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했던 나의 사춘기에게

부모의 가난과 이혼이 나에게 끼친.

by 작가 담온

나는 20살이 넘어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백화점이란 곳을 가 보았다. 어릴 적에 우리 동네 뒷 산에 있던 그 산들만큼의 크기들을 알록달록한 대리석들이 누구 하나 욕심내지 않고 딱 자기 자리의 위치와 크기를 잘 지키고 있었다. 그 위에는 가치가 다른 물건들이 하나 둘 놓여있었다. 어떤 것은 가방이고, 어떤 건 지갑이었다. 또 어떤 건 시계였다. 말 그대로 나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세계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랬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옷과 신발은 나이키나 아디다스가 만든 것이 아니었나.

이 브랜드마저 내가 산골짜기를 벗어나, 고등학교를 가게 되면서 처음 사게 된 옷들이었다. 그것도 어디 마트 앞에서 차에서 파는 진짜 나이키인지 아닌지 모를 반바지가 다였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 반바지가 진짜냐 아니냐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을 처음으로 산 이가 바로 나였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옷과 신발은 시장에서만 파는 것인 줄 알았다. 지금 내 나이가 30이 넘었지만 그 어릴 때의 나를 나이키나 아디다스가 파는 곳으로 데려가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햄버거를 처음 먹어본 것도 내가 어쩌다 전교 부회장이 되었을 때, 회장이 된 친구가 전교생에게 돌린 삼천 원도 안 되는 불고기버거 세트였다. 그런데도 참 신기한 건, 그것들을 처음 봤음에도 그것들이 내가 그때까지 겪어왔던 신발이나, 반팔이나 또 먹을거리보다 더 좋은 것이라는 걸 알았던 것이다. 아니 적어도 더 비싼 것이라는 것임은 알았다. 또한 확실했다. 저것들이 내 것보다 비싸서가 아니라 따뜻함이 묻어있어서라는 걸.


요즘은 옷의 브랜드를 떠나 아파트 브랜드에 따라 그 아이의 등급이 정해진다고 들었다. 그런 행위 자체를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 사는 어딘가에서도 우리는 그것이 아파트이건, 입는 옷의 브랜드이건, 네 편이냐 내편이냐를 구분할 다양한 장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랬는지, 내 친구가 회장이 되어서 내가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햄버거를 전교생에게 사주는 것을 보았을 때, 아니 나에게 밀려 다른 직급을 맡게 된 친구가 그마저도 고맙다고 전교생에게 지우개를 돌렸을 때 나는 내가 아니라 저 친구가 부회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대표가 되었지만 대표로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무언가 해줄 돈 있는 어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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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나는 임명장을 받고 담임 선생님에게 달려가 죄송하다고 말을 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누군가 앞에 서는 일이 좋아서, 그렇게 누군가 앞에 섰지만 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내가 학급의 반장에라도 자신감 있게 손을 드는 일은 없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영문학과에 다녔던 나는 영어 과외를 하게 되었다. 나는 그 아이들의 부모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무릇 학생이란 부모님들이 곁에서 응당 해주어야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게 단순히, 내 아이가 상을 받거나 축하할 일을 했을 때 칭찬을 해주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때로는 옆에서 묵묵히 지켜줘야 하는 여러 가지 잡다한 일이 있었다. 대학생이 된 나도 나는 그 아이들의 그런 것들이 부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꼭 물질적인 것뿐만이 아니라는 걸, 아니 물질적인 것은 괜찮으니 마음과 같은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또 10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내 친구들,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의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눈빛과 따뜻한 품을 그리워한다. 내가 그리워하는 건 좋은 곳에 데려다주거나, 남들보다 더 비싼 옷을 사줄 수 있는 내 부모님의 능력이 아니라 밥을 먹었냐거나 아픈 곳이 없느냐 하는 인사였을 것이다.

그렇게 나를 낳아준 내 부모님의 가난과 이혼은 내 어머니가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떠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를 따라다닌다. 군입대를 하면서 나 대신 옆에 울어줄 누군가가 없다는 것과 몸이 아파 못 가서 미안하다는 내 할머님의 말도 나를 따라다닌다.


부족했던 가정환경을 자랑하려고 쓴 글이 당연히 아니다. 거짓을 더해서 쓴 글도 당연히 아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좋은 대학에 못 간다거나, 부모님이 안 계신다고 해서 당연히 슬퍼해야 하는 것이라 말하는 것도 아니다. 같은 상황이 같은 마음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환경은 나에게 이런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는 것이었다. 어린 나를 지켜주지 못한 부모님을 원망한 적도 없다. 그런 비슷한 마음이 들면, 나를 슬프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나를 강하게 만들었던 또 다른 것들을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의 탄생에는 그들이 책임져야 할 삶의 무게가 무겁기도 하거니와 또 그만큼 섬세한 감정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각자의 개인의 생각과 시각, 청각 등은 하나의 세상이다. 신경 쓰지 않고, 자세하게 바라보지 않아서 또 하나의 슬픈 세상을 만들 이유가 없지 않을까.

또 하나의 성장을 하자면 이것이다. 내 가족이 나를 위해 해준 것들 때문에 내가 딱 그만큼만 불행했는지도.

이제 나는 섬세할 수 없었던, 나를 더 이뻐할 수 없었던 그들의 바빴고 거칠었던 삶을 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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