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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성조 Sep 13. 2023

몽골 1일 차. 울란바토르

몽골 국영백화점과 수흐바타르 광장

 새벽 5시 30분. 여행 당일 아침은 항상 갑작스럽고 바쁘다. 내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를 느낄 새도 없이 시간은 나를 목적지로 빠르게 끌고 간다. 어제 새벽까지 바리바리 싼 짐을 두 손 가득 들고, 해도 뜨기 전 공항버스를 타러 떠났다. 이제 자취를 하니 배웅하는 사람도 없다. 열흘간 주인 없이 지낼 집을 한 바퀴 쓱 둘러보고, 문단속까지 두 번 세 번 했다. 두 발로 뚜벅뚜벅. 가자! 몽골로-


 몽골이라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곳을 가고 싶다 하면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들 중에서도 동행을 구하기 쉽지 않았다. 실제로, 몇 년 전까지 짧은 관광이라도 비자 발급도 필수였고, 몽골에 취항하는 항공편도 대한항공과 미아트 몽골리안 항공뿐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우선, 이제 관광이 목적이라면 90일까지는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다. 그와 더불어 몽골로 가는 항공편과 여행사 패키지 프로그램도 아주 많아졌다. 몽골 현지에는 한국인 관광객이 많아 원화만 챙겨가도 현지에서 환전이 매우 쉽기까지 하니, 마음만 먹으면 쉽게 여행을 떠날 수 있다. 특히 얼마 전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서 몽골여행 방송이 나온 후로는 몽골에 대한 관심이 더더욱 뜨거운 듯하다.


 줄을 서서 짐을 부치는 사람들을 둘러보니 역시나 대부분 배낭 여행객들이다. 동행을 만나고 들뜨는 내 기분 탓인지 몰라도 다들 얼굴에 은은한 설렘이 느껴진다. 우리는 몽골에서 무엇을 보게 될까? 각자 어떤 추억을 안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까?


 일본으로 떠났던 20대의 첫 이륙이 생각난다. 인천공항에서의 첫 비행은 한 시간 남짓이었는데, 나는 그 한 시간을 도무지 잊고 싶지가 않아서, 지금 이어폰으로 듣고 있는 음악 제목까지 하나하나 일기장에 모조리 적고 있었다.


 20살. 가이드는커녕 구글 맵 캡쳐본 하나 덜렁 들고, 로밍도 안 한 채로 대학 동기와 단 둘이 떠났다. 여행 출발 직전 원래 가려던 여행지에서 테러가 일어나, 여행지를 급하게 바꾸었는데, 일본어는 하이, 아리가또, 스미마셍 꼴랑 3마디 알고 있었고, 여행사도 당연히 없었다. 그게 너무 재미있었다. 가격이 제일 싸다는 이유만으로, 여자 둘이서 러브호텔에 뻐적뻐적 들어가 숙박을 할 정도로 패기가 넘쳤다. 그것도 너무 재미있었다.


 그리고 우린, 3박 4일 내내 온종일 싸웠다. 일이 안 풀릴 때마다 꽁해있었다. 음식이 맛이 없어도 꽁, 식당이 문을 닫아도 꽁, 날씨가 더워도 꽁 비가 와도 꽁해 있다가 결국 버럭버럭 성질을 내곤 했다. 거진 10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여행지에서 뭘 했는지조차도 잘 나지 않는데, 꽁해서 시시각각 성질을 내던 게 생각할수록 웃겨서 낄낄거린다.


 어느새 결혼을 앞둔 그 친구와 만날 때마다, 아직도 오사카 간사이 국제공항에 내렸을 때의 막막함을 이야기한다. 날짜별로 싸웠던 에피소드를 떠들곤 한다. 뾰로통해있다가, 뾰족뾰족하게 맘껏 화내도,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다시 화해하고 웃어넘길 수 있었던 그때가 너무 재밌다.


