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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랑 Oct 28. 2024

미세먼지 주의보

소설 5

  26년 전, 경수와 단 둘이 살던 경수의 엄마는 경수가 열 살이 되던 해에 이신희의 아버지와 재혼했다.  

  “엄마가 아빠와 저를 두고 다른 남자에게 가 버린 것을 안 후에 난 어떤 여자도 믿을 수가 없었어요. 아빠는 좋은 사람이었기에 그 사실을 내게 알리지 않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나는 그걸 자연스레 알게 되었죠.”

  당시 13살이었던 이신희는 새엄마와 경수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런 딸로 인해 재혼한 부부는 끝내 혼인 신고도 하지 못한 채 사실혼 관계로 살아야 했다.  

  “경수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익숙지 않은 환경에 겁이 질린 듯했지만 나를 보고 귀엽게 웃었어요.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하얀 볼 한쪽에 웃을 때마다 보조개가 패이곤 했죠. 경수는 나를 잘 따랐지만 나는 그런 경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차라리 경수가 못되고 나쁜 아이였다면 그 아이를 그렇게 미워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이신희는 다정한 새엄마와 경수, 그리고 서서히 안정을 되찾아 가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자신이 이방인처럼 여겨졌다고 했다. 

  “그런 그림들이 왜 우리 엄마와 함께 살 때는 그려질 수 없었던 건지. 나는 응어리를 남겨 둔 채 성장했지만 경수는 더 없이 반듯한 청년으로 자라났어요. 말씀 드렸듯이 경수를 진심으로 싫어한 건 아니었지만 난 한 번도 동생처럼 따뜻하게 대해 준 적은 없었어요. 그래도 경수는 나를 세상 어디에도 없는 누나로 대했구요.”

  그러다 이신희가 대학교 2학년 때 남자 친구를 사귀었다.

  “경수는 그때 고등학생이었는데 밤이 이슥해지면 아파트 어귀에 나와서 내 남자 친구를 감시라도 하듯이 나를 기다리곤 했어요. 처음엔 경수가 그냥 시답잖은 남동생 노릇을 하나 보다 했죠. 주제넘게 내 사생활을 간섭한다고도 생각했고요. 그래도 누군가에게 보호받는다는 게 싫진 않았죠. 하지만 경수는 저 몰래 제 남자 친구를 찾아갔고, 그 후로 남자 친구는 저에게 결별을 선언했어요. 그러다 경수의 일기장을 봤어요.”

  경수의 일기장은 이신희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이신희를 향해 쓴 연서와도 같은 글들이 일기장에 가득했다. 언제부터였는지, 어디서부터였는지…….

  이신희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동안 한 집에서 남매로 살면서 그녀가 단 한 번의 눈길도 주지 않았던 경수가 그녀에게 느꼈을 감정들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두려웠어요. 벗어나기 힘들 것 같았어요. 그 무엇보다도 그건 안 되는 거였죠. 아무리 피를 나눈 남매가 아니더라도……. 그 후 나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도망치듯 집에서 나와 살다가 직장에서 만난 남자와 동거를 했어요. 그리고 아이가 생겼죠. 그 아이가 무영이에요.”

  그 후로 이신희는 가족과 절연하다시피 했고, 얼마 후 새엄마인 경수의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신희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무영의 아빠는 의심이 많고 폭력을 일삼는 사람이었다. 견디지 못했던 이신희는 그와 헤어졌다. 

  “헤어진 후 혼자 어린 무영이를 키우다가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어요. 비록 상처하고 아이가 둘 있는 남자였지만 내가 의지도 될 만큼 따뜻해 보이는 사람이었어요. 나는 결혼을 결심하고 무영이를 제 아빠에게 보냈죠. 그런데 그 인간이 3년 전에 아이를 보육원에 보내 버린 거예요. 그래서 난 할 수없이 경수에게 무영이를 부탁했어요. 예상대로 경수는 흔쾌히 받아들이더군요. 미혼모라는 게 내게는 힘든 일이었어요. 아이가 없는 줄 알고 만난 지금의 남편에게 차마 무영이 얘기를 꺼낼 수 없었어요. 무영이의 존재를 알았어도 남편이 나를 받아 주었을까요? 그때 나는 그만큼 절박했어요.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기자님은 모르실 거예요.”

  “……, 그날 경수랑 무슨 일로 다투었나요?”

  나는 약속한 면회 시간 따위는 잊고 다시 물었다.  

  “경수가 그러더군요. 이제 다 정리하고 자기에게 오라고. 뭐가 더 필요하냐며. 내가 낳지도 않은 남의 아이들 뒤치다꺼리하며 사는 생활이 지겹지도 않냐고 했어요. 나는 빨리 무영이나 보여 달라고 말했죠. 캠프를 갔다고 하더군요. 경수가 사전에 미리 말하지 않은 얘기였죠. 남편의 눈을 속여 가며 어렵게 온 걸음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다음에 다시 오겠다고 하고 돌아가려고 했어요. 그때 경수가 뒤에서 애원하듯 말했어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무영이랑 셋이서 살자고.” 

  그리고 경수가 돌아가려던 이신희를 갑자기 뒤에서 끌어안았고 그걸 뿌리치는 과정에서 경수가 현관 벽에 붙어 있던 거울에 세게 부딪히며 넘어졌다고 했다. 

  “거울이 깨져 바닥에 흩어졌고, 상처를 입은 경수가 바닥이 주저앉아 있었어요. 나는 무섭고 당황스러워서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죠. 막 현관문을 열고 나오려는데 등 뒤에서 경수가 소리쳤어요. 누나는 엄마 자격이 없으니 더 이상 오지 말라며 다시는 무영이 볼 생각 하지 말라고.” 

  순간 이신희는 다시는 무영이를 보지 못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경수가 그녀의 인생에 끼어들지 않았다면, 아버지가 새엄마랑 결혼만 하지 않았다면, 끝끝내 남으로 살았다면……. 경수가 자신의 인생에 들어온 순간부터 모든 게 엉망이 되었다는 생각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주방으로 들어가 칼을 찾아 들었다. 비틀거리며 바닥에서 일어나려는 경수에게 다가가 그를 찔렀고 그 길로 정신없이 경수의 아파트를 벗어났다고 했다. 

  그렇게 끝나 버린 경수의 삶도,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경수의 가족 관계도, 너무나 혼란스러웠고 믿어지지가 않았다. 이신희와 면회를 끝낸 나는 서둘러 재현에게 전화를 걸어 그날 저녁 그와 만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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