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 놓고도 ㄱ 자 몰라,
손에 든 ㄱ자 낫 죽마고우 벗 삼아
사시사철 보리나락풀나무 베느라,
하늘 향해 제대로 펴지 못한 허리
ㄱ자로 굽어진 줄 모르던 농부.
뒷집 옹기 항아리에
쌀 한 톨 안 보인다고
하루이틀사나흘 중얼중얼,
쌀자루 싸리문밖에 몰래 두고 와선
아침 수탉보다 크게 웃던 까막눈.
빚보증 가산 탕진시킨
동네 아재들 멱살 잡는 대신
수시로 안방으로 불러들여
숨겨둔 밀주사발 건네던 까막눈.
해마다 불타는 6월엔
이산 저산 딸나무 통째 베어와
마당 한가운데 볏단처럼 펼쳐놓곤
대청마루에 긴 담뱃대 물고 앉아
오매불망 늦둥이딸 기다리던 까막눈.
동트기 전
큼직한 족보 펴놓고
굵은 동그라미 그려진 외아들 이름
뭉툭한 손가락으로 문질러대며
홀로 실눈웃음 짓던 까막눈.
검붉은 산딸 그리 먹어대고
꼬부랑 글까지 옹골차게 삼키고도,
ㄱ자 날 선 마음 도대체 알 수 없어
본 적 없는 하늘 존재에게
붉은 사랑 보여달라고 칭얼대는 까막눈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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