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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 후로는 뭘 하셨어요?

그냥 그냥 지냈어 진짜로

그렇게 나는 사장님보다 빠르게 파스타를 볶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었다.


하지만 얼마지나지않아 친족이 돌아가셨고, 사장남의 배려에 한 5일 정도를 쉬었던 것 같다.

쉬고 돌아왔을 때, 사장님은 나를 옆 건물에 운영하는 카페로 데려가셨고, 나는 퇴직을 하게 되었다.


경영상의 문제가 있었고, 그럼에 의해서 아쉽게도 근무가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과 다르진 않지만 그 당시에 나는 뭐랄까..뒤끝이 없었던 사람이었다.

어떠한 것에 대해 끝을 본 적이 없었고, 금새 흥미를 잃고 지나가는 그런 사람이었다.


조리시간에 대한 압박을 받던 요리의 ㅇ자도 모르던 놈이 시간으로 사장님을 이겼다는 건방도 있었다.

정말 많이 건방졌다. 그게 요리의 전부인 줄 알았으니까.


지금 이 글을 읽는 요리사들은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불을 이빠이 땡겨서 하는 요리가 과연 최선의 요리가 될 수 있는가?

지금의 나는 차라리 조금 더 조리의 시간을 늘리더라도 최선의 요리를 내어주고 싶거든.


지금 당신들이 아는 그 레시피 하나가 요리의 전부가 아니라는거를 꼭 명심해라.

진짜 이거 모르고 나대다가 쥐어 터진다.


그렇게 나도 당장에 나가도 밥은 사먹을 수 있어서 쿨하게 얘기했다.

"사장님의 입장도 이해합니다. 그동안 부족한 저를 많이 가르쳐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당장의 밥값이야 되니까 천천히 좀 더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알아보려 했다.


사실은 그 당시에 생각했던 것은 정육의 세계였다.


발주서들을 내가 먼저 보고, 촬영하고 집에서 코스트라는 것을 짜다보니 그 당시엔 고기에 대한 코스트가 지금과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했다. '내가 정육쪽의 유통망을 알게된다면, 코스트를 더 저렴하게 해서 고기관련사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뭐, 이것은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이 생각을 접어라.


육류의 기본은 1차 사업이다. 국내에 많이 유통되는 육류인 돼지, 소는 1차 적으로 축사에서 나온다.

여기서 적당하게 키워진 것들은 도축장으로 옮겨지고, 도축장에서 해체를 전문으로 하는 뭐..발골을 한다고 하지? 그런 곳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가서 해체가 되고 진공 포장이 된다. 그리고 거기서 마트로 연결이 되거나 하는데..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본이 많다면 글쓴이에게 꼭 연락 주세요. 나도 마진 좀 보게.


마트 정육에서 일할 당시가 2019년인데, 이 당시에 농협 한돈 삼겹살 기준이 1790원이었다. 요즘 보니 2400원대이더라. 뭐 마트별로 2430 2470 2490하는데, 이건 끝자리 가격을 낮춰서 소비자들이 구매하게 하는 판매법이었지만 요즘은 딱히 먹히지는 않지만 아직도 맨날 그 십원단위를 많이 강요하더라. 2470과 2500은 다르다고 뭐 그런 방식이라 어떤 마트들을 가도 항상 저런 공식들이 존재한다.


뭐 그 당시에 한 1kg으로 들어오는 단가가 물돼지(정말 상태 안좋은) 삼겹의 경우 10000원,  좋은거는 한 15000원까지 들어왔었는데, 평균적으로 마트에 들어오는 단가는 11000원이었다.

이걸 보고, '와..그냥 냉장차가 한 대 있으면 내 가게를 차리면 1kg에 순이익이 8000원은 나겠네?'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이야 부가세, 소득세, 월세 등등 생각을 하지만 그 당시엔 그런걸 몰랐으니까.


그렇게 일을 하다가 육절기에 오른손 검지 손가락 두번째 마디 안쪽 일부가 날아갔다.

내가 겁이 많아진 이유는 아마 이 때의 경험이 크다고 생각한다. 

참 다행이다. 만약 심각하게 손이 빨려들어갔다면 아마 이 글을 타이핑 할 때 나는 한 손가락이 없었을거니까.

기계에 의해서 다치는 것은 칼로 다치는 것과 그 결이 다르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당시에 쇠붙이가 내 살을 가르며 들어오는 그 느낌과 기분은 너무나도 생생하다.


그 당시에 근무했던 마트에서는..하..ㅋㅋ진짜 속 된 말로 존나게 너무했다.

나에게 산재처리도 안해주려했고, 오른손 검지에 붕대를 그득그득 감은 나에게 마감을 혼자 하라고 지시하였으니까.


그 당시에 그 마트는 박리다매로 운영을 하는 곳이었고, 지금도 명맥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정육 오픈멤버가 7명이고 마감멤버가 1명이었는데, 사실 나는 내가 칼질이나 기계를 다루는 것이 선배들에 비해서 익숙치 않았기에 내가 마감조를 자처하고 나섰다.

아무리 그래도 손가락 살이 날아가서 힘도 안 들어가는데 마감을 혼자 하라고?

진짜 지금이면 쌍욕을 날리면서 노동부를 찾아갔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그런것이 쉽지 않은 분위기였다.


뭐 어떻게해 손가락 날아간 놈이 혼자서 정육파트에서 쓰는 그 큰 도마 두세개를 혼자 옮겨가면서 닦아가고 재고 비워진거 다 채우고 하면서 발주까지 하면서도 욕을 쳐먹는데.

그래요 더러워가지고 내가 나가야죠. 지금이었으면 진짜 뼈를 발라먹었을텐데 아쉽다.

그렇게 저는 두번째 직장을 관뒀습, 아니지 때려쳤습니다.









와..근 1년이 좀 안되는, 11개월만에 브런치에 글을 씁니다.

정말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어요. 제 인생을 좀 돌아보면서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시작을 했는데, 생각외로 삶이 순탄치가 않아서 정말 너무나도 오랜만에 글을 게시합니다.

물론 제 글이 조회가 많이 되지도 않는 것도 알기에 안 쓰게 된 것도 있지만 이건 그냥 제가 게으른 것에 대한 핑계일뿐이죠.


제 순탄치 않았던 이 외식업 일과 그 외의 일들을 거치고 거쳐 이제 창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도 이제 사장이다!!!!!!!!! 끼얏호오!!!!!!!!!!!!!!!

제가 아직은 제 모든 일들을 말하지 못했지만, 저 진짜 요리에는 진심인 녀석입니다.


혹시라도 이 몇 안되는 글을 읽고 저에 대한 궁금한 점이 있으신 분들은

경기도 안산시 고잔1길 48, 천혜빌딩 2층에 있는 수제요리주점 "담화"에 방문하셔서 너가 그녀석이냐! 하시면 제가 응대해드리면서 많진 않지만 조금의 서비스라도 드리겠습니다.


많이들 와주시면 이 가게를 차리기 위해서, 차릴 준비를 하면서, 차리다보니 첫 창업이라 겪었던 고난들과 차린 후에 일들도 천천히 썰 풀 수 있도록 절치부심 노력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응애 :)


오셔서 제 브런치를 보여주신다면 제가 아주 머쓱해하면서 "아유 이게 뭐라고 보고 오셨어요 하하" 하면서 슬며시 뭔가를 드릴테니까 방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진짜 다음 글은 최대한 빨리 쓸 테니까 많.관.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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