨울날, 몇 줄 안 되는, 군대 전역한 것 까지도 어떻게든 쥐어짜 낸 형편없는 경력을 기재한 이력서 한 장을 고이 접어 패딩에 집어넣고 위험천만한 눈길 위를 스쿠터를 운전하여 면접을 보러 갔다.


어찌어찌 도착하여 면접을 보게 되는데, 이때의 나는 칼질은커녕 칼의 바른 파지법조차도 몰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똥배짱도 그런 똥배짱이 없었다. 보고 떨어지면 다른 걸 찾아봐야지 정도의 쓰레기 마인드였어서 편하게 갔던 것 같다.

그땐 몰랐지 내가 이러고 살 줄.. 조상님들 제가 아무리 미우셔도 이건 꿈에서라도 말려주시지 그러셨어요!! 아무리 후손 놈이 한심하다고 정신 차리라고 보내는 것도 정도가 있지요.. 흑흑흑..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찌 저에게 이런 시련을..


면접 시간은 해당 업장의 브레이크 타임이었고, 내 면접 전에 두어명이었나 다녀갔다고 하였다.

오너 셰프님과 인사를 나누고 물을 마시며 면접이 시작되었다.


지원동기는 어찌 되냐 요리는 좋아하냐 등등 뭐 형식적인 것들이 대해 물어보셨던 것 같고, 나는 이에 MSG를 조금 치긴 했지만 나름 솔직하게 답을 하였다.

아마 근무를 하는 게 힘들 것 같지만,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는 식의 말을 들었던 것 같다. 음, 떨어졌구먼.


업장에서 뭐가 아쉽다고 반푼이만도 못한 나를 쓰겠는가. 외모가 뛰어나지도 않고, 맨날 술과 인스턴트만 먹어대서 배는 다 나와있고, 키가 뭐 남보다 크지도 않고, 그렇다고 뭐 조리기술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거 없는 나를 왜 쓰겠는가.


업장은 전쟁터다. 학교가 아니다. 학원도 아니고.

당장 전쟁터를 나가야 하는데 총알이 뭔지도 모르는 애를 데리고 나가봐야 인간방패 밖에 되지 않는다. 인간방패를 데리고 어떻게 전쟁을 치를 수가 있겠는가.


나쁜 놈들. 가게 망해라. 날 안 뽑은 걸 후회 할거다 같은 소리는 해봐야 소용없다. 그 당시의 나는 창업이고 뭐고 아무 꿈도 없었고 더더욱이나 뭐 코스트니 프라임 코스트니 이런 건 전혀 모르던 때여서 잘은 모르지만, 인건비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면서 전체적으로 직원을 적게 뽑기 시작하던 즈음이었던 것 같다.


지금 당장 내 밑으로 저때의 나 같은 직원이 들어오면 솔직하게 말해서 음.. 좋지는 않을 것 같다. 솔직하게, 사장님께 말할 거다. 흐음.. 꼭 뽑아야 해요? 그래도 경력자가..아니 아예 할 줄 모르면..궁시렁궁시렁..Blah Blah..


그렇지 않은가? 막내라고 온 놈이 와서 어리바리하면서 있을 거고 뭐 해야 될지도 모르고, 뭘 하라 그래도 할 줄도 모르는 놈이 그 좁은 주방에서 길이나 막고 앉아 있어 봐라.

당장 사장에게 쟤는 집에 보내자. 쟤 데리고는 가게 못 굴러간다. 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말들을 하지 않을까?


나는 하려는 의지와 그러한 것들이 있다면 하나하나 천천히 잘 알려주겠지만, 그것은 내 기준인 거고 나 또한 누군가에겐 매우 나쁜 놈일 수도 있기에 내가 착한 놈이다라는 말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문제는 그 사람이 의지가 있습니다! 라든가, 꼭 요리를 배우고 싶어서 왔습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같은 말들은 누구나 다 뱉을 있는 말 아닌가?


