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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환 Oct 30. 2024

역제안 - 3





 순간 영종은 이지연이 센터에 방문했던 그날의 모습을 떠올렸다. 영종은 블라인드가 쳐진 창 너머로 상담 중인 그녀의 얼굴을 본 적이 있다.

 표정이 없다.

 그녀를 본 영종이 처음 들었던 생각이다. 예쁜지, 못생겼는지 그런 것들은 생각나지 않는 얼굴. 긴 생머리에 커다란 안경을 낀 그녀의 얼굴에서는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남편 말고 다른 남자가 있다? 그 지독하게 무표정한 얼굴로?

 신음을 흘리며 팔짱을 낀 성 실장이 소파에 등을 기대며 물었다.

 “왜요? 왜 사모님이 바람을 피운다고 생각하세요?”

 “아내가 섹스 중에 다른 남자 이름을 불러요.”

 코웃음을 한 번 친 성 실장이 이어 물었다.

 “이름이 뭔데요?”

 “동호.”

 메모지에 이름을 받아 적으려던 영종이 이어진 박경민의 말에 그대로 동작을 멈췄다.

 “준.”

 “…둘이에요?”

 “셋이요. 한 명은 외국인이에요. 피트였나.”

 성 실장이 와락 웃음을 터트렸다. 앞에 앉은 상대방이 민망할 정도로 크게 웃은 성 실장이 멈추지 않는 웃음을 겨우 억눌러가며 물었다.

 “아, 미안해요. 아니, 그래도 여전히 한 이불 덮고 자고, 사모님이랑 금술은 나쁘지 않으신가 봐요?”

 이번엔 박경민이 코웃음을 쳤다.

 “아니요. 나도 우리 관계를 확인하고 싶어서 하는 것뿐이에요. 아내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고. 애초에 그 여자는, 그 여자는 지금껏 나한테 단 한 번도 진심이었던 적이 없어요.”

 영종의 머릿속에 다시 이지연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생기 없던 얼굴. 남편의 외도 때문에 마음고생을 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박경민이 성 실장을 보며 말했다.

 “그때 나한테 그랬죠? 사람이 바람을 피우면 아무리 감춰도 눈깔에 생기가 돈다고. 그 여자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놈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 무표정한 얼굴에 어떻게 그렇게 화색이 도는지….”

 영종은 순간 하얀 침대에 누워 화색이 도는 그녀의 얼굴을 떠올렸다. 어딘가 기묘했다.

 성 실장이 박경민의 말을 반박했다.

 “아닐 수도 있어요. 사장님이 자기한테 관심이 없으니까 사모님이 일부러 다른 남자 이름을 부르면서 흥분하는 척하는 거예요. 남자 이름이 바뀌는 것도 그때마다 충동적으로 말하니까….”

 박경민이 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성 실장의 말을 잘랐다.

 “증거 가지고 오면 그 쇼핑백 하나 더 줄게요. 내가 은하랑 만나는 것도 잡은 분들인데, 그런 분들이라면 이번엔 증거를 잡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의뢰하는 거니까.”

 박경민은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던 말을 멈춘 성 실장이 확신에 찬 박경민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곧 탁자에 있는 쇼핑백을 챙긴 성 실장이 소파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오케이. 밑져야 본전이네. 곧 연락드릴게요.”

 다음날부터 둘은 의뢰인이었던 이지연을 대상자로 바꾸고 그 뒤를 캤다.

 그룹의 자회사에서 부장 직급을 달고 일하던 이지연은 사내에서 성실하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몰래 접촉한 그녀의 부하 직원들은 이지연이 재벌가 손녀라는 티 한번 내지 않고 그저 조용하게 맡은 바 일을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평소 갑질과 기이한 언행으로 구설에 자주 오르던 그녀의 가족과는 다른 피가 흐르는 듯 했다.

 걸핏하면 밖으로 나돌았던 박경민과 달리 그녀는 회사에만 있었다. 아홉 시에 출근해 다섯 시에 퇴근했다. 딱히 새는 곳도 없이 그저 집으로 왔다. 일주일에 한두 번, 강남에 있는 단골 피부과에 가는 게 그녀의 유일한 일탈이었다.

 피부과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이지연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영종은 박경민이 헛짚었다고 생각했다. 외도의 원인에는 보통 배우자와의 불화가 가장 큰 이유라서 그런 경우 상대의 맞바람을 의심하는 경우가 꽤 많다. 영종은 그저 그런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돈 많은 처가에 눈치 보며 살던 박경민이 그 피해의식 때문에 생긴 의심일 거라고. 보통 여자에 비해 남자의 감은 빗나갈 때가 많기도 했다.

