곪아가는 마음 2

by 서윤

곪아가는 마음 2


방직공장에 들어가서 3교대로 8시간 근무하고 바로 회사 내에 있는 학교로 가서 4시간 수업을 하고 기숙사에 들어와 쓰러지는 일이 계속 반복되었다.



기숙사방에는 같은 학년만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선배들이 후배에게 빨래도 시키고 청소도 시키고 좋은 게 있으면 달라고 하는데 안 주면 왕따를 시키기도 했다. 몸이 약했던 나는 공장 안에서 몇 번을 쓰러졌고, 학교를 못 가는 날도 많았다.



방직공장은 한 사람이 여러 대의 기계를 책임지는데 나란히 있는 것도 아니고 이쪽저쪽 나뉘어 있다 보니 기계 하나가 서면 달려가서 실을 이어줘야 하는 고된 일이었고, 기계가 자주 멈추면 조장님이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어느 날 공장 안에서 내가 기절을 했고, 부모님에게 연락이 갔는지, 다음날 서울에 있는 다섯째 언니가 나를 데리러 왔고, 언니는 서울 가서 다시 학교에 들어가자고 하면서 사표를 내고 자퇴를 시켰다.



다섯째 언니도 그 당시에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으니 나를 데리고 있기가 어려운 상황이라 나를 다시 넷째 언니 집으로 보냈고, 넷째 언니는 형부 눈치가 보인다면서 나를 기숙사가 있는 봉제공장에 들여보냈다.



17살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봉제공장에서 아침부터 한밤중까지 일을 하면서 아침에 학교 가는 또래만 봐도 눈물이 나고, 완성된 옷에 붙은 실밥을 뜯는건지 내 입술을 뜯는건지 그렇게 봉제공장에서 지내기를 몇 달.

누구를 원망할 기운도 없이 흘러가던 시간 위에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들어가려면 시험도 봐야 하는데 마음이 초조해져 갈 무렵 다섯째 언니가 드디어 나를 봉제공장에서 무사히 구출해 냈고, 봉제공장에서 몇 달 번 돈으로 서울에선 방을 구하기 어려웠기에 성남시에 있는 작은 자취방을 구했다.

시험날이 다가오고 밤낮없이 공부를 해서 간신히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추운 겨울날 아버지와 엄마가 나의 자취방에 오셨고, 아버지는 연탄 500장을 넣어주시면서 이제 어떻게든 혼자 살아가야 한다고,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이게 전부라면서 엄마에게 술 하고 담배를 사 오라 하셨다.



아버지 엄마는 술을 전혀 못하시는데 무슨 술이지 의아했는데 아버지는 대접에 술잔을 따르고 담배에 불을 붙여서 내게 내밀었다.



그날 17살의 막내딸을 앉혀놓고 술잔을 내밀면서 아버지가 내게 말했던 이야기는 지금도 여전히 토씨하나 지워지지 않은 채 내 가슴에 슬픔과 외로움으로 숨을 쉬고 있다.



" 지금부터 아비말 잘 들어 !

서울은 다 도둑놈들이 사는 곳이여 ~~ 아무도 믿지 말고, 아무에게나 정 주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겨

외롭다고 속상하다고 괜히 밖에 나다니지 말고 곧장 와서 저 술 한 사발 들이켜면 되는 것이고, 답답한 일이 생길 때 울고 싶어질 때가 오면 후딱 집에 와서 저 담배 한 모금 후 ~~ 하고 뱉어내면 살아질 수 있을 거야 자주는 먹지 말고 "



" 누구도 너를 알아주거나 도와줄 수 없는 거니께 그냥 이제부터 네가 알아서 살아가야 혀 네가 공부를 허겠다 하니 말리지는 않을 거고 기왕지사 공부를 헐 요량이면 지지 말고 악착같이 혀서 서울것들한티 기죽지 말고 똑똑하니 혀야지 안 그러면 다 소용없어지는겨 그냥 촌에서 농사나 돕다가 시집을 가는 수밖에 더 있겠어 !


아비는 늙어서 더는 너를 뒷바라지해 줄수도 없고 저너머 니 조카 그려도 장손인디 그거 가르치기도 힘이 부치는데 너까졍 학교를 간다 하니 아비가 맘이 맘이 아닌데 어쩌겠냐 ? 같은 해에 태어나서 네가 손해를 보고 사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는 건 기정사실이니까 앞으로는 어떻게든 너 혼자서 험한 세상 헤쳐가야지 "



그날 17살에 부모 형제가 있었음에도 나는 나의 보호자가 되었다.