 그러나 현재 비행기 안, 이륙의 설렘... 보다  '익숙함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할 새도 없이 기절하듯 잠들어버렸다. 눈을 떠보니 어느새 비행기는 착륙 중이었다. 공항버스부터 시작되는 도합 5시간 30분의 이동시간을 잠에 쏟아부었는데도, 더 자고 싶어 아쉬운 걸 보니, 20대의 끝자락에 온 것이 실감이 난다. 아까운 내 체력! 아까운 내 20대! 젠장할- 누군가가 보면 코웃음 칠 나이란 것을 알지만, 요즘은 나이 앞에 2가 아주 하루하루 아까워 죽을 지경이다. 멈추고 싶다! 아주 격하게.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쓸데없는 잡념을 날린다. 매번 보이던 도시가 아니라 거대한 대지가 내려다 보인다. 생경한 풍경이다. 신기하다! 붉은 땅녹색 풀이 딱 반반씩 그라데이션이다. 창 밖에서는 앞으로의 여행이 어떨지 예고편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니깐... 보조 배터리를 굳이 세 개씩이나 챙겨 올 필요는 없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머릿속에 화악 스친다. 지금까지 다녔던 모든 여행지 중 착륙할 때 카메라 셔터 소리가 가장 많이 들려온다. 나도 덩달아 한 컷 찍었다.




흠 이게 아닌데- 역시 눈으로 보는 게 제일 멋있다.

 드디어 우리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Ulaanbaatar)에 있는 칭기즈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칭기즈칸 공항이라니- 우리로 치자면, 인천 국제공항 이름이  '세종대왕' 공항인 거잖아!  아님 '광개토대왕' 국제공항 이라던가. 생각해 보니, 꽤 멋진데?


  7월 말 치고는 날씨가 덥지도 않고- 한국인도 많아서 여기가 몽골이 맞나 싶었는데, 공항에서 나가자마자 건조함과 흙 향이 확 느껴진다. 흙향기 나는 공항이라니- 외국에 오면 공기가 다르다는 게 그냥 있는 소리가 아닌 것 같다. 국제공항 치고는 크기도 아담해서 왠지 편안한 기분이다. 드디어 왔구나! 슬슬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보통 본격적인 투어 프로그램은 몽골에 온 다음날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첫날은 울란바토르에서 자유시간을 가진다. 체력 비축을 위해 좋은 호텔에서 쉬는 사람들도 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노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몽골 치안은 한국처럼 밤에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닐 정도로 좋은 편은 아니기 때문에, 해가 지면 무조건 숙소로 돌아오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래도 아직은 해가 중천인 시각이라 우리는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해 간단한 안내를 듣고 울란바토르 시내를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목표는 2개였다. 첫째, 몽골에서 규모가 가장 큰 국영백화점에 들러서 환전을 한다. 둘째, The Bull이라는 관광객 필수 코스 샤브샤브 집에 가서 밥을 먹는다(우리는 인천공항에서 이른 아침으로 한식을 한 끼 먹고 내내 굶고 있었다)!


 야심찬 목표와 함께 거리로 나선 울란바토르는 첫인상은... 노란빛 한국이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흰색 건물에 고풍스러운 황금색과 레몬색 문양들이 잔뜩 그려져 있었는데, 그 노란빛들이 아니었으면 대한민국의 어느 중소도시라고 해도 믿길 만큼 한국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몽골에는 '서울의 거리'까지 조성되어 있다. 1996년에 울란바토르는 한국과 서울의 자매결연을 맺었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테마 거리이다. 한국식 정자부터 시작해서 한글, 한국 가게, 편의점, 카페가 곳곳에 보이는데(심지어 봉구스 밥버거도 발견했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몽골에 진출한 수많은 한국 브랜드 중 단연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편의점이다. 특히, CU는 2018년 몽골에 진출한 지 5년 만에, 2023년 3월 300호점을 오픈했다던데, 1퍼센트의 과장 없이 사거리를 하나 지날 때마다 CU가 보였고, 그 안에는 다시 온갖 한국 음식과 물건들이 가득했다.

 

몽골 서울의 거리에서 봉구스를 만나다-!


 물론, 한국인 관광객도 넘쳐났다. 비슷하게 생긴 아시아계 사람들이 한데 있으니 여기가 한국인지, 몽골인지 알 수가 없는 이 기분..! 편하다! 지금껏 여행을 다닌 모든 국가 중에, 가장 편안하다. 해외여행을 떠날 때마다 소매치기를 당하면 안 돼! 길을 잃지는 않겠지? 허둥대며 두 눈을 부릅뜨는 미어캣 같은 마음을 울란바토르에서 만큼은 잠시 접어두어도 좋다.


