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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Jun 13. 2022

161125-04

세탁소 할머니의 불친절함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



긍정적인 태도보다는 부정적인 태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인간의 아니 적어도 나의 본성이라는 것을 그날 알았다. 이전 세탁소 여자의 친절함이나 신속함으로 인한 기분 좋은 감정은 세탁물을 찾아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거의 사라졌던 반면, 새로운 세탁소 할머니의 무뚝뚝함을 넘어선 불친절함이나 인내심을 요하는 처리속도로 인한 불편한 감정은 그날 미팅 장소까지 운전을 하는 내내 이어졌다.


하지만 미팅을 하는 와중에도 그 할머니를 생각할 정도로 비전문가는 아니었기에 남은 목요일과 금요일은 일하느라 정신없이 주말은 아이 보느라 정신없이 지나가고 월요일 아침이 되었다.   

   

셔츠 아직 안 찾아놨어?     


아니 저 남자는 나에게 할 말이 셔츠 맡겼어? 아니면 찾았어? 뿐인가?     


목요일에 맡겨서 아마 오늘쯤 나올 것 같은데.

그럼 오늘은 꼭 찾아줘.      


오늘 찾으려면 8시까지 집 근처로 와야 하는데 그러고 보니 나도 오늘은 그 시간에 퇴근이 힘들 것 같았다.

      

나 오늘 야근일 것 같은데 혹시 시간 되면 당신이 좀 찾을 수 있을까?

나도 오늘은 힘들어. 그냥 낮에 아줌마가 다녀오면 안 되나?     


더 이상 말을 해봐야 어차피 남편은 시간도 안 되겠지만 찾을 의지 따위는 애초에 없다는 것을 확인만 할 뿐일 것 같았다. 낮에 아줌마에게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세탁소로 가서 가지고 오는 것을 부탁해볼까 생각해봤다. 그러나 그 전 세탁소라면 모를까 옮긴 곳은 걸어가기에는 그것도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왔다 갔다 하기에는 먼 거리였다. 그곳의 위치를 설명하기도 애매했고 날씨도 꽤 쌀쌀했다. 결국 내가 점심시간에 잠깐 와서 찾아야겠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언제부터인가 남편과 대립이 예상되면 나는 입을 닫는 방식으로 대처해왔다. 남편과 논쟁을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감정만 소모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딪히고 깨지고 상처를 남기면서 조금씩 서로의 차이를 줄여나가는 것이 부부관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을 택했고, 그래서 우리 부부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끈끈해지는 것이 아니라 느슨해지고 있었다.

      

출근하자마자 3시간이 훌쩍 지났다. 다들 점심을 먹으러 가는데 나만 빠졌다. 점심시간이나 오후에 개인 용무를 보는 것 정도는 눈치를 안 봐도 되니 참 다행이다 싶었다. 회사에서 집까지 차로 10km 남짓. 차만 안 막힌다면 세탁물을 찾아 회사 근처로 와서 간단히 김밥이나 샌드위치 정도는 먹을 시간이 될 것 같았다. 더 여유가 있다면 세탁물을 집에 넣어놓고 와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월요일이라 낮에도 차들이 많았고 12시 30분이 거의 다 되어서야 세탁소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은 닫혀 있고 대신 문에 흰 종이 하나만 붙어있었다. [12~1시 자리 비웁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도 핸드폰 연락처도 없었다. 홈페이지에 ooo점 영업시간은 9:00~20:00이라고 되어 있었지 중간에 점심시간이 있다는 안내는 없었다. 뭐 할머니도 점심은 먹어야겠다 싶었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굳이 이 시간에 올 필요가 없었음을 생각하니 짜증이 났다.


2시에 회의가 있으니 1시에 찾아서 가면 회의 시간에 늦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집에 들러 간단히 밥을 먹고 잠깐 아이 얼굴 보고 나오면 되겠다 싶어 할머니의 점심시간을 감사해하자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집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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