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9
일주일만 지나면 경수의 장례를 치른 지 한 달이 된다. 경수를 보내는 일은 나에게도 재현에게도 쉽지 않았다. 우리는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먼저 간 경수를 부르며 울다가 웃다가 욕하다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풀썩 쓰러진 나는 문득 유품 정리 때 경수의 집에서 가져온 핸디캠이 생각났다. 한동안 차마 그의 생전 모습을 보는 게 힘들어 밀쳐 두었었지만 그날따라 경수가 못 견디게 그리웠다. 핸디캠에는 경수의 어떤 흔적이 있을까. 그는 무엇을 기록했을까. 나는 호기심과 그리움에 핸디캠을 컴퓨터에 연결했다. 예상대로 캠에는 무영이의 일상들이 녹화되어 있었다. 무영이의 웃는 모습은 어쩐지 경수와 닮아 있었다. 살아 있는 경수의 목소리는 활기찼다. 경수가 아주 일상적인 질문을 하면 무영이는 웃거나 시무룩한 얼굴로 대답했다. 때로는 옷 갈아입는 모습, 자는 모습도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이어지던 영상은 멈추어졌고 잠시 파란색 정지 화면이 5초가량 나왔다가 영상은 다시 시작되었다.
“자, 오늘은 엄마가 오는 날이야. 네가 오늘 영어 캠프 가는 걸 깜박하고 삼촌이 엄마랑 약속을 했지 뭐니. 엄마가 화낼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또 오시라고 하면 되지, 뭐.”
경수가 혼잣말을 하며 셀프 촬영을 하고 있었다. 영상 속의 날짜는 2월 26일. 경수가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 이어지는 영상 속에선 현관 벨 울리는 소리가 났고 캠은 켜진 채로 경수의 손에 무심하게 들려 현관까지 움직였다. 챠르륵 하며 문을 열어 주는 소리가 났으며 이후 여자의 알아들을 수 없는 작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여전히 핸디캠 속의 영상은 이리저리 흔들리며 맥락 없이 어지럽게 움직였다. 핸디캠이 어딘가에 올려놓아지며 영상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멈춘 채 거실 베란다 창을 비추고 있었다.
“누나, 잘 지냈어? 더 야윈 거 같네.”
“야위긴. 그런데 무영이는 학원에서 돌아오려면 멀었니?”
“아, 미안. 오늘 무영이가 캠프 가는 날인 걸 깜박하고 누나랑 약속을 했어. 나중에 또 보러 올 수 있지?”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여자가 무어라 작게 말하는 소리가 들린 다음, 경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안 돼, 누나.”
“왜 안 돼? 너 나 좋아하지 않았어? 나 사랑한다고 했잖아. 나도 처음엔 우리가 피가 안 섞인 남매라도 엄연히 남매이고 나보다 어린 네가 내게 집착하는 것 같아 소름 끼치고 싫었어. 새엄마도 싫고 그 엄마의 아들인 너도 싫었지. 그래서 직장을 구하자마자 집을 뛰쳐나왔던 거고. 그런데 나 이젠 무영이랑 너랑 셋이 살고 싶어. 내 아들이랑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랑 살고 싶다고. 아빠랑 새엄마가 혼인 신고도 안 했으니 우린 법적으로도 혈연으로도 아무런 하자가 없는 남남이잖아.”
“안 돼, 제발 이러지 마. 누나!”
“너 군대 제대하고 나 찾아와서는 나랑 도망가서 살자고 하지 않았니? 그런데 지금은 마음이 변한 거야? 그런 거야? 이제 믿고 기댈 사람은 너 밖에 없어. 무영이도 키워 주겠다며 네게 맡기라고 네가 먼저 말했잖아. 너라면 친아빠처럼 잘 키워 줄 거 같았어.”
여자는 큰 소리를 내다가도 금세 사정하듯 말했다.
“나도 누나 좋아해. 하지만 그런 말 하려거든 돌아가.”
현관 쪽으로 향하는 묵직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경수 너도 원하는 거였잖아!”
여자의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웠다. 종종거리며 뒤따라가는 발걸음 소리가 현관 쪽으로 향했다. 곧바로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돌리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갑자기 문이 다시 쾅 닫히고 순식간에 와장창 소리를 내며 무언가 깨지고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가 누군가의 손이 핸디캠을 쳐서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 반동에 의해 핸디캠은 어두운 소파 밑으로 밀려들어간 듯 옅게 그림자가 깔린 어두운 바닥을 비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