 지독한 카페인 중독자인 성 실장에게 줄 커피를 산 영종은 차로 돌아가던 중 카페 앞 전봇대에 붙어있는 한 전단에 눈길이 멈췄다. 전단에는 한 젊은 남자의 사진과 함께 사람을 찾는다는 문구가 박혀있었다. 여자들이 보면 귀엽게 생겼다고 말할 법한 그 젊은 남자는 방금 영종이 커피를 샀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던 대학생인데, 퇴근 후 귀가하던 중 갑자기 실종된 모양이었다.

 ‘내가 맡아야 할 사건은 이런 건데.’

 형사가 하는 일들을 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형사가 되기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한 영종은 대신해 지금의 일을 선택했다. 그 일의 이름은 바로 사설탐정. 영종은 형사가 해결하지 못한 미스터리하고 위험한 일들을 맡아서 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살인 사건을 기대했지만 사랑 사건뿐이었다. 모텔만 수십 번 들락날락했다. 가끔씩 영종의 흥미를 잡아끄는 의뢰들도 센터에 들어왔지만 그런 일들을 막내에게 맡기는 법은 없었다. 영종은 지긋지긋하던 참이었다. 모텔 안으로 들어가는 두 남녀의 뒷모습을 찍는 일 따위는.

 “여기야.”

 조수석에 앉아 영종이 건넨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받아 든 성 실장이 중얼거렸다.

 “네?”

 “그렇잖아. 회사랑 집 빼고 갈 줄 아는 데라고는 여기밖에 없는데.”

 “박경민이 헛짚은 건 아닐까요?”

 “아니야. 나도 처음엔 긴가민가했는데 아무래도 저 눈깔이 수상해.”

 “눈깔이요?”

 “나는 저렇게 생기 없는 눈깔은 처음 봐. 사람이 저런 죽은 눈깔로 계속 살 수는 없거든.”

 성 실장의 표현에 영종이 공감했다. 딱 맞는 표현이다. 죽은 눈깔.

 “너 이지연한테 얼굴 팔렸어, 안 팔렸어?”

 “이지연은 저 몰라요.”

 “그럼 올라가 봐.”

 “어딜요? 피부과요?”

 “가서 뭐 하는지 확인해 봐.”

 “실장님은요?”

 “이렇게 화장 진하게 하고 피부과 가는 여자 봤어? 너 같으면 안 이상하냐?”

 갑작스러운 성 실장의 지시에 영종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아까부터 영종의 불만 가득한 얼굴을 가만히 주시하던 성 실장이 쏘아붙였다.

 “쫑.”

 “네?”

 “예전에 내가 너 너무 거저먹으려고 한다고 했지? 이 일 계속하고 싶으면 그 버릇부터 고쳐.”

 “아, 네.”

 일부러 다소 성의 없게 대답한 영종은 투덜거리며 피부과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만큼은 성 실장이 헛발질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건물 5층에 있는 피부과는 그 층을 통째로 쓸 정도로 규모가 컸다. 안내 직원에게 정기적인 피부 관리를 받고 싶다고 용건을 말한 영종은 직원과 상담하며 프로그램을 고르다가 화장실을 다녀온다는 핑계를 대고 밖으로 나와 그 길로 이지연을 찾았다. 얼마 안 가 영종은 한 개인 관리실의 옷걸이에 걸린 그녀의 밤색 코트를 발견하고는 몰래 그 안으로 들어가 주변을 살폈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대신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는 문구가 붙은 수상한 문을 하나 발견했다. 영종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을 열자 그곳에는 뜬금없이 또 하나의 엘리베이터실이 나왔다. 망설임 없이 엘리베이터를 잡아탄 영종은 그것이 바로 직전에 멈춰 있었던 지하층으로 향했다.

 지하에 내린 영종이 조심스럽게 복도를 살폈다. 복도 한쪽 끝에, 덩치 큰 가드가 지키고 서 있는 커다란 문을 본 순간 영종은 직감했다. 이지연은 분명 저 안에 있다고.

 영종이 이제 어떻게 할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복도에 한 무리의 발소리가 들렸다. 비상계단을 통해 걸어 내려온 그 여성들은 저들끼리 낄낄대며 걸어가 큰 덩치를 가진 가드 앞에 멈추어 섰다. 가드가 여성들을 위해 그 수상한 문을 활짝 열었을 때, 영종은 재빨리 그 안을 훔쳐보았다. 칙칙한 회색빛 복도와 대비되게 그 안은 화려한 조명과 노랫소리가 가득한 신세계였다.

 순간 영종의 머릿속에 박경민이 했던 말이 스치고 지나갔다.

 ‘…동호…준…셋이에요…피트였나….’

 “호스트바예요.”

 차로 복귀한 영종이 성 실장에게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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