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우히어 Jun 14. 2022

161125-05

세탁소 할머니의 불친절함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



아줌마에게 전화를 미리 할까 하다 말았다.    

  

하긴 전화를 했더라도 달라질 수는 없을 상황이었다. 낮 12시 35분. 우리 집은 동네 사랑방으로 변신해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내리는 순간 현관 바깥으로 퍼져 나오는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에 처음에는 다른 층에서 내린 줄 알았다. 하지만 1003호가 맞았다. 처음에 그 사람들은 내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며 음식을 입에 넣고 있었다. 애들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한 곳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줌마.     


아줌마들이 일제히 나를 봤다. 1초 정도였을까. 그들은 나를 나는 그들은 말없이 응시했다. 그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겠지. 하지만 제일 당황한 사람은 우리 집 아줌마였다.     


아,, 수민 엄마.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이게 다 뭐예요?      


그 사이 당황했던 무리들 중에 제일 싹싹한 사람이 내 옆으로 오며 넉살 좋은 웃음을 지으며 이 상황을 설명해줬다.      


안녕하세요? 수민이 엄마 시구나. 수민이가 누굴 닮아 저렇게 똑똑하고 예쁜가 했더니 엄마를 쏙 빼닮았구나. 저희는 이 동네에서 낮에 애 봐주는 사람들인데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같이 점심 먹어요. 애들도 저희하고 집에 단 둘이만 있는 것보다는 또래들하고 어울리면 더 좋고. 지금 잠시 저희들 밥 먹느라고 애들 뽀로로 틀어 준거예요.      


방금 들은 말에서 이해 못 할 부분은 없었다. 도우미 아줌마들도 수다 떨 상대가 필요할 테고 밥도 먹어야 할 테고 나도 주말에 애랑 있다 보면 티비를 다시 설치할까 싶은 순간이 많으니까. 그리고 예전에 회사 동료들로부터 어떤 도우미는 낮에 집으로 남자 친구를 불러서 그 짓을 하다가 잠깐 집에 들른 바깥양반한테 들켜 그날로 쫓겨났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는데 그에 비하면 이건 약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허용되는 것이 나에게는 절대 용납 못할 일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죽어도 못할 짓이 나에게는 누워서 떡먹기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나에게는 모르는 사람들이 내 집에서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고 있는 것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내가 집에 왔는데 수민이랑 아줌마가 없어서 전화를 해봤더니 다른 집에서 다른 아줌마들과 밥을 먹고 있다고 했으면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내 집에서 이러는 건 전혀 다른 얘기였다.      


그래서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다들 나가라고 하고 아줌마도 나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1시까지 세탁소를 가야 했고 2시까지 회사에 가야 했다. 감정이 아닌 이성, 가슴이 아닌 머리. 내가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이유였다.      


아줌마. 저 잠깐 들른 건대 다시 가볼게요. 이따 저녁에 봬요.

죄송해요. 깨끗이 치워놓고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할게요.      


눈을 마주치면 애써 억누른 감정이 솟구칠까 봐 시선을 내리깐 채 몸을 돌려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현관문을 등 뒤로 닫고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버렸다.    

  

집이나 어린이집에 달린 CCTV 영상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어플은 요즘 워킹맘들의 필수 장치이다. 회사 동료들 중에는 도우미 아줌마가 아니라 친정 엄마나 시어머니가 애를 보는데도 CCTV로 확인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영상을 보고 있을 시간도 없었고, 집에 CCTV를 다는 순간 아줌마와 나 사이의 신뢰가 무너져 어떤 방식으로든 나 모르게 아줌마가 수민이를 괴롭힐 것 같아 처음 아줌마가 우리 집에 왔을 때 충분히 설명을 했다. 제가 믿고 맡기는 것인 만큼 아줌마도 저의 믿음을 저버리지 말아 주세요라고.      


그리고 적어도 내가 보는 아줌마는 흠잡을 데 없었다. 아이도 잘 다룰 줄 알았고 요리 실력에다 청소 실력까지 더할 나위 없었다. 그런데 내가 제일 싫어하는 행동으로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이야. 앞으로 더 이상 한 집에서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당장 오늘 밤에 나가라고 해야 하나. 그럼 내일부터 수민이는 어쩌지? 이 참에 그냥 좀 쉴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이런 생각이 2시 회의의 불참사유가 될 수는 없었고, 그전에 세탁물도 찾아놔야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161125-0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