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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바트로스 Aug 28. 2024

10. 유기견, 삼돌이

프랑스 여름은 덥다, 한국만큼이나.

햇볕은 더 강렬하지만, 건조한 덕분에 그나마 참을 만하다.

해변이나 국외로 바캉스 떠난 도시는 사람의 움직임이나 자동차 소음도 현저히 줄어든 반쯤 잠든 것처럼 조용하다    

이런 여름 주말은 나에게 반갑기보다는 오히려 곤혹스러운 시간이다.

학교도 도서관도 갈 수 없는, 카페의 붙박이 가구 같은 나.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서 책만 보기에도, 영 눈치가 보이고. 

더구나 주말에는 손님이 그다지 많지 않아, 꼭 필요한 일손도 아니다.     

 

나른하고 무료한 오후.

필립이 어디선가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낑낑대는 울음소리에 들여다본 빈집 마당에는 강아지 홀로 묶여 있었단다.

여름휴가 떠나며, 마치 쓰레기처럼 녀석을 버려두고 가버린 비정한 주인. 

이런 사람들로 인해, 여름은 강아지가 수난받는 계절이다.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녀석은 카페의 의자에 다시 묶여있는 처량한 모습.

녀석은 들숨을 멈추고 싶을 정도로 지독한 악취를 뿜어내며, 긴 털은 서로 뒤엉켜있고, 배는 얼마나 굶었는지 홀쭉하다.

또 다른 낯선 환경에 처한 녀석은 겁에 질린 눈망울을 연신 굴려대며, 눈치를 살펴대는 가엾은 몰골.


어떤 해결도 하지 않기로 약속한 방관자들처럼, 그저 바라보고만 있다.

이 생명체를 구한 필립도,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지 위스키와 줄 담배만.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이런 갑갑한 상황에 짜증 난 내가,

“도대체 어쩌려고, 이렇게 더러운 개를 데리고 와요?” 

볼멘 목소리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에 마주친 녀석의 눈빛에, 나는 그만 움찔했다.

“나 좀 받아줘. 더 이상 갈 데가 없어. 여기가 마지막 장소일 거야, 아마도.” 

SOS 청하는 것 같은 애절한 눈망울에, 갑자기 코가 시큰거렸다.

어떤 방안도 없는 그 처지가, 마치 내 모습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용감하게 나서서 강아지의 묶인 줄을 푸는 모습에도, 방관자들은 여전히 구경만 할 뿐이다.

그들을 비난할 수 없을 정도로 녀석 몰골이, 그 누구라도 손댈 엄두가 감히 생기지 않을 정도로 오물덩어리 그 자체!

뒷걸음치며 완강히 거부하는 녀석을 강제로 끌어안고, 목욕탕으로 데리고 가서 씻기기 시작한, 나도 곧바로 후회할 정도였다. 

몇 번이나 샴푸로 씻어냈지만, 더러운 탁한 물이 끊임없이 계속 나올 정도로 오물로 찌들어 있던 녀석. 

서로 잔뜩 엉켜있는 긴 털을 드라이기로 말리기가 쉽지 않았고, 마지막 단계인 빗질로 목욕 마무리하기까지, 무려 서너 시간 넘게! 

“야 인마! 지금부터, 니 이름은 삼돌이야. 이전에 뭐라고 불렸든 간에. 내가, 니 대장이다. 그러니까 귀하신 주인님 보디가드 똑바로 해. 잘 알겠지? “

내가 쏟아붓는 한국말 대잔치를 듣고, 우습게도 녀석이 꼬리를 흔들어댔다. 

마치 잘 알아들었고, 또 앞으로 잘 모시겠다는 듯이. 

순식간에 내 손아귀를 빠져나가더니, 쏜살 같이 아래층으로 달려 내려갔다.  

뒷정리를 끝낸 뒤, 내려가서 본모습은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다.

좀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긴 털을 출렁대며 힘차고도 신나게 달리는 모습! 

귀를 치켜세우고, 기이하게 이빨까지 드러내며 웃기까지!

개도 웃는다는 사실, 처음 알게 된 날이다.   

  

필립이 부어 준 우유를 마셔가며, 카페 안을 신바람 나게 달리는 녀석.

좀 전의 방관자들은 서로들 앞 다투어가며 환골 탈태한 녀석을 쓰다듬었고,  마치 화답이라도 하듯이 황갈색 긴 털의 물결을 뽐내며 달리는 녀석! 

이날부터, 녀석은 나의 목욕 단골인 고정고객이 되었다. 

매주 토요일, 나의 상전은 녀석.    

        

겨우내 찾은 중국 식당 알바. 

토요일 오후 5시부터 밤 11시까지, 총 6시간이다.

잔뜩 겁먹었던 것은 난생처음으로 하는 알바이기 때문이다.

더 긴장한 것은 남의 나라 프랑스에서, 더욱이 낯선 중국식당. 

식당주인 아들 7살 꼬맹이는 시작 순간부터 종료시간까지 찰거머리처럼, 찰싹 붙어 다니며, 끊임없이 지적해 대는 나의 실질적인 보스였다. 

그 악동은 테이블에 냅킨을 놓는 뒤를 졸졸 뒤따르며, 다시 하라고 줄기차게 지시하는 바람에, 내가 춘추시대 하녀 같다는 생각이 떠오를 정도였다. 

프랑스 아르바이트생과 나에게 차별이 어떤 것인지 확실한 시범을 보여준, 꼬맹이.

알밤 쥐어박고 싶은 맘이야 굴뚝같았지만, 6시간 후에  받게 될 180프랑 때문에 참는 수밖에.     

