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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환 Oct 29. 2024

역제안 - 2





건물 안으로 들어간 성 실장은 모텔 주인의 손에 오만 원짜리 여섯 장을 쥐여 주고 두 남녀가 방금 들어간 방의 번호를 샀다. 또각또각 구두 굽을 부딪히며 그 방문 앞에 선 성 실장이 목을 한번 가다듬더니 방문을 거칠게 두들기며 소리를 질렀다.

 “불이야! 불이야! 불이야!”

 방문이 번쩍 열리고 놀란 눈을 한 박경민이 모습을 드러내자 성 실장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뻥이야.”

 성 실장이 문을 벌컥 밀며 방 안으로 쳐들어갔다. 그 뒤를 쫓아 방으로 따라 들어간 영종이 스마트폰 카메라로 그들을 촬영했다. 침대 위에 속옷 차림으로 앉아 있던 박경민의 내연녀가 갑자기 들이닥친 불한당들을 보고는 황급히 이불로 몸을 가렸다. 놀란 둘을 차례대로 본 성 실장이 태연히 말했다.

 “아, 아직 안 하고 계셨구나?”

 “너네 뭐야!”

 박경민이 성 실장의 어깨를 잡고 거칠게 돌렸다. 오늘따라 유독 더 진한 화장을 한 그녀의 얼굴이 대번에 불쾌함을 드러냈다.

 “아이, 건드리진 마시고.”

 “너 뭐냐고!”

 박경민이 큰 소리로 위협하며 성 실장의 멱살을 와락 움켜잡았다. 영종이 이제 자신이 나서야겠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철썩!

 성 실장이 박경민의 뺨을 전광석화처럼 후려쳤다. 청량한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울리며 박경민의 고개가 팩 하고 돌아갔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성 실장이 뾰족한 구둣발로 박경민의 정강이뼈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박경민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성 실장이 그를 내려보며 말했다.

 “분위기 파악 좀 하세요. 사장님 지금 좆 되신 거니까.”

 영종은 저도 모르게 와 소리를 내며 감탄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일촉즉발의 상황을 그녀가 간단한 액션 한 번으로 단번에 휘어잡았다.

 성 실장이 셔터는 누르지 않고 카메라만 들이대는 영종을 보며 말했다.

 “동영상이냐? 됐어. 그만 찍어.”

 “네.”

 무릎을 굽혀 앉은 성 실장이 자신을 노려보던 박경민과 눈높이를 맞추고는 마치 언제 내가 뺨을 때렸냐는 듯 친근하게 말했다.

 “사장님. 엄청 재빠르시대? 공공칠인 줄 알았어요. 집에서도 안 걸리시려고 얼마나 노력하셨을까?”

 계속 자신을 노려보는 박경민을 향해 성 실장이 개의치 않고 이어 말했다.

 “그래도 숨길 수는 없죠. 사모님한테 안 들켰다고 생각했죠?”

 “….”

 “바람피우면 눈깔에 갑자기 생기가 돌아요. 여자들은 그런 거 안 놓치지.”

 박경민이 비꼬는 투로 중얼거렸다.

 “흥. 알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은 증거가 없죠.”

 성 실장의 아리송한 대답에 박경민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박 사장님. 제가 제안 하나 할게요.”

 의미심장하게 꺼낸 성 실장의 말에 영종은 바로 이거구나 싶었다.

 “사장님이 저 여자애랑 여기 온 거, 밖에서 뽀뽀한 거, 이렇게 안에서 홀랑 벗고 노는 거, 아직은 여기 넷만 알잖아요. 그거 계속 우리만 알고 있는 건 어떨까요?”

 돈깨나 있는 대상자의 증거를 잡을 때마다 성 실장이 그것을 빌미로 돈을 요구한다는 그 질 나쁜 소문은 사실이었다. 성 실장은 자신이 오늘 수집한 모든 증거를 의뢰인이자 그의 아내인 이지연에게 넘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박경민에게 오천만 원을 요구했다. 박경민은 성 실장이 건네는 명함을 그저 잠자코 받을 수밖에 없었다.

 “너 오백 떼 줄게.”

 센터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성 실장이 영종에게 말했다. 오백만 원은 영종의 두 달 치 월급이었다. 자신의 입을 막겠다는 걸까? 성 실장이 돈을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영종은 오늘 일을 센터에 이를 생각이 없었다. 요 며칠간 그 오백만 원의 가치보다 훨씬 더 값진 것들을 그녀에게서 배웠기 때문이다.

 다음날, 성 실장은 늘 그렇듯이 또 다른 건에 달려들었다. 일면식도 없는 대상자의 뒤를 밟았고, 허락하지 않을 사진들을 몰래 찍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도시 곳곳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욕망의 현장들을 캤다. 영종은 그런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왜 이토록 열심인 건지.

 약속한 날에 성 실장과 영종은 서울 시내의 한 카페에서 박경민과 만났다. 둘 앞에 마주 앉은 박경민이 테이블 위에 검은 쇼핑백 하나를 내려놓았다. 그 안에는 빳빳한 오만 원권 지폐를 대지로 묶은 현금다발이 스무 개 들어있었다. 성 실장이 요구했던 것보다 두 배 많은 금액이었다.

 지폐 묶음 하나를 꺼내 손으로 촤르륵 넘겨본 성 실장이 의심의 눈초리로 박경민을 흘겨보자 그가 천천히 입을 뗐다.

 “나도 의뢰 하나 하려고요.”

 곧 몸을 앞으로 숙인 박경민이 작은 목소리로 폭로했다.

 “아내한테 다른 남자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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