 이 정도면 투어사에서 받은 몽골 유심 데이터가 잘 터지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한국 여행처럼 여유롭게 거리를 거닐다가, 지나가던 한국인 관광객한테 스리슬쩍 물어보면 된다. 어찌 되었건 이 문명을 즐겨야겠지. 와이파이도 데이터도 없는 곳으로의 먼 여정이 곧 시작될 테니 말이다.

  



 아 그리고, 내가 칭기즈칸 공항에서 덥지 않았다고 그랬던가? 취소다 취소! 울란불타오르네로 이름을 바꿔도 이상하지 않을 더위다. 7월 말의 뜨거운 열기는 하늘에서 시작하기 무섭게, 단숨에 직선으로 내리꽂아 정수리 위를 관통한다. 10분 정도 걸었으려나? 우리는 목적지인 몽골 국영 백화점에 도착하기도 전에 늘어선 가판대의 아이스크림 가게부터 기웃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환전하면 저것부터 먹고 말리라- 다짐하면서.


  보통은 여행 전 한국에서 환전을 해 오거나, 현지 공항 환전소 혹은 은행에 갔었는데, 특이하게도 몽골에서는 울란바토르 국영백화점 4층 환전소에 갔다. 물론 칭기즈칸 공항 2층 환전소나 국영백화점 근처 은행에서도 환전이 가능하다. 경비는 팀 스타일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6명 기준으로 공용 경비를 각 5만 원씩, 개인 경비를 약 10만 원씩 환전했다. 그리고 마지막날에 가이드 팁과 맥주 파티 비용으로 경비를 3만 원씩 더 걷었다.

 

 몽골 여행 때 개인 경비는 거의 필요하지 않다던 후기가 많았는데, 그래도 10만 원 정도는 환전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낙타인형처럼 카드결제가 되지 않는 물건을 사거나 입장료를 지불할 때, 가끔 팁을 모아서 낼 때, 너무 더워서 아이스크림이나 맥주를 살 때 등등 경비가 필요한 일이 꽤 생긴다.


사진 출처 : 트립 어드바이저

  환전을 하고 시원한 곳에 있다 보니 정신이 들어 주변을 살피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이게, 백화점이 맞나? 한국의 백화점을 생각하고 간 나는, 90년대 자료화면에 나올 법 한, 조금은 촌스럽게 번쩍거리는 국영 백화점이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게다가 명색이 백화점인데, 에어컨이 약해 후덥지근하다니!


 그러나 점점 알 수 없는 감정이 점점 마음을 끈다. 이곳은 뭐랄까... 백화점보다는 정겨운 종합 쇼핑센터에 가까웠다. 걸을수록 나타나는 온갖 물건들이 재미있어서, 자연스럽게 이곳저곳 기웃대며 시장에 들른 것처럼 구경을 했다.


 한국에서 어쩌다 백화점에 들르게 될 때마다, 괜히 안 맞은 옷을 꾸역꾸역 끼워 넣고 파티에 참여한 사람 마냥 도망을 쳤다. 옷 하나 구경해 보겠다고 평소의 청바지 차림에 핸드폰 하나만 들고 운동화를 질질 끌고 가기에는 휘황찬란한 그곳의 자태에 기가 죽어버린달까? 비싼 가격을 차치하더라도, 번호표를 뽑고 2시간을 기다려야 새하얀 면 장갑을 낀 직원이 꺼내주는 물건을 간신히 눈으로만 볼 수 있다는 말에 나는 괜히 또 기가 죽어버렸다.


 그렇다고 물건 한 번 사 보겠다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고 싶지도 않은 치장을 억지로 하면서 이곳에 어울리는 사람인 척하는 것은, 별 같잖은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백화점에 사람이 바글바글하면, 가끔은 짜증이 났다. 몇 백짜리 물건을 한 번에 턱턱 사면서, 맘 편히 돌아다니는 인간이 이렇게 많다고? 그러니까 쫄보인 내가 백화점에서 가격표를 보지 않고 그냥 막 쇼핑할 수 있는 건, 지하 1층 푸드코트에 들러서, '어머 비싼 초밥을 살까, 아니면 비싼 피자를 사볼까 호호' 하는 게 전부였다는 말이다.  


  그러나 몽골은 자유롭다. 당연히, 백화점에 있는 물건들을 모조리 살 수 있는 부자가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이곳에서는 척하지 않아도 된다. 그게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지금 이곳 몽골 국영백화점에는, 머리부터 발 끝까지 완벽하게 꾸민 사람들과, 주욱 늘어난 티셔츠에 반바지만 간신히 차려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섞여서 걷고 있다.


