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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Jun 23. 2022

161209-03

스크린도어에 낀 남자



또다시 지하철 문이 열렸다. 나는 또 조금 전과 같이 스크린도어가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여자는 여전히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스크린도어는 그대로였다.      


그 순간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제일 멍청한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기관사가 두 번이나 지하철 문만 열고 스크린도어는 안 열어 준 것은 스크린도어는 안에서 열 수 있도록 버튼이나 장치가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에 직접 열고 나가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발뒤꿈치만 지하철 안에 두고 몸은 지하철과 스크린도어 사이의 공간에 둔 채 스크린도어를 열 수 있는 장치를 눈과 손으로 급히 찾아보았다. 마음이 급하면 원래 알던 것도 기억이 안 나고 할 수 있던 것도 못 하게 되는데 스크린도어 열림 장치가 어디 있는지는 배워본 적도 없고 찾아본 적도 없었기에 도무지 보이지가 않았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이 그 순간 급할수록 힘을 쓰라로 둔갑했는지 나는 급기야 스크린도어의 문틈을 양 손끝으로 잡고 열어보려고 용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힘들게 사수했던 어쩌면 지금 나를 이렇게 만든 물건인 가방은 지하철 선로가 있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애초에 가방 없이 출근하는 것을 택했다면 지금쯤 이미 회사에 도착해 커피 한잔을 마시며 어제 새벽 3시까지 만든 PPT를 세팅하고 있었을 텐데. 가방 안에 든 것 중에 오늘 하루 없어서 큰일 날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핸드폰은 주머니에 있었고 카드와 약간의 현금은 핸드폰 케이스 덮개 안쪽에 잘 끼워져 있었다. 가방 안에 든 것은 팀 회의나 전체 직원회의 때 열심히 기록하는 직원인 척하기 위한 수첩과 펜, 오후에 업체에 가지고 갈 새 제품의 브로슈어 몇 장, 일주일 내내 가지고 다녀도 10페이지를 읽기 힘든 팀장이 추천해 준 책 한 권이 전부였다.      


차가운 바닥에 떨어진 가방을 보며 손끝에 온 힘을 주어 스크린도어를 양 옆으로 당겨봤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스크린도어를 힘으로 여는 데 너무 신경을 쏟은 걸까. 왼쪽 발이 조이는 듯한 느낌이 들 때까지 지하철 문이 닫히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알았을 때는 이미 지하철이 움직이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지하철은 이내 다시 섰다.      


문에 발이 끼었다는 아니면 문과 스크린도어 사이에 사람이 있다는 이상신호가 감지된 것이겠지. 지하철 길이에 비하면 아주 조금 움직인 것이겠지만 내 몸의 길이에 비하면 꽤나 높은 비율의 이동이 발생한 이후 태어난 지 35년 만에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 온몸을 휘감았다. 양손은 스크린도어의 얇은 홈을 부여잡은 채로 왼발은 지하철 문에 끼인 채로 오른발은 디딜 곳도 없이 지하철과 스크린도어 사이에 둔 채 팔과 다리가 끊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매달려 있었다.      


순간 지하철 안에 저 많은 사람 중에 어떻게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을까 싶어 서운함이 밀려와 심신의 고통이 극대화되며 눈물이 날 뻔했다. 하지만 운다고 해결될 것은 없을 것 같았다. 안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졸고 있었거나 이어폰을 꽂은 채 핸드폰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러한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을 모르리라. 그 여자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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