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나는 존재한다. 그것이 전부다. 그리고 내게 그것은 구역질을 불러일으킨다."
— 장 폴 사르트르 (Jean-Paul Sartre) (원문: J'existe. C'est tout. Et ça m'est égal.)
점장이 낡은 문을 통해 완전히 사라진 순간, 카페는 시간이 응고된 듯 침묵에 잠겼다. 모든 움직임과 소리가 압착된 듯했다. 나는 굳어버린 시체처럼 테이블에 갇힌 채, 존재의 모든 감각이 영원으로 짓눌리는 고요함을 느꼈다. 낡은 문이 닫힌 자리에는 이제 은은한 미소가 서린 점장의 마지막 말만이 메아리 없이 머물렀다.
'당신이 소유한 괴로움은 또 다른 형태의 희망으로 변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그 변이가 무엇일지는… 오직 당신만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시선은 카모마일 찻잔 위에 멈춰 있었다. 점장의 빛이 남긴 미세한 금은 내가 지불한 대가의 영원한 표식처럼 느껴졌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질끈? 아니면 스르르? 이제껏 회상은 오는 사람들 마다 충분히 해왔고 종착엔 이전의 인연을 만나 구차하긴 했지만 매듭을 지을 수 있었다. 더 이상 돌아볼 것도 앞으로를 생각할 일도 없어졌다. 공(空)에 가까워졌다. 시간 감각이 없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른다. 드문드문 이런 생각도 든 것 같다."그냥 이대로 아무것도 먹지 않고, 마시지 않으면서 숨죽이다 죽어버릴까..? 아니 애초에 여기서 죽을 수 있는 건가? 아무도 날 발견하지 못할 테고, 초라한 죽음이 되겠지. 아마 몇 년.. 아니 몇십 년 정도 지나서 몸이 썩어서 뼈만 남을 때 발견 될지도 몰라." 이 독백에는 규칙이랄 게 없었다. 그냥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막 지껄일 뿐이다. 이런 과정은 무감각한 시간을 달랠 뿐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다. 이 자리엔 독백하는 정신체인 나와 시간 말고는 모든 것이 정지해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은 계속 흐른다. 째깍째깍 누가 이런 단어를 만들었는지 '째'와 '깍'이라는 단어는 정말 잘 만든 어감인 게 틀림없다. 모든 게 야금야금 정신 차리지 못하게 반복적으로 갉아먹히는 기분이 들어버린다. 잎사귀를 먹는 벌레들의 소리를 참고한 걸까? 궁금한 것보다 잠이 더 오게 되니 그렇게 알고 싶지도 않은가 보다.
.
.
.
나는 잠이 들었었다. 모든 건 그대로이고 유달리 달라진 게 없었기에 나도 유난을 떨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을 보니 어느덧 어둑해진 저녁이었다. 황혼을 참 좋아하는데, 땅거미가 진 하늘은 언제 바라봐도 따듯한 느낌을 준다. 반면 내가 숨 쉬는 것과 가장 가까운 곳에 맞닿은 이곳은 퀴퀴하고 어둡고, 도저히 카페라고는 할 수 없는 습한 점액질로 구성된 석유색의 '무언가'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잠시 손을 더듬거리며 주변을 훑었다. '통신불가'한 핸드폰이 손에 닿았고 전등을 켜서 주변을 살펴보기로 마음먹었다. 긴 시간 끝에 결정한 중대사항이다. 나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굳어버렸던 관절들은 톱니바퀴처럼 삐걱거렸고, 육체의 부활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핸드폰 플래시를 켜자, 카페 내부는 종말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벽지는 습기를 머금고 곰팡이처럼 짙은 녹색으로 변해 있었고, 낮 동안 햇살이 투명하게 비치던 창문에는 알 수 없는 액체 자국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쩌면 커피나 마시던 이 고풍스러운 가게는 잿빛만 남긴 채, 나만을 위한 관(棺)으로 재구성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여기서 끊임없이 '앞'이 아닌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계속 생각해서 죽어 버리라는 듯이 말이다. 두려움보다 의문들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자조적으로 읊었지만, 그렇게 나쁘고 암울한 상황만은 아니다. 날짜는 겨우 하루가 지났고 풍경은 테마파크 공포의 집처럼 변했지만, 여전히 나는 살아있다. 훌륭하게.
