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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Jun 22. 2022

161209-02

스크린도어에 낀 남자



월요일 아침 6시 55분의 지하철. 다행히 내가 사는 곳은 5호선의 끝 자락이라 자리에 앉은 채로 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역을 지날수록 타는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 서울 시내에 가까워질수록 서 있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앉아 있는 사람들도 발 디딜 틈이 없을 지경이 된다. 지하철 안의 공기는 사람들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로 점점 탁해지고 지난밤 4시간도 채 못 잔 나는 부족해진 산소로 인해 점점 정신을 잃어간다.  

   

한없이 고개를 떨어뜨리며 끌어안고 있던 가방이나 옆 사람의 어깨에 얼굴을 부딪쳤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잠깐 고개를 들었다가 문이 닫히고 다시 지하철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또 내 얼굴은 이리저리 해드뱅잉을 한다.           


중간에 사람들이 확 빠져나가고 다시 그만큼 들어오기를 몇 차례 반복하더니 “이번 내리실 역은 여의나루 여의나루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들렸다. 정신력으로 잠을 몰아내고 다음 역에 내릴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다. 보통 때 같으면 여의나루 역에 지하철이 정차하는 동안 잠깐 열린 문틈으로 그 또한 상쾌한 공기는 아니겠지만 지하철 안보다는 100배나 좋을 것 같은 새로운 공기를 들이마시면 잠이 깨곤 한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문이 닫히고 다음 역까지 가는 2분 정도의 시간 동안 어느새 다시 해드뱅잉이 시작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번 내리실 역은 여의도 여의도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안내방송이 들렸다. 미리 서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도 저 뒤에 서면 저 문을 빠져나가 떠밀리듯 계단을 오르고 질서 정연하게 개찰구를 통과해 또 계단을 오르고 2개의 횡단보도를 지나 회사에 도착할 수 있겠구나 싶어 마음이 편해졌다.     

 

막 지하철 문과 스크린도어 사이의 공간으로 오른쪽 발을 내미는 그 순간. “저기요, 가방 두고 내리셨어요.”한다. 그때 그 말에 내 손을 안 봤다면 내 운명은 달라졌을까? 가방이 없이 회사에 출근을 하는 것과 회사에 아예 출근을 못 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나에게 더 치명적인 것일까? 그 순간 내 손을 봤고 아니 보기도 전에 이미 그게 내 가방이라는 것을 나도 알았다. 서둘러 자리에 놓여있던 가방을 쥐고 나가려는 그 순간 지하철 문이 닫혀버렸다.        


그때 처음 알았다. 지하철 문이 닫히자마자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문이 닫히는 순간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이 떠올랐다. 다음 역에 내려 택시를 타든 버스를 타든 뛰어가든 하면 그리 많이 늦지는 않을 것이고, 설마 팀 회의에 한번 지각한 거 가지고 어제 새벽 아니 매주 일요일 밤 노동을 하는 나를 내치기야 하겠는가.      


그래서 마치 내릴 역을 착각했다는 듯이 나는 원래 여의도역이 아니라 신길역에 내릴 것이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문 오른쪽으로 몸을 움직이는데 지하철 문을 통해 나에게 가방의 존재를 알려준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지금 내리지 않으면 2분 동안 저 여자의 눈빛에 시달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지하철은 아직 출발 직전이었고 내 시야에 빨간색 동그란 버튼이 들어왔다.    

  

“네~”

“저기요, 문 좀 열어 주세요. 내려야 해서요.”

“잠시만요.”     


생각보다 빨리 문이 열렸다. 승객 한 사람의 요구사항도 신속하게 들어주는구나 싶었다. 다시 지하철 문과 스크린도어 사이의 공간으로 오른쪽 발을 내밀었다. 그런데 지하철의 문만 열렸지 스크린도어는 닫힌 채 그대로 있는 것이었다. 순차적으로 열리는 시스템인가 보다 하고 잠시 지하철 문 사이에 몸을 두고 기다려봤다.  

    

내 느낌이었는지 실제로 그랬는지 생각보다 긴 시간이 흘렀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아무래도 다시 버튼을 눌러 스크린 도어도 열어달라고 요청해야겠다 싶었다. 몸을 뒤로 빼는 그 순간 지하철 문이 닫히고 출발하려는 소리가 났다. 버튼을 누르러 가는데 여전히 그 여자의 시선이 느껴졌다. 빨리 이 안에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네~”

“아니, 문을 하나만 열어주시면 어떡해요? 스크린도어도..”

“잠시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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