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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Jun 15. 2022

161125-06

세탁소 할머니의 불친절함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



세탁소 앞에 도착하니 1 5분이었다. 그런데 아직 문이 닫혀 있었다. 처음 그날처럼  멀리서 할머니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도 한번 감정의 파도에 자신을 내맡기면 걷잡을  없이 요동치는 경우가 있나 보다.      


할머니를 보는 순간 오늘의 일이 마치 저 할머니의 불친절함 때문인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 이전 세탁소의 그 여자를 보며 잠깐이지만 받았던 위안 대신 새로운 세탁소 할머니로 인한 불쾌감이 나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문을 열자마자 쫓아 들어갔다.      


2**4. 세탁물 주세요.

영수증 줘요.

네? 영수증은 안 갖고 왔어요.

영수증을 갖고 와야지.

그런 말씀 안 하셨잖아요, 지난번에. 예전 세탁소에서는 영수증 없어도 다 찾아 주던데.     


할머니는 더 이상의 대꾸 없이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마우스로 클릭을 한다. 아주 느리게. 그 순간 논쟁의 순간에 입을 닫는 나에게 남편이 느끼는 감정이 지금 내가 할머니에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할까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상대가 나를 무시하고 있다는 느낌, 내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는 느낌, 나와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느낌.      


셔츠 8장, 블라우스 2장, 스커트 1장. 총 11개의 일련번호를 몇 번 되뇌더니 세탁물들이 비닐에 쌓여 걸려있는 곳으로 간다. 또 아주 천천히. 10초? 30초? 아니 1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셔츠는 없이 달랑 블라우스 2개와 스커트 1개만 들고 다시 카운터로 왔다. 그쯤 되니 나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왔다. 어느덧 시간은 1시 15분이 되었다. 이러다 회의에 늦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초조해졌다.      


할머니, 빨리 좀 찾아주세요.     

 

또 아무런 대꾸도 없이 심지어 나를 보지도 않고 다시 세탁물들이 비닐에 쌓여 있는 곳으로 가서 이번에는 1분도 넘게 있다 그제야 셔츠 8개를 들고 다시 카운터로 왔다. 카운터에 옷 11벌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나는 큰 비닐에 반으로 접어 넣은 다음 옷걸이 손잡이가 비닐의 구멍 위로 나오게 해서 나에게 전달해 주기를 마지막으로 기다렸다. 그런데 그냥 자리에 앉아만 있는 것이다.      


비닐에 안 넣어 주세요?

무슨 비닐?

아니, 파란색 큰 비닐 있잖아요.      


나를 한번 흘끔 보더니 매우 귀찮다는 표정과 동작으로 비닐을 꺼내고 옷의 끝 부분을 접는데 벌써 1시 20분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할머니 손에서 비닐과 옷을 뺏다시피 해 내 손으로 가져와 밖으로 나와 버렸다. 차 뒷문을 열고 비닐과 옷을 좌석에 집어던지고 문을 쾅 닫아버렸다. 운전석으로 돌아와 지난번보다 훨씬 더 세게 액셀을 밟으며 회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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