보증금 30만 원에 월 4만 원 그리고 연탄 500장 번개탄 10개

내가 가진 전부였고 난 그렇게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다섯째 언니가 가끔 용돈과 책값을 도와주긴 했지만, 턱없이 부족했고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두 개 때로는 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를 다녀야 했다.

대학이 가고 싶어서 공부도 소홀히 할 수가 없었으니까 어느 때는 일주일을 꼬박 새운적도 있다.



내가 하루 스물네 시간을 쪼개고 쪼개면서 신문배달, 우유배달, 목욕탕청소, 문구 배달, 초등학교 교무실 급사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고도 먹을 게 없어서 싹 난 감잣국을 멀겋게 끓여 먹으면서 배를 채우고 추운 겨울 얼음물을 깨서 머리를 감고 어떤 해에는 싼 방을 얻느라고 보일러도 없는 창고방에서 옷을 껴입고 살았고, 수업료가 밀려서 담임선생님이 발등을 밟아도 나는 견뎌내야만 했다.

아니 그렇게 살아야 했고 살아내고 있었다.



밝은 성격이라는 게 어느 때는 엄청난 힘이 되지만 또 어느 때는 그 밝은 성격으로 인해서 저 애는 괜찮아. 잘 살고 있네. 별일 없나 봐로 비쳤기에 다른 사람들은 나의 밝은 성격만 보고 나를 판단해버리곤 했다.

하물며 나의 부모 형제들조차 나의 내면에는 관심이 없었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얼마나 고단한지.

오히려 냉정한 년이라고, 독한 년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명절에 빈손으로 왔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학생이 돈이 어디 있느냐 하면 돌아오는 말이



" 그러게 누가 학교 가라고 했냐 ? 돈이나 벌어서 시집이나 잘 가면 되지 "



왜 남자라는 이유로 장손이란 이유로 동갑인 조카는 손하나 까딱 안 하고 귀공자 대접을 받으면서 학교를 다니고 왜 여자라는 이유로 학교를 보내준 것도 아니면서 혼자 어떻게든 살아내는데 한마디 말조차 따듯하게 해주지 않은 것일까 ?



나는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렸는데 동갑내기 조카는 생선살도 발라줘야 하는 어린아이 그대로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



세월이 지나도 우리 집의 저울은 여전히 한쪽으로 기울어갔고 내 마음은 노랗게 곪아갔다.




술과 담배는 나의 외로움 서러움 괴로움 고통의 친구인데 내 아버지가 나에게 남겨준 유산이고 나의 친구이며 나의 동반자인데 ~~



술을 끊어라

담배를 왜 피우냐

여자가 무슨 술을 마시고 담배를 먹냐


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항변을 했었다.



무슨 왈왈 같은 말씀이십니까 ?

내가 내 부모에게 배운 것이고 유산인데 내가 가진 유일한 사랑의 증표인데 그마저 끊어내라고 하십니까 ?

여자가 담배 피우고 술 마시면 안 된다고 헌법에 나와있느냐고 ?



우리 사회는 끝없는 차별로 할퀴어대고 상처를 낸다.

여자라서, 학벌이 낮아서, 출신이 미천해서, 못생겨서, 키가 작아서, 뚱뚱해서, 셀 수도 없는 차별 속에 무너져야 하는 것들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



아버지는 나에게 담배와 술을 가르치기 위해 마셔라 피워라 한 것이 아님을 안다.



데릴사위로 처갓집에 팔려온 거나 다름없었기에 아버지는 늘 엄마의 눈치를 보셨고, 당신의 막내딸에게 세상을 가르쳐주고 싶었던 마음을 술과 담배를 빌려 세상을 알려주신 것이고 내가 깨닫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그것은 늘 경계하고, 스스로 책임지고, 사람을 가려 사귀고, 슬기롭게 헤쳐나가고, 현명한 사람이 되라는 교육을 술과 담배에 비유해서 가르치고 싶으셨던 것이다.

아버지의 깊은 생각을 17살에 어렴풋이 알았지만, 세상을 살아오면서 점점 그날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되고 읽어지고 있었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은

부모와 스승으로부터 벗어나,

낯선 곳으로 첫걸음을 디뎌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그들의 밑으로 기어들어 가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혼자 걸어야 하는

그 혹독한 고독의 시간을 경험해야 한다.

< 헤르만 헤세 >





삶은 나 스스로 어떤 마음을 갖고 나아가는가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어떤 환경도 내가 굳은 의지로 헤쳐나갈 마음과 용기가 있다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아버지가 그날 내게 하시고 싶었던 말씀이 이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살면서 늘 아버지의 가르침을 깨닫기 위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면서 나아가는 삶을 선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