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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분석]왕도는 없다! 스키마(schema)를 찾자!

진술의 알고리즘을 분석하면 작화 기만 진술(거짓말)의 단서가 보인다.

실체적 진실을 알 수 있다고 단언하는 이는
본인이 신(神)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만큼 실체적 진실은 당사자밖에 알 수 없다.

우리는 법을 통해서 어떤 결론은 내리지만,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여 공정하게 내린 결론이라고는 단언할 수 없다.

그래서 1심 2심 3심의 과정에서 조금 더 나은 결론에 도달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면에서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기 위한 수많은 도구 중 하나인 진술분석엔 왕도가 없다.

혹자 중에는 많은 진술분석의 경험이 마치 진술분석의 왕도 인양 말하는 이도 있지만

진술분석 대상자인 인간의 속성을 근래에 유행하던 MBTI 등으로 가늠하듯 치부할 요량이 아니라면,

사건마다 매번 각각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관찰하고 분석하여 신빙성에 대한 자문 의견을 최종 결론지어 제시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나 역시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내국인뿐 아니라, 외국인까지 다양한 국적, 직업, 연령의 사람들의 진술을 분석한 바, 어느 것 하나 쉬운 분석이 없었음을 알기에 많은 분석 경험만이 마치 진술분석의 왕도 인양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역으로 얼마나 많은 경험적 편견으로 예단, 속단하여 진술분석 결론을 갈무리했을지 우려할 수 밖에 없다. 경험칙이 전문가의 필수조건일 수는 있겠지만, 유일무이한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계해야 할 대상임을 10년 넘게 분석하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법과학 분석자들이 가장 배척해야 할 것이 바로 선행학습(경험칙)에 의한 각인효과, 선입견, 편견, 휴리스틱(heuristics) 같은 오컴의 면도날(Ockham's Razor)을 사건 분석에서 주저 없이 휘두르는 사고 행위다. 사실 휴리스틱, 오컴의 면도날은 매 순간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분석가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판단 도구다. 하지만 진술분석에 있어서 만큼은 부정적으로 해당 도구들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 이유는 그 어떤 법과학적 분석 보다도 거짓 기만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프로파일링에서 팀 회의시 한 명이 무조건 반대의견을 제시하도록 하는 데블스 에드버킷(Devil's Advocate) 진행 이유도 이런 관성적 휴리스틱 과용과 동조 효과로 인한 오판을 최대한 방지하고자 함이다.


진술분석을 단시간에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큰 오산이다.

구글 검색만 해도 뻔히 나오는 CBCA, RM, SVA, SCAN 같은 분석도구로 쉽게 분류, 평가하는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오판할 수도 있다. 나 역시도 처음 해당 분석도구를 접했을 때는 단순하게 바라본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석을 거듭하면 할수록 인간의 기억 회상 등의 여러 사고 과정을 거쳐 표출된 진술이 몇 개의 표면적인 준거 항목의 해당 여부만을 근거로 정량화하여 판단, 결론지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사건 하나하나에 최소한 한 달 이상씩 분석하며 적지 않은 비용을 국가 혹은 기관 등의 의뢰인에게 청구하는 불편을 감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리다매는 어떤 비즈니스에서도 통하는 영업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코 그렇게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자본주의 속성이 법치주의 속성과 합치된다면 그야말로 또 다른 형태의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될 테니 말이다. 따라서 '5일 만에 양성되는 진술분석전문가'라는 한겨레 뉴스 기사의 비판처럼 진술분석제도의 도입 취지가 퇴색하지 않았으면 한다.