알바가 끝났을 때, 발과 다리는 퉁퉁 부었고, 머릿속은 그저 멍했다. 

늦은 시간에 나를 데리러 온 욜랑을 보고도, 어떤 말도 하기 싫을 정도.

그녀가 안아주면서, “얼랄라 아~가엾은 내 딸아(Ma pauvre fille!)도 듣기 싫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부아가 더 부글부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분풀이하듯이, 우리 어매도 아닌 욜랑에게.

그 고단한 밤 이후에도, 나는 서빙 알바를 계속했었다.

전공 시인 보들레르에 관한 필독서를 구입하는 데에 돈이 필요했고, 다른 출구도 없는 나에게는, 팥쥐 어매가 버티는 중국식당에서 콩쥐 역할뿐.     


조금이라도 덜 비탈진 길은 찾지 못한 채, 하루하루 전쟁처럼 버티던 날들!  

오늘은 설상가상으로 보들레르 관련 비싼 보충 교재도 보이지 않는다.

꼬박 한 달 동안 분석해서 찾은 논문주제와 근거 예문까지, 정리해서 메모로 꽂아 둔 중요한 자료 책!

오늘 도서관의 컴퓨터에서 그 자료들을 취합하면, 석사 논문 1차 밑그림이 완성되는 초안 작업 자료들이다. 

그런데, 그 책이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방마다 뒤져대는 나를 보고, 참다못한 욜랑.

“너, 학교에 두고 온 것 아니냐?” 

“아니요. 절대로 그럴 리 없어요!” 뚜껑 열리기 직전 목소리로 쏘아댔다.

책은 못 찾은 채로, 우리는 냉랭해졌다.       

대학에서 귀가한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서먹했다. 

별로 화해할 맘이 없던 우리는, 서로 못 본 것처럼 외면.

내 방에 올라와서 우두커니 앉아 있던 중에 불현듯 침대 밑을 안 봤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침대 밑.

아니다 다를까, 수북이 쌓인 잘게 찢어진 종이 뭉치!

책이라고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씹어서 뱉어낸 종이 쪼가리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삼돌이, 그 녀석이다!”

후다닥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녀석을 달랑 안고, 내 방으로 왔다.

그 녀석에게 난도질난 책을 들이대며, 아이에게 하듯이 큰소리를 혼냈다.

큰 목소리에 놀라서, 곧바로 달려올라 온 욜랑.

“아직 애기야. 사람 말 못 알아듣는 강아지고. 그런데, 왜 야단쳐?~”

“내일에 상관 말고, 나가세요. 다시는 이런 짓 못하게, 훈련하고야 말 테니까” 


일요일 오후.

마무트(외곽에 있는 대형 마트) 가는 욜랑을 따라나섰다.

중국 식당에서 번 돈으로, 고생한 나에게 선물 주고 싶은 맘으로.

취향대로 구두를 사고 난 뒤에는 알바 때의 언짢음도, 삼돌이 소행도 좀 누구려 졌다. 

며칠 뒤.

이번에는 마트에서 새로 산  구두가 보이지 않는다. 

감쪽같이, 구두가 사라졌다.

필립은 욜랑과 또 싸울까 봐 걱정됐는지, 서둘러서 구두를 찾아다녔다. 

그들의 침대 밑에서 발견된 갈가리 찢어진 내 구두.

또, 삼돌이 소행이다!

누더기가 된 구두 앞에 삼돌이를 앉혀놓고는 큰 소리로 야단치며, 내방 출입 금지명령도 내렸다. 

비록 말은 못 알아들어도, 상황은 눈치채기를 바라는 간절한 맘으로.      


알바로 내가 집에 없는 그 시간은, 녀석이 작업하는 시간이었다. 

또 버려진다는 불안감에서인지, 방에 들어가서 내가 소중히 여기는 물건들을 씹어 계속 파손시켰고, 욜랑은 식당 알바를 나에게 중단시켰다. 

어쩌면, 늦은 시간에 식당으로 나를 데리려 오는 것도, 아르바이트비보다 더 비싼 물건을 계속 씹어댄 뒤에 야단맞는 ‘키누’, 둘 다 싫었을지도?    

   

녀석의 프랑스 이름은 ‘키누’다.

그런데도 ‘키누’라고 부르면, 녀석은 시큰둥하며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내가 ‘삼돌아’하고 부르면, 곧바로 귀를 쫑긋 세우고 바람처럼 나에게 달려오는 녀석을, 끝까지 미워할 수가 없었던 나.

맛있는 간식 앞에서도, 나의 허락 사인을 기다리던 녀석! 

욜랑이 잠든 사이 침대를 몰래 빠져나와, 내 방문 앞을 밤새 지킨 충실한 문지기!

가끔씩 발동하는 극심한 편두통으로 끙끙 앓는 밤, 방문 앞에 엎딘 채로, 낑낑낑~신음하던 녀석! 

항상 쫓겨나면서도, 침대 위로 올라와 눈 한번 마주치려고 계속 시도하며,

마음 내키는 대로 쏟아내는 한국말 험담도 잠자코 들어주던,

프랑스로 다시 돌아간 날, 내가 도착할 때까지 이상한 음조로 읊조리며,

국제전화 할 때마다, 짖어대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던 녀석!      


나와 녀석은 같은 처지였다, 카페에서.

같은 공간에서 우리는, 현저하게 다르게 생존했다. 

나와는 상반된 태도로 존재했던 녀석.

욜랑의 장점보다는 다른 점에  포커스를 맞준채, 늘 벗어나려는 갈망뿐인 나와 반대로,  

내 존재자체로 만족하며, 나에게 일편단심이었던, 유기견 삼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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