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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Jun 12. 2022

161125-02

세탁소 할머니의 불친절함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



그렇게 또 시간은 흘러 세탁소를 그만둔 여자가 잘 쉬고 있을지 어쩔지는 하나도 생각하지 않은 채 수요일 저녁이 되었다. 집에 오니 밤 11시. 남편은 아직 퇴근 전이고, 아이는 입주 도우미와 함께 잠들어 있는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옷을 갈아입고 세탁실에 빨랫감을 넣어두러 들어갔는데 셔츠 보관함이 꽉 찬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지난주에 맡겼던 것을 찾아만 왔지 새로 맡기지를 않았다. 부랴부랴 지난번에 그 여자가 말해 준 두 지점의 위치를 확인해보았다. oo점보다는 ooo점이 집에서 조금 더 가까운 것으로 나왔다. 내일 오전에 외부 미팅이 있어 평소보다 조금 늦게 출근을 해도 되니 새로운 세탁소에 들를 시간이 될 것 같았다. 아침에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셔츠 보관함을 현관 입구에 내어 놓았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은 급히 나를 불렀다.      


셔츠가 이것뿐이야?

아, 원래 다니던 데가 문을 닫아서 못 맡겼어. 안 그래도 오늘 새로운 데 맡기려고.

오늘 맡기면 다음 주나 되어야 나오잖아.     


셔츠 걸이를 보니 셔츠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다른 거 입으면 안 돼?

아, 이건 별론데. 그냥 아줌마보고 세탁하라고 하면 안 되나? 매번 이렇게 맡겨야 하나?

기억 안 나? 다림질하다 다리미 떨어뜨려서 수민이 허벅지 데인 거? 그때 당신이 아줌마 집에서 다림질 못하게 했잖아.

아유, 알았어.     

     

말끝에 짜증이 확 느껴진다. 내 눈에는 다 똑같은 흰색 와이셔츠인데 남편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나도 아침에 입으려고 했던 옷이 아직 덜 말랐거나 세탁이 안 되어 있으면 짜증이 나니까 이해해보려고 했지만 순간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저런 태도는 내가 돌도 안 된 아이를 입주도우미에게 맡기고 복직을 한 것이 마치 내 욕심 때문인 것처럼 나조차도 착각하게 만든다.      


결혼하고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회사 일이 한창 바쁠 때 임신을 했었다. 그때쯤으로 계획은 하고 있었지만 마냥 행복하고 신기해할 여유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입덧이 너무 심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말고 화장실로 뛰어가기를 하루에도 열댓 번씩은 했었다. 그때 남편은 일을 좀 쉴 것을 권유했었다. 하지만 그때 쉬면 출산 후에 쉴 수 있는 기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나는 악착같이 버텼었다. 출산 예정일 7일 전까지 꽉 채워서 근무하고 6개월의 출산휴가를 얻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6개월은 난생처음 갓난아기를 키워보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다. 출근을 앞둔 어느 날, 남편은 더 쉴 수 없냐고 물었었다. 6개월의 출산휴가도 겨우 얻어낸 것이기에 나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복직하면 그 전보다 더 바빠질 것 같아 아이도 봐주고 가사일도 해주는 입주도우미를 쓰자고 했다.      


그렇게 두 번, 남편이 제안하는 쉼을 내가 거절한 이후, 남편은 나의 고단하고 힘든 삶이 누구의 강요도 아닌 나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며 나를 위로해주거나 나의 짐을 덜어주려 노력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한 번 세탁소에 가서 세탁물을 맡기고 지난주에 맡긴 것을 찾아오는 것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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