여기서의 생활이 익숙해질 즈음, 내 마음이 흰색 여백으로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새 물줄기 같은 게 수조에 주둥이를 가져와 내밀듯 천천히 채워져 간다. 배도 고프지 않았고, 목도 마르지 않았다. 계속 하염없이 바깥만 쳐다볼 뿐이었다. 개연성과 핍진성 모두 결여된 말이지만 전기는 어떻게 계속 공급이 되는지, 왜 온수 냉수 같은 편의가 제공되는 건지, 디저트 공간의 스낵들은 줄지 않고 채워지는지 궁금해했지만 나 자신이 너무 비현실적이고 이질감이 느껴져서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지 감이 안 왔기에, 그것도 역시 관두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의 눈이라 했나? 내 심리가 보는 것들을 전부 곡해하는 것처럼 관짝 같던 이 공간도 하나 둘 다시 정리하고 녹여내니 제법 그럴듯하게 따듯한 색감으로 채워졌다. 몇 없는 나의 사욕이지만 한편으로는 깨나 만족스럽다. 거기서 몇 밤, 혹은 몇 달 계절은 바뀐 듯하다. 돗자리를 깔고 누워 붕 떠있는 하늘을 바라보면 이따금씩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과 묘하면서 무서운 감각. 그것을 수직이 아닌 수평으로 보는 기분이다. 오지도 않는 손님에 공간 조성과 커피와 차를 준비하는 내 모습은 그 흐름에 있어서 아마 가장 이질적인 존재일 것이다.
아무래도 연대 측정이 불가한 이 공간과 내가 일체화되는 것 같았다. 잃어버린 것들, 여기서 보낸 '짧은'시간들이 지난 삼십몇 년간 구성해 왔던 '나'를 거짓말처럼 덮어버렸다. 지겹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우습게도 그런 것들을 내뱉기엔 나의 체력이 전부 소진된 것 같았다. 비유하자면 내가 나를 보는 심적 거리감은 그때 의자에 앉아 점장을 마주하고 무어라 무어라 들은 일로부터 몇 만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기분이라서 그렇다.
그래서 나와 점점 관련이 없어진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우습게도 '나'의 일임에도 아무련 관련 없는 3자를 대하듯 말이다. 처음엔 공간, 그다음 사물, 그리고 나. 좁혀갈수록 큰 개념에서 점점 국소적인 부분으로 희미해지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어제의 나를 기억하지 않았다. 어제의 나는 단지 어제 그 자리에 있던 3자였고, 나는 오늘 이 자리에 있는 3자였다. 감정의 주름이 펴지고, 욕망의 굴곡이 사라지면서, 나는 점점 이 공간의 흙빛을 닮아갔다. 내 영혼에 스며들던 온수와 냉수 같은 편의와, 줄지 않고 채워지는 스낵의 이상한 풍요는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잊어버린 존재에게 주어지는 가장 잔인한 무관심이었다. "이것은 너의 고통이 아니다. 네가 소유해야 할 것은 무의미 자체다."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나는 이 공간에 체류하는 것이 아니라 침전하고 있었다. 나의 몸은 배고픔과 갈증에서 해방된 최적화된 유기체였으나, 정신은 무라는 완벽한 밀도를 향해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나는 내가 앉아 있던 의자가 되고, 내가 마시던 차가운 찻잔이 되고, 내가 닦던 에스프레소 머신의 무심한 광택이 되는 기분을 경험했다. 오지 않는 손님을 위해 공간을 조성하고, 커피와 차를 준비하는 내 모습은 그 흐름에 있어서 아마 가장 이질적인 존재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이질적인 존재로서 가장 이질적인 의식들을 반복했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닦는 행위는 내 존재의 유일한 운동이었다. 머신의 금속 표면은 나의 고독이 수없이 적층 되어 만들어낸 묘한 윤기를 띠었다. 그 윤기는 손길의 흔적이라기보다, 반복된 무의미가 굳어 만든 시간의 화석이었다. 나는 그 화석 위에서 내 손의 위치, 압력, 반복 횟수를 정밀하게 조정했다. 어제의 나보다 0.01초 빠르게 닦아낼 때, 혹은 0.5그램 더 약하게 누를 때, 이 공간의 미세한 균형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시험했다. 그것들만이 내가 반복된 지루함을 피할 유일한 '놀이'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반복에 반복 무수히 많은 반복들이 겹쳐서 선처럼 보일 때쯤 '문'이 열렸다.
.
.
.
"딸랑."
