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
그의 관은 가벼웠다. 나는 관을 운구차에 밀어 넣고 흰 면장갑 낀 손으로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기를 눈언저리에서 닦아냈다. 이 세상에 피붙이라곤 없는 그의 마지막 가는 모습은 쓸쓸하기보다는 차라리 홀가분한 듯했다.
봄이 멀지 않았는데도 목덜미에 와 닿는 그날의 바람은 차가웠다. 여인의 분가루를 흩뿌려 놓은 듯한 희뿌연 거리에서 사람들은 아득하게 서성였다. 기다리는 버스는 쉽사리 오지 않았다. 미세먼지가 도로를 막고 자동차 소음마저 삼키고 있는 것 같았다.
“저기……, 일산 가려면 몇 번 타야 되나요?”
여자의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가 입김에 실려 왼쪽 뺨에 날아들었다. 두꺼운 베이지색 반코트를 입은 여자는 추운 듯 목을 움츠리며 물었다.
“바로 가는 건 없고 광화문까지 가서 갈아타야 할 거예요.”
여자에게 대답했다. 여자는 고맙다는 눈짓을 하며 한걸음 물러났다. 휴대폰으로 대중교통 노선을 검색하면 될 텐데…. 그런 걸 묻다니 요즘 사람 같지 않게 여자가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졌다.
많아야 4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그녀는 얼굴이 작고 피부가 창백했다. 그녀의 야윈 얼굴엔 바람이 불때마다 먼지가 부옇게 앉은 듯한 윤기 없는 긴 웨이브 머리카락이 몇 가닥씩 달라붙었다. 오른손에는 지금 막 쇼핑을 마친 듯 모서리에 각이 선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잠시 후 광화문행 버스가 도착했다. 나는 버스 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버스가 오자 반가운 듯 달려가던 여자는 같은 버스를 향해 가는 나를 보고 주춤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를 쫓아 탄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얼른 올라타 일부러 먼저 자리를 잡았다. 그녀는 남은 자리를 찾다가 버스 내부 한가운데 지나가는 통로를 사이에 두고 나의 왼쪽 건너편 좌석에 앉았다. 나는 휴대폰을 들여다 보다 광화문까지 20여분 정도 남겨 두고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여자의 속삭이듯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슬쩍 돌려 여자를 보니 이제 막 휴대폰을 귀에서 내려놓고 있었다.
옆에서 다시 본 여자의 얼굴은 어쩐지 낯이 익었다. 얼굴엔 아까와는 다르게 생기가 돌았다.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옆얼굴에서 언뜻 보이는 그녀의 눈과 뺨은 차창 밖에서 비추는 오후의 햇살을 튕겨내며 반짝였다.
버스가 광화문에 도착하자 나와 그녀는 내렸다. 버스는 다시 많은 승객을 태우고 사라지듯 먼지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나는 서둘러 사무실로 향했고, 그녀는 내린 그 정류장에서 버스가 오는 방향을 바라보며 환승할 버스를 기다리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