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브런치 첫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펼쳤다.
2023년이라는 단어가 낯설다.
예전에 SF영화 제목에 몇 년도라고 적힌 숫자가 이제 현실이 된 시점에서
나의 기억 속에 남겨진 지난 세월의 자취와 흔적들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문득 떠올려 봤다.
그러다 '기억'이라는 키워드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나의 직업적 업무 핵심 키워드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기억'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부터 살펴보자.
기억(記憶)
1. 명사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2. 명사 심리 사물이나 사상(事象)에 대한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정신 기능.
3. 명사 정보·통신 계산에 필요한 정보를 필요한 시간만큼 수용하여 두는 기능.
무언가를 공부할 때 사전은 필수다.
언어가 학문의 어머니인 만큼, 언어의 정확한 보편적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면
자칫 잘못된 인식으로 목적하는 공부, 연구를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의 사전적 의미는 예상한 대로다.
갑자기 물어보면, 딱 떨어지게 한 문장으로 표현하기는 뭣하지만 보고 나면 음 그렇지 수준이다.
어려운 개념은 아니다.
그럼 다르게 질문해 보자!
'나'는 누구인가?라고 물어보면 뭐라고 답하겠는가?
갑자기 말문이 턱 막히게 되는 물음이다.
하지만, '나'에 대한 정체성의 핵심은 바로 '기억'임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를 당해 기억상실이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그 환자에게 의사가 당신은 누구입니까? 물어보면 환자는 말할 수 없다.
기억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억'은 해당 주체자에게는 정체성을 담보하는 아주 중요한 데이터 정보다.
2023년에 가장 많이 언급된 미래 발전 기술, AI 인공지능 결과물 중에 하나가 바로 '챗GPT'다.
변호사, 의사 자격시험 통과부터 박사 논문까지 척척 쓸 줄 안다는 인공지능(AI) 기술의
놀라운 결과물로 그야말로 핫이슈템이다.
그래서 나도 물어봤다.
필자가 챗GPT에게 '기억에 대해서 글 써줘'라는 요청에 응답한 결과물이 위 캡처 이미지다.
녹취정보 분석 전문가로서 신호분석과 더불어 내용분석에서 핵심적인 진술분석의 한 축이 바로 기억에 대한 신빙성 판단이기에 오랫동안 필자는 기억에 대해서 뇌과학적 관점부터, 상담심리, 정신의학, 수사면담, 뇌신경계 반응까지 다양한 분야를 공부, 연구하면서 이들의 상관관계를 실제 특수감정 분석 경험을 통해 적용, 응용하여 활용해 왔다. 때문에 챗GPT의 글을 보고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기승전결에 맞는 글의 구성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용에서 얄팍한 수준의 지식이 아닌 다양한 학문적 접근에서 도출된 '기억'이라는 개념을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친김에 기억의 종류에 대해서도 글을 써달라고 요청했다.
이 정도 수준이면 필자가 15년 이상 여러 책과 논문을 보면서 공부한 수준에서 평가할 때 80점은 충분히 줄 수 있을 정도로 간결하면서 핵심적인 내용을 잘 요약하여 설명한 글이라고 판단한다.
오픈AI(챗GPT개발업체명)에서 챗GPT 공개 서비스를 시작할 때부터 종종 사용했는데, 사용하면 할수록 느끼는 것은 개념적 답변은 정말 놀라운 수준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덧붙여 설명하면,
현재 뇌과학자에게도 인간의 뇌가 '기억'하는 과정에 있어서 장기 기억에 해마(hippocampus)가 어떤 역할을 한다는 것 외에 딱히 정확한 기억의 과정을 명징하게 설명하는 것은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숙제다.
심지어 기억 정보가 명확하게 뇌의 어디에 위치하는지,
그 데이터가 전자기적 형태인지 아니면 결합된 분자의 형태인지 조차도
확실하게 증명하지 못했다.
하지만, '기억'이라는 개념에 있어서 인간이 직접 경험한 사실에 대해서 진술하는 형태와 경험하지 않고 거짓 작화하여 진술하는 형태의 차이점은 수많은 진술분석 데이터와 조건적 자극, 반응, 그리고 언어적 비언어적 심리생리학적 신경학적 관점에서 꾸준히 업데이트되고 있다. 따라서 진술의 신빙성 판단은 여러 가지 준거를 통해 평가될 수 있음을 자각하고 거짓 진술을 할 생각은 애당초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필자도 살인사건부터 성범죄 사건까지 다양한 사건의 증인, 피해자, 가해자
진술을 분석함에 있어서 늘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거짓은 언젠가는 반드시 밝혀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기억'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기억하지 못해야 정상적인지 비정상적인지 패턴을 이해하면 거짓 진술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기에, 추가적인 단서를 얻어 결국 자백에 이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지면상 모든 '기억'에 대한 분석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실생활에서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억의 속성에 대해서 적어보겠다.
