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이야기
내 마음 이야기
막내언니는 엄마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어려서 작은아버지에게 맞은 후 고막이 나가서 귀가 잘 안 들리는데 거기에 외사촌 오빠랑 놀다가 작두에 손가락을 잘려서 엄마는 내가 볼 때 손자보다 막내언니를 더 애틋하게 여겼다.
아픈 딸에게 무엇이든 해주고 싶으셨으리라
어느 날 엄마가 장에 가시고 나서 언니는 이유 없이 나를 때리기 시작했고 화가 난 끝에 언니와 싸우다가 벽에 걸린 거울을 깨트렸다.
장에 갔다 오신 엄마는 둘이 왜 싸웠는지 앞뒤 이야기도 듣지 않고 부엌에 가서 싸리나무를 한 묶음 들고 와서
왜 어린 게 언니한테 덤비냐고,
동생이 왜 언니를 때리냐고,
마구잡이로 날 때리기 시작하셨다
언니는 어느새 도망을 갔고, 난 아프단 말도 하지 않았고, 울지도 않았고, 엄마가 때리는 대로 맞았다.
몸이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아팠기 때문에 어디를 때려도 통증조차 느낄 수 없었다.
엄마는 왜 ? 무슨 일로 싸웠냐고 묻지도 않았고 일방적으로 무조건 내 잘못만 인정하라고, 다신 안 그런다고 말하라고, 딸년으로 태어났으면 얌전히 굴라고, 차라리 죽어버리지 왜 사사건건 엄마 속을 썪이느냐고 악을 쓰면서 회초리를 휘두르셨다.
나중엔 제발 빌라고 잘못했다 말하라고 다신 안 그러겠다 말하라고 나에게 하는 것인지 허공에 외치는 것인지도 모르게 나의 머리를 등짝을 다리를 스치는 회초리에서 눈물 섞인 소리가 들렸다.
어느 순간 매질이 아파서가 아니라 너무 슬퍼서 있는 힘껏 엄마를 밀치고 집을 뛰쳐나와 개울가로 달려갔는데 그제야 후드득후드득 하염없이 내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여자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나를 낳아달라고 빌어본 적도 없는데 나를 낳은 건 엄마인데 왜 그토록 나를 미워하시는 걸까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것인가
그냥 철없는 아이이고 언니랑 동생이랑 다툰 건데 왜 모든 잘못은 다 내 탓일까
흐르는 개울물에 비친 내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어서 원망과 서러움이 끄윽끄윽 그칠 줄 모르고 울음을 토해내고 토해냈다.
저녁해가 뉘엿뉘엿 지고 나서도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게 또 서글퍼서 달이 개울물에 둥실둥실 떠 있을 때까지 냇가에 앉아 있었다.
밤이 되고 대문 안에 들어섰는데 인기척 없는 집은 어둡기만 하고 엄마도 아버지도 언니도 없는 마루에 혼자 앉아서 날 두고 다 어디로 떠나버렸나 싶은 생각에 덜컥 겁이 나고 두려움이 몰려왔다.
배고픔도 잊어버린 채 어두운방에 누웠는데 그다음엔 기절을 했던 건지 다음날 늦게 눈을 떴는데 병원 침대 위였다.
간호사선생님 말로는 내가 경기를 했고 의식이 없는 채로 아버지에게 업혀왔다고 했다.
그날 이후 난 부쩍 집에서 말수가 적어졌고 언니가 청소하라고 하면 하고, 설거지하라면 하고, 엄마와 마주하는 게 싫어서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숙제 핑계를 대고 책상 앞에 멍하니 앉아 있는 날이 많아졌다.
작년에 엄마에게 그토록 애틋했던 막내언니가 폐암진단을 받았고, 항암치료를 받던 중에 폐에 또 암덩어리가 발견돼서 얼마 전에 수술을 했다.
수술실에서 나오는 언니 얼굴이 엄마얼굴과 겹쳐 보였다.
막내언니가 암투병하는 게 불쌍하기도 하고 그토록 사랑하던 딸이 저렇게 아픈데 왜 지켜주지 않느냐고 돌아가신 엄마를 엄마 엄마 하면서 눈물을 삼키는데 이젠 마음껏 울지도 못하는 내가 또 서러워서 가슴이 욱신욱신거렸다.
마취에서 깨어난 언니가 느닷없이 힘없는 목소리로 하는 말이
" 언니가 미안해
언니가 너 많이 때리고 힘들게 했지 ?
이제 다 잊어
다 잊고 아들하고 너만 생각하면서 살아
언니는 너 잘 사는 거 보는 게 소원이야 "
한다.
그 말에 묵혀두었던 눈물이 폭포수가 되어 쏟아지는데 이젠 원망할 엄마도 없고 언니는 아프고 나는 여전히 상처투성이가 된 채로 살고 있다는 게 힘겨워서 밤하늘 어딘가에 계실 엄마를 부르며 밤새 울어야 했다.
막내언니는 어릴 적 엄마사랑을 독차지한 것이, 이유 없이 나를 괄시하고 때리고 괴롭힌 것이, 사는 동안 내내 미안했다고 막내가 받아야 하는 엄마 사랑을 언니가 받고 산 게 미안하다고 한다.
" 아니야 언니
언니는 받을 사랑을 받은 거야
언니 때문에 힘든 적은 없어
누구 한 사람이라도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내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이젠 충분히 위로가 돼 "
" 언니가 내게 미안할 필요는 없어
언니나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게 아니니까
나 때문에 힘들어하지 말아 "
[ 엄마
혹시 우리를 보고 계시나요 ?
엄마의 소중한 여섯째 딸이 많이 아픕니다
살아서는 내 목소리에 내 이야기에 귀를 닫으셨더라도 이젠 들어주세요
제 마음이 들리시거든
막내언니 좀 지켜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