또한 내 기준의 의지와 타인 기준의 의지는 다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내 기준이 옳은 것은 아니다. 아직도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기가 참 어렵다. 그래서 요즘은 너가 사랑하는 사람이랑 일을 하듯이 해봐 라고 하는데, 부부가 운영하는 가게 피터지게 싸우는걸 너무 많이 듣고 봐서 이건 맞는 말이 아닌거 같긴 하네.


아무튼 저렇게 패기있게 뱉어놓고 일이 나랑 안 맞네, 일이 힘들어서 못하겠네 같은 소리 하면서 도망친 사람들이 한 트럭이다. 그중엔 나도 있었고. 그래서 나는 나도 안 믿는다. 이건 진심이다. 화장실 다녀온다하고 사라진 직원도 있었다. 지 옷도 안 가져가고 나중에 택배로 보내라하더라.


그 사람이 의지가 있는지는 행동을 보면 아는데, 이 부분은 그 사람을 지켜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 않는가?

문제는 그로 인해 고통받는 것은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라는 것이다. 외식업계에 발 디딘 지 이제 만으로 한 4년 즈음되어 가는 나는 아직도 많이 부족한데.. 그땐 다들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가 죽일 놈이지 뭐. 우리가 어긋날 때면.


시간이 지나서 벌써 2023년이다. 내가 걸어온 과거에 대해 생각하며 느낀 것은 내가 미숙하던 시절의 나를 고용해 줬던 여러 사장님들에게 참 감사하고, 나와 일을 했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무릎 꿇고 석고대죄를 해도 모자라긴 하다.

그때는 참 고맙고 미안했습니다. 고멘나사이. 아임 쏘 쏘리.


하아.. 역시나 떨어졌구나. 아으 추워 얼른 집이나 가서 이불 속에 들어가야지.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해! 뭐 이따위 생각을 하며 집으로 가는 도중, 스쿠터를 고쳐야 되는 걸 상기하고는 아는 형이 운영하는 오토바이 센터를 방문했다.


센터 안으로 들어가서 인사를 하고 이런 부분이 문제가 있어서 왔다 하였더니 잠깐 앉아서 커피라도 마시면서 몸 좀 녹이라고 하더라. 한 잔 따뜻하이 마시면서 난로를 쬐고 있었다.

형이 일을 보고 와서는 오늘 웬일로 이리 차려입었냐 묻더라.


나는 지금도 항상 심플 이즈 베스트! 를 외치며 편한 게 최고야라는 주의로 살고 있긴 하다. 바지 좋아. 반팔티 좋아.

그때의 차림은 많이도 닳은 검은 구두에, 그냥 OOOO에서 산 무릎 다 늘어난 몇 년 된 검은 슬랙스 면바지, 어디 브랜드인지도 모를 때가 조금 탄 흰 와이셔츠, 보세에서 대충 싸게 산 가다마이에 나의 유일한 피붙이인 친누이가 몇 년 전에 사준 낡은 회색 패딩. 사실 이 때는 옷 살 돈도 없었다.


이 차림을 보고도 나보고 차려입었다고 하니 평소에 얼마나 꾀죄죄하고 후줄근하게 다녔었겠는가. 그 당시 날 좋아해줬던 모 여성분께 깊은 감사, 더 깊은 죄송함을 보내는 바이다. 그 때 내가 너한테 잘했으면 벌써 우리 애기가 유치원을 갈 나이일 텐데. 보고싶다 잘 살고 있니? 꽃길만 걸으렴. 흑흑흑


면접 보고 왔어요.

어디 면접?

저기 OO동에 있는 레스토랑이요

거기 어딘데?

그 뭐시기저시기에요.

어? 거기 사장이 내 고등학교 1년 직속 선배인데?


웬걸, 삼위일체에 오른이 업그레이드를 해 준 격이다.

알고 보니 나와 비슷한 전공을 하려고 했었고, 그분 또한 중퇴를 하고 바로 요리를 시작하셨던 것이었다.

