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2
다음 날 바로 옆 부서인 사회부 김 기자는 아침부터 바쁘게 가방을 둘러멨다.
“어제 저녁에 한 건 터졌어. 일산 어떤 아파트에서 젊은 남자가 죽었다는데 현장이 참혹했나 보더라고. 현관문 아래로 새어 나오는 피를 보고 맞은편에 사는 이웃이 신고했다는데.”
“살인 사건이에요?”
“그거야 경찰서로 가 봐야 아는 거지만.”
취재 나갔던 김 기자가 오후에 사무실로 들어오며 다시 중얼거렸다.
“죽은 그 남자, 아들래미 하나 데리고 혼자 살았다고 하던데 애가 안됐네. 이웃들 말로는 워낙 말도 없고 왕래가 없어도 사람이 썩 괜찮았다고 하던데 어쩌다 그런 일을 당했는지.”
기사를 정리하고 있던 나는 그를 보고 물었다.
“당했다면, 살해당했다는 겁니까?”
“경찰서에선 현장을 보니 그런 거 같다고는 하는데 아직 단정할 수는 없다더군. 살해당하건 사고를 당하건 하다못해 자살을 하건 다 당한 거 아니겠나. 험난한 세상에 당한 거지.”
김 기자는 지면에는 못 나가더라도 3시 30분까지 인터넷에 올려야 한다며 책상 앞에 앉아 서둘러 기사를 정리했다.
4년 전 신문사에 입사한 이후로 다반사로 듣고 보는 일이어서 나는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도 왠지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잠시 후 김 기자가 자리에서 일어설 때 다가가 물었다.
“선배, 그 기사 좀 보여 주면 안 돼요?”
“보고 말고 할 거도 없어. 해결된 것도 아니고.”
그러면서도 김 기자는 기사를 보여 주었다.
“30대 독신남 자신의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
-어제 오후 6시경 30대 남성 현모씨가 일산 자신의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사인은 과다 출혈로 보이며 경찰이 사망자 주변을 탐문하며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사진에는 노란색 폴리스 라인(Police line)이 둘러쳐진 한 아파트의 현관문과 문 아래에서 밖으로 새어 나와 말라붙은 핏자국이 모자이크 처리되어 있었다.
“현모 씨요? 그 남자 이름은 뭐래요?”
“글쎄. 뭐라더라, 내가 태블릿에 적어 왔는데…… 근데 정 기자 왜 이렇게 이 사건에 관심이 많아? 어디 이런 일이 한두 건이야? 자고 일어나면 이런 일인데.”
흔치 않은 ‘현씨’ 라는 성이 나를 더 이끌었던 것일까. 태블릿 피시를 뒤적거리던 김기자가 말했다.
“현경수네. 88년생이니까 36세이고.”
현경수……. 불길한 예감이 꿈틀거리며 벌레처럼 머릿속에서 기어 나왔다. 내가 아는 현경수는 결혼을 한 적이 없다. 그래 맞아, 그러니 아이가 있을 리 없지. 분명히 내가 알고 있는 현경수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하면서도 나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휴대폰 속의 그의 전화번호를 찾다가 문득 일 년 전 동창 모임에서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현경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 아이가 생겼어. 내가 낳은 아이는 아니고 조카를 입양했어.’
그때 적당히 취기가 올랐던 나는 세상을 다 얻은 듯 웃으며 말하는 경수의 얼굴을 보고 뭔지 모르게 좋은 일이라는 생각에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던지고 술잔을 부딪쳤던 기억이 났다. 부어라 마셔라 하는 다른 동창들의 떠들썩한 목소리에 경수의 목소리는 섞여 들어갔고, 음식들이 뿜어내는 냄새와 탁한 공기로 흐려진 실내는 이어지는 우리의 대화를 집어삼켰다.
경수의 휴대폰 번호를 누르는 나의 손은 땀에 젖어 들었다. 그는 받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버튼을 누르고 더 이상 발신음이 울리지 않을 때까지 들고 있었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습니다.’ 등골이 서늘했다. 두어 달 전에만 해도 만나서 술을 함께 하지 않았던가. 나는 다시 휴대폰에서 다른 친구의 번호를 찾았다.
“재현이냐? 나다. 그런데 너 혹시 최근에 경수랑 통화했냐?”
“아니, 안 그래도 경수가 이번 주에 우리 회사 사진 동아리 강사로 오기로 되어 있어서 내가 확인 차 전화했더니 안 받네.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뭐 그냥……. 그런데 경수 아직도 마포에 살아?”
“그 자식 얼마 전 일산으로 이사 갔더라고. 내가 경수를 우리 회사 사진 동아리 강사로 추천하느라 얘기하다 알게 되었어. 아마 그 동네가 애 키우기 좋다고 해서 간 거 같던데, 너한테는 말 안 했어?”
그러고 보니 작년 여름에 경수가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언뜻 한 것도 같았다.
그 후 나는 그에게 언제 어디로 갔느냐고 묻지도 않았을 테고, 늘 쫓기듯 바쁜 나에게 경수는 그런 말 같은 건 다시 하지 않았을 것이다. 차츰 맞춰져 가는 퍼즐에 몸이 굳어 갔다.
그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정말 내가 아는 경수가 죽은 걸까. 내 친구 경수가. 밤새 뒤채이다가 일어나 차가운 물 한 잔을 들이켰다. 다시 몸을 눕힌 침대의 시트가 축축했다. 온몸에 한기가 스몄다. 새벽 4시가 채 안 된 시간이었다. 아직 저승으로 못간 영혼들이 이승을 배회하는 시간이라고 했던가. 밤인지 아침인지를 구분할 수 없는 푸르스름한 검은 빛이 베란다 창 너머에 길게 깔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