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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권형 Sep 04. 2017

로컬 씬에 대한 환상과 새로운 비평언어의 필요성

2017년 8월 31일 [인천일보] 오피니언 기고


 경인방송에서 주관한 인천의 노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청탁 받아 쓴 글입니다. '인천 씬의 실체'나 '인천 음악의 비전' 등의 제시해주길 바라는 일종의 기대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기대에 조응하며 글을 발전시켰습니다. 인천일보에는 일부가 편집된 채 실리게 되었지만 브런치에는 원본 그대로 업로드합니다.


- 인천 음악에 대한 질문의 시작


 제가 음악을 시작했던 2012년 당시에는 홍대-인디 씬과의 관계는 시작하는 음악가들에게 필수적인 느낌이었습니다. 실제 홍대 인근 지역에는 공연장이 많이 남아있었고 다양한 구성의 밴드와 음악가들의 토양이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언더그라운드의 유일한 해방구처럼 여겨졌던 홍대 인디씬이 인천에 살았던 저에게는 왠지 먼 느낌이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인천에서의 새로운 음악적 커뮤니티를 상상한 계기였습니다.


 그러니까 인천 음악에 대한 저의 상상은 일종의 애착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그 애착이 처음 홍대에서 공연을 마치고 간신히 잡아 탄 1호선 막차 안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1호선은 인천과 서울의 교통을 이어주는 매개이지만 다시 말해 1호선 라인의 문화권을 통합하는 매개이기도 합니다. 1호선 라인 경인지역의 문화적 흐름은 서울 지역에서 나타나는 주류의 흐름 속으로 흡수됩니다. 그러니까 제가 말하는 지역에 대한 애착은 지역 혹은 지역 음악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나 애정보다는 지리적 박탈감에서 오는 부득이한 천착에 가까웠습니다.


 인천에서 로컬 씬을 상상하는 일은 제 음악가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홍대가 되는 것도 인천이 되는 것도 아닌 그 둘 사이의 어딘가 혹은 전에 없던 새로운 어딘가의 영토를 향하고자 하는 욕망이었습니다. 그러한 욕망은 저에게 일종의 혼혈적 정체성을 부여한 것 같습니다. 인천과 홍대 혹은 서울 사이 어딘가에서 때로는 무엇도 아닌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몇 년간 저의 활동은 홍대 안에만 국한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 지면을 통해서 그간의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인천 로컬 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저에게 인천 지역의 커뮤니티는 소중한 것이고 그들과의 교류와 지지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홍대 인디의 토양에서 시작했지만 인천에 거주하면서 지역 씬을 상상해 온 혼혈적 정체성을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전략으로 삼아왔다는 것을 기억해주십시오. 그것이 저의 인천음악에 대한 질문의 출발점입니다.


-음악 도시 인천에 대한 환상


 인천에는 헤비메탈 도시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혹자는 예전에 비해 양적으로 축소된 인천의 메탈 씬 상황을 두고 인천 음악의 계보가 이어지지 못한 것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천은 생각보다 넓고 그만큼 다양한 커뮤니티가 존재하는 도시입니다. 우리가 홍대 인디씬을 서울 음악으로 칭하지 않는 것처럼 사실 ‘인천 음악’이라는 제도적인 구분 안에서 계보를 그리려는 시도 자체가 무모한 것입니다. 이렇듯 그동안 인천 음악에 대한 질문들은 뭉뚱그려진 상태로 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인천의 헤비메탈 도시 이미지, 미8군 기지에 대한 이미지, 공단도시라는 특징에서 비롯되는 민중가요의 산실 이미지 등을 나열하고 그 사이의 불연속성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 됩니다. 그것을 묶어 ‘인천 음악’이라고 부를 때 제도적인 구분 외에는 아무런 관점도 투영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환상이고 신기루입니다. 신기루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합니다. 그것은 행정과 제도를 위해 존재하는 인위적인 역사에 불과합니다.


-새로운 비평 언어의 필요성


 이러한 환상이 만들어지는 원인은 지역의 흐름들이 제대로 기록되고 평가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이는 상대적 박탈감의 원인이자 지역 문화의 정체성 확립이라는 목표 관철의 걸림돌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인천 음악’이라는 표현에 뭉뚱그려진 환상을 걷어내고 지역에 좀 더 명확하고 주체적인 비평 언어를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지금 말하는 비평이란 지역 자체에서의 피드백이 활발히 이루어지게 함으로서 지역에서 발생하는 음악적 흐름이 지역에 머물고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전략으로서의 비평입니다.


 처음 인천의 노래 프로젝트 개요를 보고 다양한 장르 아티스트가 참여한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섭외된 아티스트의 명단을 보면서 인천 음악이라는 키워드가 관통하는 관계망에 대해 환기하게 됐습니다. 갤럭시 익스프레스와 이장혁은 부평의 공간을 거점 삼았던 루비살롱 레코드가 연결 지은 네트워크를 떠올리게 합니다. 재즈팀 헬로 재즈를 통해서 34년간 신포동을 지키며 재즈 기획을 이어온 라이브클럽 클럽 버텀라인의 네트워크를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인천에는 다양한 커뮤니티가 존재하고 그만큼 다양한 아티스트 역시 존재합니다. 아나킨 프로젝트의 멤버 홍샤인이 인천 만수동에서 과거 ‘뿅커피’라는 카페를 운영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그들의 2집 ‘못 배우고 가난하다’의 앨범 아트에 적혀있는 “From Incheon”이라는 문구는 만수동과 간석동 일대 특유의 후미진 풍경을 음반의 로우파이한 정서에 묘하게 오버랩 시키는 촉매가 됩니다. 아나킨 프로젝트는 홍대 인디씬 안에서도 오랫동안 활동하며 독보적인 색깔을 유지해 온 밴드이기도 합니다. 독특한 IDM을 만들어내는 10대 전자음악가 장영재(aka. Puressun)의 고장이 매립지 위에 생겨나 황량한 (웨스턴의 느낌까지 나는) 이미지를 품고 있는 인천 서구의 영토인 것은 어딘가 절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그는 서울의 전자음악 씬과 교류하며 활동합니다. 뉴스테이 재개발 논의가 활발한 부평 십정동 토박이 싱어송라이터 강헌구의 음악과 그의 기획 재개바라 콘서트(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열우물 마을에서의 기획 공연) 그 자체로 인천 음악의 정체성을 끌어안고 나타난 흐름입니다. 십정동과 같은 부평에 위치하지만 부천을 포함한 범경인권 록음악의 둥지 역할을 하는 라이브클럽 락캠프의 흐름은 강헌구가 쏘아올린 부평의 정체성과는 또 다른 맥락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밀접할 수밖에 없는 락캠프와 강헌구는 음악적으로 또는 음악 외적으로 느슨하게 교류합니다.


 이렇게 인천 음악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각 주체들이 만들어내는 흐름과 관계를 세밀하게 추적하다보면 인천 음악에 점철되어있는 오리엔탈리즘의 환상은 결국 무의미해질 것입니다. 이것은 기존의 영토를 벗어나 새로운 지도를 그려내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 과정이 로컬을 구경꾼이 아닌 새로운 영토를 구성하는 적극적인 주체로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로컬을 진정으로 살아갈만한 환경으로 가꾸는 일임을 기억해야합니다. 저는 인천의 노래 프로젝트를 그 초석으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로컬의 커뮤니티가 진정으로 음악의 주인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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