"왜..? 아니, 어떻게..?" 너무 당황스럽고 그간 억겁 같던 시간이 무용해지는 순간이었다. '절대'라고 단정 지었던 저 낡은 문은 너무나 허무하게, 어느 햇살 강한 눈부신 날 그 누구도 의도치 않았던 변수적인 외풍으로 인해 간단하고 쉽게 열려버렸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햇살은 나의 그늘을 반쯤 거둬서 입가에 머물고 있었다. 나는 땅을 짚은 손을 깊게 파여 그늘진 눈에 가까이 댔고, 손끝이 점점 촉촉해지고 있었다. 그 양은 1초 1분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내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틀어막을 수 없어 광대 아래에 손바닥을 갖다 대었다. 불투명해지는 시야로 보더 티셔츠를 입은 꼬마 아이가 지나간다.
-
집은 언제나 고요했지만 불안정했다.
아빠는 일이라는 영역 속에 존재했다. 그 영역은 나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이었고, 아빠의 눈빛은 나를 볼 때마다 '성장해야 하는 의무'만을 이야기했다. 엄마는 그 의무와 나 사이에서 위태롭게 균형을 잡으려 했지만, 그 노력은 언제나 밤늦은 흐느낌이나 아침 식탁 위로 번지는 피로로 드러났다.
나의 안전지대는 누나였다. 누나가 현관문을 열고 나섰을 때, 나의 세상이 붕괴되는 것을 느꼈다. 나는 누나를 쫓아 온 힘을 다해 달렸다. 계단을 내려가고 골목을 지났지만, 누나의 뒷모습은 길모퉁이에서 너무나 쉽게 사라졌다.
나는 그 길모퉁이 시멘트 바닥에 그대로 고꾸라졌다. 몸이 일으켜지지 않았다. 무력함이 나를 땅속으로 잡아끄는 힘처럼 느껴졌다. 내가 가진 모든 간절한 의지와 육체의 속도는, 누나의 떠남이라는 거대한 사실을 막을 수 없었다. 그때 나는 세상의 모든 중요한 일들은 나의 통제 밖에 있다는 것을 배웠다. 도망은 그때부터 나의 유일한 역할이 되었다. 다시 돌아온 집은 소리만 가득한 빈 공간이었다.
나는 거실 TV 앞에 쪼그려 앉았다. TV 속 인물들의 감정은 너무 선명하고, 그들의 이야기는 너무 빠르고 명확했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화면 속의 정해진 질서를 지켜보며 나의 혼란을 감추려 했다. TV의 존재는 이 집의 공허함을 가리는 얇은 막이었다.
나는 색칠공부 책을 펼쳤다. 크레파스를 쥐고 채우는 행위는 나를 안심시키는 의식이었다.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선을 넘는 것은 실패였고, 비난을 받을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나는 정성을 다해 붉은색, 푸른색을 정해진 경계 안에 채워 넣었다. 나는 가장 완벽한 색칠을 통해 외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나만의 작은 소유물을 만들려 했다. 하지만 완성된 페이지는 나의 공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모든 행위는 결국 아무 의미도 없다는 냉담한 사실만을 되돌려주었다.
나는 사랑이 필요했다. 고립 되어있기에 고립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의존을 바랐고 미성숙한 같은 또래에게 속하고자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항상 나를 제외한 원을 그렸다. 나는 그들이 만든 웃음과 속삭임의 경계 밖에 서 있었다. 나는 그들의 놀이에 끼고 싶다는 간절함과 거부당할 것이라는 확신 사이에서 위축되었다. 내가 다가서면, 아이들은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 그들의 먹이를 빼앗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였을까? 나는 그들 사이에서 점점 투명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숨 쉬기조차 힘든 고독이었다.
-
"나는 외롭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던 거구나, 도망치고 넘어지는, 그러다 마주하면 변명하고 피하려고만 하는.. 이제야 아주 조금.. 아주 약간 정도는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 날 무력했던 나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문밖의 햇살을 향해,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나갈 채비는 이미 끝났다. 소유했던 모든 것이 무용함으로 돌아갔기에, 나는 텅 빈 여백이 되어 경계 없는 복도를 향해 걸어 나갈 수 있었다. 나는 낡은 문턱을 넘어섰다. 햇살은 따뜻했고, 외풍은 부드러웠다. 나는 뒤를 돌아 낡은 문을 조용히 닫았다. 딸랑 소리는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