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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Jun 12. 2022

161125-03

세탁소 할머니의 불친절함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




표면적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셔츠 때문에 실재로는 자신의 입장에서 무리하게 일을 계속하는 나 때문에 여전히 기분이 언짢은 채로 남편은 출근을 했다.    

  

아직 곤히 자는 아이의 얼굴을 한번 쓰다듬고 현관 입구에 둔 셔츠 보관함을 들고 나왔다. ooo점 앞에 차를 주차하고 시계를 보니 8:50이었다. 영업시간이 9:00~20:00이었으니 곧 문을 열겠지 싶어 차에서 기다렸다.

      

9:00에 시작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시그널이 나오는데도 세탁소의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주변 상점들도 모두 아직 문을 열지 않아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9:10분쯤 되자 저 쪽에서 느릿느릿 걸어오는 할머니 한 분이 보였다. 세탁소 주인이라고 하기에는 연세가 좀 있어 보여 그냥 지나가는 분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열쇠로 세탁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니 실제로 20분을 기다렸으니까 세탁물을 들고 차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갔다.      


열려 있는 문으로 들어갔으니 딸랑 소리가 나지 않아서 내가 들어온 걸 모르는지 안쪽으로 들어간 것 같은 할머니는 기척이 없었다.      


저기요.   

  

그런데도 아무런 소리가 없었다. 조금 더 크게 말해 보았다.   

   

저기, 세탁물 좀 맡길게요.      


그제야 안에서 할머니가 천천히 나왔다.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표정은커녕 매우 귀찮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쳐다만 보고 가만히 있어서 한 번 더 얘기했다.     

 

세탁물 좀 맡기려고요.

핸드폰 번호가?

아~다니던 데가 문을 닫아서 여기 처음 온 거라 번호가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핸드폰 번호가 어떻게 되냐고?

아, 010-9**2-2**4요.

이름은?

이희수.

주소는?

ooo아파트 102동 1003호요.      


할머니의 무뚝뚝한 표정과 용건만 간단히 말투와 당연하다는 듯 한 반말에 지금이라도 oo점으로 갈까 고민이 되었다. 그 순간 할머니가 내가 올려놓은 셔츠 보관함을 휙 뒤집어 남편 셔츠와 내 옷가지들을 쏟아냈다. 시간을 보니 9:20.      


oo점은 다른 지점보다 1시간 늦게 문을 닫는 대신 1시간 늦게 오픈이었다. 10시에 세탁물을 맡기고 출발하면 아무래도 늦을 것 같았다. 셔츠 8장, 블라우스 2장, 스커트 1장. 평소보다 세탁물이 많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내가 이미 머릿속으로 계산을 다 했는데도 할머니는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클릭을 하고 있었다.      


17,800원.

여기 카드요.      


카드를 카드리더기에 읽히고 서명을 하고 영수증이 나오기까지 그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차라리 회사 근처의 지점을 알아볼까 고민하던 그때. 할머니가 카드와 영수증을 내가 느끼기에는 분명히 건네주는 것이 아니라 받으면 다행, 못 받으면 어쩔 수 없음이라는 태도로 던져주었다.      


순간 할머니!!라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안녕히계세요나 수고하세요라는 말은 생략한 채 그냥 나와 버렸다. 그리고 운전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과하게 액셀을 밟으며 그곳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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