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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Jun 25. 2022

161209-05

스크린도어에 낀 남자



안에서 누군가 지하철 창문을 열고 소리쳤다.


"괜찮아요?"


지하철에 창문이 있는 줄 그리고 그걸 열 수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오늘 처음 아는 것이 참 많다 싶었다. 그때 아무런 예고도 없이 지하철이 다시 움직였다. 아까와는 반대 방향으로.      


정확히 아까 움직였던 만큼만 반대로 움직였다면 좋았을 텐데 기장이 착각을 한 건지 사람이 하는 일은 원래 오차가 있게 마련인 건지 아니면 지금 내가 힘든 상황이니까 예민해서 그런 건지 지하철이 멈췄는데도 여전히 나의 손과 발은 최대한의 힘을 주어 버텨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뒤에서 나를 본다면 아까는 상체를 왼쪽으로 하체를 오른쪽으로 스트레칭하는 자세였다면 지금은 상체를 오른쪽으로 하체를 왼쪽으로 스트레칭하는 자세로. 말이 나왔으니 평상시에 스트레칭을 이와 같은 강도와 시간으로 매일같이 한다면 팔다리가 5cm는 길어질 것 같았다. 좀 정확히 내가 아까 스크린도어에 처음 손을 뻗은 그 순간의 위치로 지하철을 이동시켜 주었더라면 끼어있더라도 조금은 덜 힘들 것 같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가 보다.      


다시 지하철의 열린 창문으로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지하철 문을 열거래요. 여기서 다리를 잡고 있을 테니까 안으로 들어오세요."


그게 최선입니까? 기장에게 묻고 싶었다. 아니 대면할 수만 있다면 기장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사람이 끼어있는데 어떻게 출발할 수가 있죠? 제가 두 번째 연결 때 분명히 스크린도어 열어달라고 했는데 못 들었습니까? 스크린도어 열림 장치는 대체 어디에 있는 겁니까?      


대면할 수도 없을 것이고 이제 와서 저걸 물어본다고 한들 달라질 건 없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내가 무사히 나가게 된다면 한번 닫힌 스크린도어는 절대 열어서는 안 된다는 지침이 있는지 꼭 확인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지하철 문이 열려 그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보다 스크린도어가 열려 지하철 밖으로 나가고 싶은 이유는 팀 회의 때문이 아니고 지하철 안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었다.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나의 심신을 걱정하는 사람보다는 자신의 출근시간을 걱정하는 사람이 분명 더 많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출근 지하철의 특성상 대놓고 나를 탓하는 사람은 없을지라도 분명 눈빛으로 아니면 시간을 확인하며 짜증을 내는 행동으로 나를 원망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여의도역에서 신길역까지 2분을 더 가서 내릴 운명이었다면 아까 그 여자 한 명의 시선만을 받으며 가는 편이 훨씬 나았을 텐데. 순간의 선택이 야기한 결과치고는 너무 가혹하다 싶었다.      


지하철 문이 열리면서 왼발을 조이고 있던 느낌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대신 피가 갑자기 통하면서 왼쪽 다리 전체에 쥐가 났다. 문이 다 열렸고 나는 이제 스크린도어를 붙들고 있던 손을 놔도 되는데도 잠시 배경만 바꿔놓고 보면 스트레칭하는 것 같은 그 자세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이미 오랜 시간 아슬아슬하게 뻗고 있던 내 두 팔의 힘보다는 성인 남자 2명이 각각 내 다리를 한쪽씩 잡고 안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더 셌다.  

    

스크린도어에 붙어있던 손이 떨어졌고 순간 몸이 앞으로 숙여지며 머리가 스크린도어에 부딪히기 직전 다리, 엉덩이, 몸의 순으로 지하철 바닥에 부딪혔다. 내 다리를 잡았던 남자 2명은 앉은 것도 선 것도 아닌 엉거주춤 자세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차마 그 두 사람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역시 내 예상대로 여전히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나마 내 다리를 잡고 나를 끌어당겨준 그 사람들도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서라기보다는 빨리 지하철이 정상 운행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행동이었던 것 같다.      


지하철 문이 닫히고 제대로 출발을 시작하자 그들은 자신이 앉아있던 자리로 돌아갔고 나는 여기 이러고 있으면 더 주목받을 것을 알았지만 쉽사리 몸이 움직여지지 않아 아주 잠깐 바닥에 누운 채로 있었다.      


문과 가까운 끝자리에 앉아있던 어떤 남자 하나가 “여기 앉으세요.” 하며 일어났다. 아마 신길역에서 내리거나 아니면 누워있는 나를 보는 것이 불편해서였겠지. 마음 같아서는 팀 회의고 뭐고 지금 당장 제일 앞 칸으로 가서 기장실을 쾅쾅 두드려보거나 바닥에 드러누운 채로 5호선 끝 역까지 가버리고 싶었지만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그 자리에 앉았다.      


앉아서 눈을 한번 감았다가 떴는데 어떤 시선이 느껴졌다. 마주 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아까 나에게 가방을 말해준 그 여자였다. 왠지 지금 그 여자와 눈을 마주치면 조금 전 나의 생사를 넘나드는 상황에 대한 원망이 모두 그 여자에게 향할 것 같아 다시 눈을 감았다. 여의도역에서 신길역까지가 우리 집에서 여의도역까지 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이번 내리실 역은 신길 신길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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