 울란바토르 거리도 마찬가지였다. 패션도 제각각, 걸음걸이도 모두 제각각. 아이부터 노인들까지 나이대도 제각각이다. 10년 전 유행과, 5년 전 유행과, 요즘 한국에서 자주 보이던 옷들까지도 함께 있는 몽골 거리에는 이방인이 없었다. 나도 사람들과 함께, 언제 샀는지도 기억이 안나는 애착 티셔츠를 입고, 멋대로 신나게 걸었다.  

     

 몽골 국영백화점 1층에는 화장품과 귀금속, 식료품 마트, 프랜차이즈 음식점과 카페, 2층에는 의류, 3층에는 몽골에서 유명한 캐시미어 제품들이 있었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더 올라가니 가전제품과 스포츠 용품, 침구류까지 정말 없는 게 없었다. 6층에는 몽골 기념품 샵도 아주 크게 있다. 우리는 투어 마지막날에 쇼핑 일정이 있어 첫날에는 아무 물건도 사지 않았지만, 꼭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니, 울란바토르에 가면 꼭 들러보도록 하자.



 국영백화점을 나와 우리가 예약한 The Bull 식당까지는 25분 정도를 걸어야 했다. 식당 위치를 잘못 검색했나 싶어 몇 번이나 다시 해봐도 걸어서 25분! 다른 식당을 갈까 생각을 잠깐 해봤지만, 솔직히 묘한 대안을 떠올릴 만큼 머리를 고생시키고 싶지가 않았달까? 훨씬 더 가까운 분점이 국영 백화점 근처에 있다는 건 여행 막바지에 알게 되었다. 역시, 몸이 튼튼하면 머리가 편하다(?)  


 그래 뭐 대수냐! 일단 걷자. 언젠가 나오겠지. 일단, 아까 그 아이스크림이나 하나씩 먹고 갈까? 국영 백화점 앞, 몽골의 홍대라고 불리는 체렌도르즈 거리에서 2000투그릭짜리 소프트콘을 하나씩 사들고 우리는 걸었다. 크기가 꽤 컸는데도 한국 돈으로 700원 정도니 저렴한 몽골 물가가 실감이 났다. 매번 촉박하게 시간에 쫓겨 살다, 달달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고, 6명이 나란히 줄지어 시간을 느긋하게 쫓아가는 하루. 그냥 좋다. 여행 첫날은 뭘 해도 그냥 다 좋다!


 한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거대한 광장이 보인다. 오 저게 뭐야..? 누가 봐도 눈에 띄는 가장 크고 높은 건물이 보인다. 그 앞에는 왠지 모르게 칭기즈칸일 것 같은 동상이 위엄 있게 앉아있고, 말을 타고 저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처럼 높이 팔을 뻗고 있는 동상이 그 앞에 마주 서있다.


 드넓은 광장을 뱅글뱅글 돌고 있는 자전거, 푸르른 잔디밭에서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까지. 동행중 그 누구도 사전조사를 하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알았다. 여긴 관광지다! 일단, 사진을 찍어라!  


아이스크림과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소뒷걸음질에 쥐 잡은 격으로 수흐바타르 광장에 와버렸다. 자작극 아니냐고 하면 증명할 방법은 없지만서도 진짜다. 수흐바타르 광장은 몽골이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독립하는데 큰 공을 세운 인물인 수흐바타르 장군의 이름을 딴 광장이다. 말을 탄 수흐바타르 장군의 청동상이 광장 중앙에 세워져 있고, 청동상 앞에는 몽골 정부청사와 칭기즈칸 동상이 마주 보고 서 있다(역시나 칭기즈칸이 맞았다.).


 나중에 가이드가 설명해 주시기를, 수흐바타르는 칭기즈칸만큼 몽골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동시에 몽골의 민주화 과정에서 반 공산주의 시위가 열리기도 한 역사적인 장소라고 한다. 울란바토르라는 도시 이름까지도 몽골어로 '붉은 영웅'이라는 뜻의 수흐바타르 장군을 기리기 위해 지은 이름이라고 하니, 몽골 내에서 그의 역사적 영향력을 엿볼 수 있었다.


