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하나
작은아버지
작은아버지는 어릴 적에 홍역인지 천연두인지 전염병으로 고열에 시달린 이후 말을 못 하고 귀가 안 들리게 되었다고 한다.
겨우겨우 결혼식은 했는데, 합방을 거부하셔서 작은어머님은 친정에서 사셨고 작은아버지는 우리와 함께 사셨다.
작은아버지는 내가 계집애인 걸 아시면서 양자가 아닌 걸 알면서 항상 나의 보호자를 자처하셨다.
행여나 엄마가 나를 때리려고 하면 지게 작대기를 들고는 어버버버 하시면서 엄마에게 휘두르곤 하셨다.
나는 어릴 적부터 작은아버지 방에서 자주 잠이 들었는데, 이상하게 작은아버지의 방에 있으면 포근하고 이불에서 풍기는 쿰쿰한 냄새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어느 날 학교를 갔다 왔는데, 집에는 아무도 없고 배가 고픈데 부뚜막에도 가마솥 안에도 먹을 게 없어서 찬장을 뒤지고 있는데, 작은아버지가 들어오셨다.
대화가 안 되니까 손짓 발짓 배고픔을 표현했더니 내 손을 잡고 안방으로 가신다.
그러더니 벽에 엄마얼굴이 들어있는 액자 뒤로 손을 넣으시고 엿을 꺼내주시려고 더듬더듬하시는데, 엿이 더위에 녹아서 엄마사진 뒷면에 종이와 딱 붙어 있었다.
낭패한 표정의 작은아버지는 결국 엄마사진을 부욱 찢어서 엿을 떼어내고는 종이가 안 붙은 쪽의 엿을 내 입에 넣어주시는 거다.
작은아버지의 엿은 너무 달고 맛있고 좋았는데 찢어진 엄마사진을 보고 있자니 내 한숨은 방구들을 울렸다.
가뜩이나 작은아버지와 엄마는 앙숙이고 나는 미운오리새끼인데, 뒤에 닥칠 일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아서 글썽이는데 작은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나를 보면서 맑게 웃고 계셨다.
엄마가 자꾸 아이를 낳는 게 당신 호적에 올려 줄 아들을 낳는다는 걸 알고 계셨으리라.
나는 계집애였어도 다시는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으니, 나를 당신의 딸이라 여기시고 작은아버지는 나를 챙기고 보호하셨을 것이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유일하게 내편이셨던 작은아버지 그래서였을까 ?
작은아버지 돌아가시던 날 마지막 임종을 내가 지켰고, 여자라서 상주는 할 수 없었지만, 상주 대행노릇을 내가 했다.
모두가 적이 아니었기에 숨을 쉬었고, 희망을 보았고, 살아갈 용기가 되었다.
작은아버지는 마음으로 나누는 대화로 끊임없이 나에게 사랑을 주셨고, 믿음을 배우게 해 주셨다.
세상엔 악당만 있는 게 아니란 걸 알게 해 주신 분이다.
어머니와 작은아버지는 6개월 차이로 별이 되어 떠나셨다.
가족 납골묘에 아래위로 계시는 작은아버지와 어머니가 이제는 화해하시고 평안을 찾으셨을까?
엿을 떼어내느라 찢어진 엄마의 사진은 천만 다행히도 바쁜 철이다 보니 조용히 잊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