진술분석을 짧은 시간에 해치우는 전문가, 혹은 그렇게 하도록 요구하는 시스템이 있다면, 정말 큰 문제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물론 예외는 있다. 정말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긴급 의뢰가 들어오면 불과 몇 시간 만에 해당 진술의 진의를 파악하는 보고서를 써야 한다. 흔하지는 않지만, 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범죄자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경우(보안 관련 부분이라 자세한 언급은 힘듦)가 대다수다. 피해자가 발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그야말로 경험칙의 휴리스틱, 오컴의 면도날을 바짝 세워야 할 수밖에 없을 때의 예외적 상황이다. 예단 속단의 대가를 감수함에도 불구하고 자문해야 하는 경우다. 따라서 이럴 때는 다양한 옵션 상황을 열거한 뒤 어느 쪽에 좀 더 비중을 둬야 하는지만 의견 개진한다. 결정권자가 판단함에 있어서 고려 상황을 폭넓게 인지하되 빠르게 결단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전문가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분석자는 짧은 시간에 깊이 있는 분석이 필요하다. 오히려 앞서 언급한 대로 평소에 진술 분석 한건 한건에 오래 공들인 시간만큼 Deep하고 Layered한 분석이 빛을 바랄 수 있는 기회다. 만약 빠른 분석에만 익숙한 전문가라면, 그 전형성에 대한 오판의 책임을 법적으로 물을 수는 없겠지만, 사건 결과에 따라 누군가의 피해로 나타난다면 자신 스스로 그 대가를 혹독하게 져야 할 수도 있다. 모든 분야가 다 그렇겠지만 진술분석은 특히나 전형과 본질을 어떻게 구분하여 꿰뚫어 보느냐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늘 이 부분이 두렵다. 아직까지 큰 오판은 없었지만 직업으로서 숙명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부분으로 인식하는 바, 매 순간 이런 의뢰는 긴장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난 매일 발송되는 NIJ(National Institute of Justice, 미국 법무부 산하 연구소) 메일링 서비스를 받아본다. 다양한 사건 사례 및 연구기법들에 대한 최신 정보가 업데이트되기 때문에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서두에 언급한 "구글 검색만 해도 뻔히 나오는 CBCA, RM, SVA, SCAN 같은 분석도구로 쉽게 분류, 평가하는 수준" 말의 의미는 언급된 해당 분석도구들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표면적인 준거 항목에 기계적, 도식적으로 해당 여부를 체크하여 평가, 결론짓는 진술분석의 오용을 지적한 것이다.

즉, 피검자(내담자)가 진술을 하기 전에 해당 분석 도구에 대해서 미리 웹서핑 등을 통해 대비한다면,  기계적, 도식적 분석만으로는 신빙성 여부를 가늠할 수 없는 혹은 오판할 수 있도록 기만 작화할 수 있는 세상 속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진술분석에서도 필요한 메타 분석(meta analysis)

따라서 올바른 진술분석을 위해서는 최소한 해당 진술의 배경부터 사건 전후 상황,

배척되는 진술의 내용 등 종합적인 자료 분석을 통해 분석 목적 대상의 진술서를 메타 분석해야 한다.

명심보감 성심편에도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若聽一面說 便見相離別 약청일면설 변견상이별"

. 만약(萬若,만일萬一) 일면(一面,한쪽,일방一方)의 말(이야기)만 듣게 되면

  설령(設令) 보고 만난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서로 갈라져 헤어지게 된다.

. 만약 한쪽 편(사람)의 말만 듣고 일방적(一方的)으로 생각(판단·결정)한다면

  비록 보고 만날지라도 자칫 친한 사이가 서로 갈라(멀어)질 수 있는 것이다.

                        - 明心寶鑑(명심보감) '省心篇(성심편)' -

즉 몇 페이지 안 되는 진술서만 보고 진술분석을 한다면, 결코 올바른 분석을 할 수 없다.

최대한 많은 자료를 가지고 해당 진술을 관찰, 분석해야만 행간을 볼 수 있고,

숨김 정보를 찾을 수 있으며, 진술인이 말하고자 하는 진의를 파악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https://nifds.go.kr
진술분석의 메타 키워드(Meta keyword)는
스키마(schema)!


스키마(schema)는 여러 분야에서 주요 프로토콜의 응용 엔진 설계도와 같다.

