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자연의 힘으로 작동하는 대지의 얼굴
하천생태를 연구하던 시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하천은 어떤 모습일까 너무 궁금하던 때가 있었다. 산에서 물이 샘솟아 어느 하나 거스름 없이 낮은 곳으로 흐르고 그 주위에 흙을 깎아 바다까지 실어 나르는 하천. 비가 오면 침식과 범람이 반복돼 수시로 바뀌는 물길. 비가 그치면 물길 주변으로 풀이 자라나 질척이는 넓은 초원. 그 안에 다양한 동식물들의 서식처가 생겨나는 순수 자연의 힘으로 작동하는 환경. 글로만 배운 그런 역동적인 풍경이 실존하긴 할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태초와 가까운 자연, 브랜던 벨리에서 찾았다.
마을 뒷동산치곤 지나치게 컸다. 나무가 없어서일까. 육중한 속살이 드러난 산은 왜인지 더욱 크게 느껴졌다. 그 산을 향해 길을 따라 깊숙이 들어갔다. 거미줄처럼 퍼져 흐르는 물길에 길이 끊겼다. 더 이상 사람이 다니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질척거리는 땅을 피해 밟기 좋은 땅을 찾아 발걸음을 이리저리 옮겼다. 폭포와 바위들을 이정표 삼아 대자연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더 이상 마른땅을 찾을 수 없는 습지대에 들어왔다. 스펀지처럼 한가득 물을 머금은 땅은 어느 곳에 발을 디뎌도 발목까지 물이 차오른다. 습지대를 피해 높은 곳을 찾아야만 했다. 조금만 더 들어가면 산 가장자리에 절벽능선이 있다. 간신히 그곳을 따라 올랐다.
쉼터에 앉아 펼쳐진 풍경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주변 산맥에 둘러싸인 이곳은 물이 모이는 커다란 물그릇, 하나의 유역이다. 비가 오면 산맥 가장 높은 곳, 분수령에서부터 물이 모여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른다. 하천은 차고 넘쳐 주변으로 넓게 퍼져간다. 비가 오면 물이 차오르는 범람원, 사람의 손길이 닿았다면 홍수터라 불렸겠지만 이 땅에서 홍수는 재해가 아니다. 이 것은 생태순환의 위대한 과정이다. 습지대에 고인 물은 작은 동물들의 인큐베이터다. 비가 오면 다시 넘쳐흘러 큰 물줄기를 만나 바다를 향해 이동할 거다. 풀숲에는 양 떼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는 거 같지만 어디에 천적이 숨어있을지 몰라 늘 경계한다. 모든 것은 멈춘 듯 역동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브랜던 산 너머에서 커다란 먹구름이 몰려온다. 곧 있으면 비가 올 것 만 같다. 거대한 바위들이 서로 겹겹이 쌓여 비가 와도 잠시 피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지만 지나쳐온 질척한 땅에 물이 차오르면 요단강을 건너야 한다. 비가 오기 전에 다시 내려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