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1986
* 표지사진: 명동성당
지난 주에 잠깐 서울에 갔었다. 딸아이와 함께. 그때 같이 명동성당에 갔었다. 나의 오래된 추억을 이야기하며. 밑의 글은 그 추억에 대해 오래전에 페북에 썼던 글이다. 이곳에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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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개신교개통 미션스쿨이었다. 좋은 학교였다. 성경시간이 일주일에 두세시간씩 있었다. 성경도 제법 읽었다. 아마, 신약은 전광훈보다 훨씬 더 많이 읽었을 것이다. 예수를 부처와 같은 등급의 위대한 현인으로 본다.
20대에 카톨릭 신자가 되었었다. 물론 신의 존재를 믿어서가 아니었다. 70-80년대의 민주화운동에 지대한 역할을 한 기독교사회에 대한 존경심이 있었다. 나의 고향 익산 집에서 가까운 성당에 문정현신부님이 계셨다. 그분의 삶이 너무 존경스러워, 절에 다니시던 어머니를 모시고 한두번 미사에 간 적도 있다. 그분을 그냥 멀리서나마 뵙고 싶어서. 세례를 받기도 전에.
내가 정식으로 신자가 되는 데에는, 나의 한번의 경험이 주효했다. 아마, 그때가 서울에서 대학원을 다니던 어느 일요일이였다고 기억한다. 햇살이 따스했던 날이었다. 그날,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명동성당에 갔었다. 어떤 간절함때문이었으리라. 그곳에 간 것은 처음이었다. 성당 마당 한귀퉁이에 서 있었다. 미사에 참석하기엔 난 믿음이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몰려오는 광경을 보았다. 남녀노소, 허름한 옷을 입은 사람들,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 어떤 간절한 소망을 하나씩 가슴에 품고 오는 사람들. 이 다양한 사람들을 보며 문득, 아 이런 모든 사람들의 소망을 다 모아서 응축해서 결정화시키면 그걸 신이라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깨달음이 왔었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역사속에서의 하느님'과 비슷한 정의랄까? 신의 존재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던 난, 그렇게 일종의 타협을 보았던 것이다.
그 종교의 절대적 기반인 유일신의 존재를 믿을 수 없는 나의 신앙심은 물론 오래가지 않았다. 몇년도 못 갔다. 성당에 가 미사를 드린지가 마지막으로 언제인가..
난 무신론자였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무신론자다. 과학적 사고와 공존이 가능한 종교는 불교계통 뿐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