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8
경수의 장례가 치러졌다. 경수의 시신 부검이 끝나고 수사가 종결될 무렵이었다. 재현과 나는 발인 날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영정 사진 속의 그는 생전에 그랬듯이 눈을 마주치고 웃으며 우리를 위로하고 있었다.
발인 날 장례식장에 이신희가 찾아왔다. 재현과 내가 화장장으로 가는 운구차에 경수의 관을 싣자 그녀는 내게 쇼핑백을 건넸다.
“이거 경수 거예요. 지난번에 무영이 만나러 경수네 갔을 때 무영이 옷 사면서 경수 것도 한 벌 샀어요.”
쇼핑백에 든 것은 경수의 셔츠였다. 이신희는 그 옷도 함께 태워 달라고 했다. 단정하게 하나로 묶은 머리와 검은색 투피스 차림의 이신희는 자신이 경수를 죽였다고 주장하던 경찰서에서의 모습이나 표정과 사뭇 달랐다.
이신희는 관이 들어가고 문이 닫히는 운구차의 뒷모습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무영인 제가 데리고 살 거예요. 남편은 저를 용서할 생각이 없는 거 같아요. 차라리 잘되었어요. 그 사람도 결혼 전에 내가 생각한 것처럼 좋은 사람은 아니었어요. 저를 자기 딸들을 먹이고 키워 주는 가정부쯤으로 생각하더군요. 월급 없는 가정부 말이에요.”
그녀는 경수에 대해선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중얼거리듯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경수가 왜 자살을 선택했는지 그 답을 아는 사람은 어쩌면 현장이 함께 있었던 이신희 일지도 모르는 데 말이다.
다음 날,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의뢰를 받았다며 유품정리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살이라는 결론이 난 다음에야 범죄 현장도 아니었지만 사건 현장의 처참함 때문인지 담당 형사가 지원센터에 말을 해 둔 모양이었다. 유가족이라야 무영이가 전부인데, 아이에게 말을 할 순 없고 그동안 안면이 있었던 내 휴대폰 번호를 알려준 것 같았다. 유품정리사는 이틀 후에 유품을 정리할 계획인데 괜찮겠냐고 물었다.
이틀 후 나는 사무실에 들렀다 곧바로 경수의 집으로 향했다. 머리까지 뒤집어쓴 푸른색 보호복과 마스크로 무장한 유품정리사 두 명이 먼저 와 있었다.
“이거 특수 청소를 해야겠는데요. 미리 얘기는 들었지만 생각보다 힘들겠어요.”
리더로 보이는 유품정리사가 말했다.
나는 집 안을 둘러보았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지만 형사에게서 수없이 들은 현장 모습이라 그런지 충격 같은 건 없었다. 차가운 현관 바닥에 쓰러져 목에서 솟구치는 자신의 피에 온몸을 적셔 가며 죽어 갔을 경수와 무영이가 함께 찍은 사진이 TV 옆 액자 안에서 웃고 있었다.
“청소하시면서 오염된 가재도구 같은 건 버려 주세요. 그 밖의 고인의 물건은 소중히 다뤄 주시고요. 어린 아들이 있거든요. 다 끝나면 다시 연락 주세요.”
유품정리사는 바로 물건을 정리하며 청소를 시작했다. 한 사람은 바닥 청소를 준비하는 것 같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거실 가구들을 이리저리 밀쳤다. 나는 돌아가려다가 끙끙대며 소파를 들려고 하는 유품정리사를 도와 소파 한쪽 손잡이를 맞들고 옆으로 옮겼다. 3인용 소파를 들어내자 소파가 있던 자리에 조그마한 소형 핸디캠이 굴러다녔다. 집에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았을 경수를 떠올리며 핸디캠을 집어 들고 돌아 나왔다. 바깥 아파트 담벼락엔 아직 터뜨리지 못한 개나리 꽃망울들이 봄볕을 받아 노란 꼬마전구처럼 가지마다 매달려 흐느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