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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Jun 16. 2022

161125-07

세탁소 할머니의 불친절함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



 할머니만 만나고 나면 내가 봐도 나답지 않은 행동을 하는  같았다. 지난번에는 운전하고 미팅 장소로 가는 내내 할머니에게 짜증이 났는데 이번에는 운전하는 동안은 물론이고 회의를 하는 동안에도 회의가  끝난 뒤에도 계속 짜증이 났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표면적으로는 세탁소 할머니에게 짜증을 내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남편과 아줌마와 결정적으로 나 자신에게 짜증이 난 것임을.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남편과 나 사이의 공허함이 어쩌면 나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후회, 더 이상 함께 살기 힘들어진 아줌마로 인해 발생할 당분간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뒤섞여 짜증이라는 형태로 나를 휘감고 있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 한 달간, 정말 전쟁 같은 나날이 이어졌다. 아줌마를 그만두게 하고 처음 일주일은 친정에 그다음 일주일은 시댁에 아이를 맡겼다. 2주 동안 평일에는 하루에 한 두 명 씩 회사 근처에서 주말에는 하루에 서너 명 씩 집에서 도우미 면접을 봤다. 20명을 넘게 만나 봤는데도 도무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아이를 친정과 시댁에 맡긴 2주 동안 도우미를 구하지 못했고 나는 회사에 2주 특별휴가를 신청했다. 다행히 아주 바쁜 시기는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에 비해 출산휴가를 2~3개월 더 썼던 나로서는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주일씩 수민이를 보고 나가떨어진 친정엄마와 시어머니에게 다시 아이를 맡길 수는 없었다.      


그러는 동안 남편은 여전히 셔츠가 언제 집에 오는지만 확인했고 그 전 아줌마가 음식도 잘하고 청소도 잘했는데 다시 연락하면 안 되냐고 했었다.        

        

2주의 특별휴가가 끝나가던 금요일, 모처럼 낮에 기온이 올라간다고 하여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동네 산책을 나왔다. 여전히 아줌마는 못 구했고 당장 월요일부터 어떻게 할지 결정을 못한 상태였다. 갈팡질팡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낸 나와는 달리 한 달 전만 해도 텅 비어 있던 새로 생긴 아파트의 상가 건물은 어느새 상점들이 대부분 오픈된 상태였다.      


우리 아파트는 단지가 작아 상가가 따로 없었기에 반가운 마음에 안으로 들어가 봤다. 1층을 한 바퀴 빙 도는데 익숙한 초록색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세탁소 간판이었다. 안에서 어떤 여자와 남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유모차를 끌고 조심히 들어갔다.      


언제 오픈이에요?

다음 주 월요일이요.    

  

여자가 대답을 하며 나를 돌아봤다. 그 여자였다. 그런데 늘 보던 모습도 아니고 마지막으로 본 모습도 아니었다. 파마와 염색으로 헤어스타일이 확 달라졌고, 옷차림과 화장 모두 달라져서 못 알아볼 뻔했지만 그 여자가 맞았다. 일주일에 한 번 나를 위로해줬던 그 여자.   

   

하지만 그 여자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긴 아기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청바지에 어그 부츠를 신고 패딩을 입은 채 모자를 쓰고 있었으니 못 알아보는 것이 당연하겠지. 저예요. 2**4.라고 할까 하다 그냥 돌아섰다.      


나를 못 알아봐서 서운하거나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다시 모든 것이 제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다시 저 여자를 일주일에 한 번씩 볼 수 있다면 여전히 힘들고 시간에 쫓길 나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상가를 나와 유모차를 잠시 세워두고 핸드폰에서 이전 도우미 아줌마의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ㅡ The end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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