오토바이 센터 형이 바로 레스토랑 사장님께 전화를 걸더니 오늘 면접 본 사람 중에 OOO 있죠? 걔 제 후밴데 좀 넣어줘요 라는 말로 취업알선을 주었. 학연지연혈연이 문제다.


다음날 저녁,  저희 하는걸로 하시겟어요!?라는 문자를 받았다.(실제로 아직도 핸드폰에 그 문자가 있다.) 합격했다는 소리다. 젠장. 내가 저 때 아팠어야 했어. 그냥 면접 안 가고 그냥 집에서 게임이나 했어야했어. 술이나 마실걸.


참.. 사람 사는 게 웃기지 않는가?

그 추운 날, 택시비도 없어서(그 동네는 버스노선이 참 개판이다)스쿠터를 타고 그 위험한 눈길 위에 올라서 살살 살살 천천히 덜덜 덜덜 떨면서 도착한 내가 마침 또 스쿠터를 맡겨야 되는 것이 생각나서 센터를 갔는데 웬걸, 센터 사장형이 레스토랑 사장님의 직속 후배일 줄이야! 진짜 내가 들어도 "야 MSG 좀 적당히 쳐라 미원을 다 때려부었네"라고 할 만도 하다만, 이게 진짜다.


참 어찌 보면 하늘이 준 기회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면서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해서 이러고 살까.. 싶기도 하고 니들은 요리하지 마라.. 이딴 얘기를 하면서도 요리 얘기가 나왔다 하면 아주 그냥 신이 나서 날이 새라 떠들어대고.. 힘들어서 휴가 좀 가야지 하고 휴가를 가서도 스타지(Stage, 무급으로 일하면서 배우는 것이라고 보면 됨)를 하면서 엄청나게 행복해하고.. 에휴 입맛도 없다 하면서도 음식을 먹으면서 이건 어떻게 맛을 냈는지 알아내려 혈안이 돼서 미쳐있는 지금의 나를 보면 정신병자가 아닌가 싶다.


나는 이젠 그냥 외식업 하다 죽을 운명이구나 생각하니 어지럽다. 니들은 진짜 하지마라. 하지 말라면 걍 하지마. XX 하지 말라고. 형이 하지 말라면 하지마라. 맞을래?


참 파란만장하지 않은가. 내가 돌이켜봐도 참 골 때린다. 충격적인 건, 아시작도 안 했다. 이거 지금 튜토리얼이야. 어질어질하제? 그니까 하지마 요리사.


우당탕탕 허접 요리사의 이야기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무나도 내려가고 싶고, 옆에 깔린 길로 가고 싶어서 계속 쳐다보지만 38선이 쳐져있는지 갈 수 없는 길이기에 그저 내가 가야 하는, 갈 수밖에 없는 가시밭길을 그저 순례길에 오른 사제처럼 한 발 한 발 걸어 나가는 중이다.


이렇게 한심한 이유로, 쓰레기보다 못 한 정신머리 본 면접은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인 찬스 타이밍 하나는 기가 막혔다.


2019년 1월 4일, 요리왕 비룡이 되겠다!라는 씨알도 안 먹히는 꿈을 가슴에 품고 나름대로 대망의 첫 출근.


 직업은 그렇게 요리사 되었.



이게 인터뷰 조금만 한다는 게 너무 길어졌네요.

제가 살면서 인터뷰라는걸 처음 해봐서

이게 조절이 안되네요.

제 얘기 듣느라 고생하셨어요 기자님.

귀에서 피나시는 거 아니죠?

산재됩니까? 농담이에요 하하.

아 재밌게 들으셨다니 다행이긴 합니다만,

제가 이제 내일 또 출근야 되기도 하구

밤도 많이 늦었으니까 다음에 마저 통화해요.

음.. 제가 시간 날 때 전화 한 번 드릴게요.

네, 다음에는 조금 짧게 말씀드려볼게요.

잘 될런지는 모르겠네요 하하.

네, 편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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