진술분석에 있어서 스키마는, 비록 분석 대상물이 한정된 어휘로 구성된 진술서지만

어떤 배열로 구성되는지에 따라 해석이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으므로,

진술인만의 문법을 찾아 내재된 진실의 단서를 탐색하는 것이 스키마 분석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정신역동 이론에서 언급되는 스키마의 해석과 일면 유사한 점이 있으나,

본질적인 의미는 분석 대상자 사고의 흐름을 역 추론할 수 있는 패턴을 찾는 데 주안점이 있다.

그러므로 진술분석에서 스키마는 진술 속에 숨겨있는 방어기제적 사안, 작화 기만적 요소별 구간 등의 단서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예를 들어 진술인이 A+B=C라고 일관되게 진술하다가 유독 몇몇 구간에서는 A+B를 전혀 다른 D라고 말하거나 아예 모른다고 말하는 구간이 보인다고 가정해보자. 한두 번의 분석으로는 쉽게 안 보일 것이다. 만약 쉽게 찾을 수 있다면, 기만 작화력이 낮은 수준의 용의자나 함정일 수 있다. 거짓말의 고수는 저런 맥락 불일치의 실수를 쉽게 하지 않는다. 때문에 해당 공식을 대수학적 관점에서 게슈탈트적으로도 응용해서 여러 가설적 분석을 해봐야 보이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번에는 진술인이 A+B=C, A+C=D라고 진술 양상이 일부 달라졌다고 가정해 보자. 맥락 분석에서 A+B=D라는 공식도 성립할 수 있다. 그렇다면 C와 D가 같거나 유사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C와 D가 같거나 유사할 수 있는지를 검증해보면, 진술인이 어떤 사고 과정을 통해 해당 내용을 진술하고 있고, 그의 스키마에서는 A, B, C, D를 어떻게 바라보고, 결부 지어 생각하는지를 추정해볼 수 있다. 따라서 각각의 사안에 대해 팩트체크를 해보면, 무엇을 숨기려고 했고, 어디서부터 거짓말인지 유추해볼 수 있다. 때문에 위와 같은 분석을 하려면, 진술을 쪼개서 볼 수 있는 기술적 분할(segmentation)과 연계적 분석, 인과 및 종속, 상관관계를 끊임없이 연결 지어 체크해 봐야 한다. 그러므로 해당 내용을 미시적, 거시적 관점에서 원근법으로 바라봐야 입체적으로 사건을 관찰할 수 있다. 뇌에서 이런 과정을 거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공부와 연구 과정을 반복해 본 사람은 잠을 자는 사이 나의 뇌가 무슨 일을 해서 아침에 내가 눈을 떴을 때 어떤 가설을 제공하는지 경험해봤을 것이다. 진술분석은 첨예하게 대립되는 상황에 전혀 상관없는 분석자를 주입해서 각각의 상황의 진술인으로 대입했다가 다시 관찰자로 혹은 평가자로 수시로 입장을 바꿔 사고하는 행위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진술의 알고리즘을 분석하면 작화 기만 진술(거짓말)의 단서가 보인다.


진술분석에서 스키마는 진술인의 사고방식에 대한 알고리즘을 찾음으로써,

동일한 진술내용이라고 하더라도 각각의 진술인의 스키마 구조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직시하고,

수박 겉핥기식의 표면적인 분석으로는 결코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없음을 자각해야 한다.


진술분석에서는 A+B=C가 될 수도 있고, A+B=D가 될 수도 있다. 공식은 없다.

다만 C와 D가 내포하는 것이 A+B가 아닐 때 우리는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단서를 찾게 된다.

그래서 진술분석을 통한 실체적 진실 탐구 과정에는

창의력과 상상력, 그리고 대수학적 사고와 게슈탈트적 접근이 모두 필요하다.


진술분석에 있어서 왕도, 공식, 정답은 없다.

끊임없는 가설적 문제 제기와 그에 따른 진실탐구에 입각한

정합론, 대응론, 실용론적 논리 사고의 클러스터(cluster)가 좀 더 실체적 진실에 가깝게 다가서도록 도와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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