 관광객들과 현지인들에게 이곳은 랜드마크로 통하는데, 울란바토르 시내의 주요 볼거리가 이 수흐바타르 광장을 중심으로 조성되어 있다. 어쩐지- 건물들이 예사롭지가 않더라니. 간판에 National이 많다 싶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몽골 국립 박물관, 몽골 국립 현대 미술관, 몽골 국립 아카데미 극장까지 울란바토르를 대표하는 여행의 정수를 한데 모아 놓은 거리를 샤브샤브를 먹겠다는 단순한 일념 하나로 걷고 있었던 거다.  

 

  한참을 걸어 드디어 도착한 The Bull 식당은 '우와!' 소리가 나올 만큼 굉장히 현대적이고 좋은 시설에, 결정적으로 에어컨이 아주. 강렬하게. 시원했다. 그 냉기가 한국에 돌아와서도 생각이 날 정도로 말이다. 우리가 이 식당을 선택한 이유는 아주 단순했는데, 후기가 제일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한국 사람들이 또 실시간으로 후기를 쓰고 있을 테니, The Bull에는 아마 지금도 한국 사람들이 가득할 듯싶다.


 사실 음식을 먹을 당시에는 매운맛 육수인데도 한국 사람 입맛에는 조금 밍밍했고, 더운 날씨에 정신이 없어서 그렇게 맛있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그러나, 몽골 투어를 진행하면서 양고기에 물려갈수록 첫날 이 식당이 계속 생각났다. 푸릇푸릇한 생 야채부터 얇게 저민 소고기와 말고기, 얼음장처럼 차가운 맥주까지- 특히 말고기가 생각보다 냄새도 나지 않고 독특하게 맛있었다. 목 끝까지 배부르게 먹은 것 치고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가격도 꽤 저렴하다.  


 그리고 음식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이긴 하다만, The Bull에서는 꼭 화장실에 들러라. 황금색으로 화려하게 인테리어가 된 화장실이 정말 쾌적하고, 향기로운 향까지 은은하게 난다. 시원한 물도 콸콸 나온다. 맛집 소개하다 말고 이게 대체 무슨 더러운 소리인가 싶겠지만은, 지금 나도 뜬금없는 문장을 쓰고 있는 열 손가락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만약 몽골 여행을 가게 되었다면 부디 이 말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당신이 좋은 건물에 들린다면, 일단 화장실에 가라. 정말 중요하다. 다시 한번 말하겠다. 화장실 안 가고 싶어도, 일단 들어가라. 나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인간이라 절대 자만하지 마라. 왜냐고? 요즘 많이 쓰는 밈을 활용하자면- 그러니까 나도 진짜 왜 그런지 알고 싶지 않았다.  

몽골에서는 생야채가 고기보다 귀하다(중앙), 연유를 찍어먹는 후식빵(우측)


  

 저녁 7시가 넘어가는데도 해가 꽤 남아있어, 우리는 2차로 펍에 들러 맥주까지 한 잔 거나하게 걸쳤다. 앞으로의 일정을 기대하고, 서로의 말 못 할 고민을 이야기하면서. 처음 보는 동행과 여행을 하면 어색하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여행지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과도 생각보다 깊은 이야기를 꽤 할 수 있다.


 딱 열흘 간이어서 오히려 더 아쉬운 절친들- 열흘 후면 전국 각지에 흩어질, 잊으려 애써도 머릿속 한켠에 평생 남을 몽골의 동지들! 여행기간 동안은 원치 않아도 의식주부터 생리현상까지 모조리 공유하다 보니 친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혹여나 다시 보지 못하더라도, 나는 몽골이 그리울 때마다 친구들을 떠올릴 것이다. 여행지의 기억은 꽤 힘이 세다.  


 오늘은 하루가 무지하게 길다. 게스트하우스 2층 침대에 누워 한국에서 짐을 싸던 24시간 전을 떠올려본다. 세상에- 진짜 몽골에 와버렸다. 분명 울란바토르 관광을 신나게 하고 왔는데, 이렇게 침대에 누워있으니 다시 한국 같다. 앞으로의 열흘도 기대해 본다. 몽골의 웅장한 자연은 상상조차도 쉽지가 않다. 휴대폰에서 본 직사각형 초원, 직사각형 밤하늘, 직사각형 호수 너머로는 생각이 당최 뻗어 나가지를 못한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 을 짓고 사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내 생에 가장 푸른 초원과 하얀 별들을 곧 보게 된다. 이제 진짜, 본격적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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