우선, 기억은 챗GPT가 설명한 대로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으로 크게 나눌 수 있고,
장기기억은 다시 절차적 기억과 인지적 기억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인지적 기억은 위에 챗GPT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또다시 일상적(삽화적)기억과 의미적(학습적)기억으로 나눌 수 있다.
단기기억은 잠깐 기억하는 수준의 데이터로 짧으면 10~20초 길어야 수분 내로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작동/작업 기억(Working Momory)라고도 한다. 즉, 책을 읽을 때 선행된 부분을 기억해야 이해할 수 있듯이 딱 그 정도로만 기억하는 것이다. 한 번 읽은 책은 일정시간이 지나면 내가 읽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이 바로 단기기억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장기기억은 반복적 혹은 특정한 이슈를 동반하여 뇌에 오랫동안 저장된 정보다.
절차적 기억은 몸이 기억하는 것으로 자전거를 한 번 배워놓으면 어떻게 타는지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타면 몸이 기억하는 것처럼 체험적으로 신체가 기억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래서 반복적 훈련 혹은 특정한 이슈-여기서 이슈는 감각적, 생리적, 신경학적 자극으로 기억 정보가 오랫동안 활성화될 수 있는 조건이 구성된 것을 말함-를 통해 장기간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본 글 서두에 기억을 설명하면서 기억상실에 대해서 잠깐 언급했었는데,
사고로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을 잃은 환자에게 경찰이 펜과 종이를 주면서 사인이나 서명을 해보라고 하면, 환자는 자신도 모르게 이름을 적는 경우가 있다. 바로 절차적 기억을 인출하였기에 가능한 것이다.
또 다른 장기기억은 일상적 기억인데 이는 직접 경험을 통해 기억하는 것으로 그 정보가 새로운지 충격적인지 등에 따라 단 한 번의 경험으로도 기억되는 정보의 양과 구체성이 다르다.
반면에 의미적 기억은 또 다른 말로 학습적 기억이라고도 하는데, 일상적 기억처럼 장기기억 중에 하나이기는 하나, 직접 체험한 기억이 아닌 개념적 의미적 학습을 통해 관념적으로 기억하는 형태의 정보다.
예를 들어,
"올해 1월 1일 설날에 부모님 댁에 가서 떡국을 먹었는데, 이때 떡국 떡에서 돌이 씹혔다."라는 진술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때 해당 전제 진술은 일상적 기억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1월 1일은 설날이다."라는 부분만 발췌하면, 이것은 의미적 기억이다.
주로, 거짓 진술을 하는 사람은 일상적 기억이라고 진술하지만 대부분 의미적 기억의 진술로 상당 부분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설령 일상적 삽화적 기억처럼 묘사한다고 하더라도 전문가들은 교차 검증 도구로 신빙성이 의심되는 구간을 찾아낸다. 이 구간을 토대로 수사관이나 판사가 추후 면담, 심문을 통해 진실을 확인할 수 있다.
기억은,
맥락 의존적 기억(context-dependent memory)과
상태 의존적 기억(state-dependent memory)으로
기억 인출에 있어서 외적, 내적 환경 영향을 받는다.
맥락 의존적 기억은 기억해야 할 대상에 있어서 주변 상황에 대한 정보가 생략된 상태에서 대상만 기억을 인출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실패할 확률이 높아지는 현상의 기억으로, 예를 들어 군대에서 함께 생활한 전우를 휴가 나와 사회에서 우연히 지나가다가 만날 경우 못 알아볼 확률이 높은 이유가 바로 군대라는 맥락 정보가 사라진 상태에서 봤기 때문이다. 직장 동료를 마트에서 우연히 지나가다 보더라도 즉각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즉, 외적 환경에 영향을 받는 기억 인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상태 의존적 기억은 내적 환경 변화로 기억할 당시 나의 상태에 따라 추후 기억 인출 시에 내 상태가 다른 조건이 될 경우, 기억 인출에 장애를 겪는 현상의 기억이다. 대학시절 친구들과 시험공부한다고 모여서 공부는 안 하고 저녁식사하면서 반주로 술 마시다가 뒤늦게 취한 상태로 새벽에 벼락치기로 공부하고, 다음날 술 깬 상태에서 시험을 보면 취중상태에서 공부한 내용 상당 부분이 기억나지 않는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없다면, 다행이지만,,, 필자는 있다.ㅠㅠ) 훗날 뇌신경과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때는 계속 취중상태를 유지한 채 시험을 보는 것이 술 깨고 보는 것보다 기억 유지에 도움이 된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다. 다만, 취중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지 더 술을 마셔서 꽐라가 되면 답이 없다.ㅜㅜ
간혹보면, 수험생이 커피나 특정 약물을 먹고 공부를 하면 공부가 잘된다고 해서 카페인 음료나 약물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은데, 추후 건강상의 문제도 발생하지만, 카페인 음료나 약물을 섭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억 인출에 장애를 경험할 수 있기에 장기적으로는 학습 결과에도 좋지 않다. 특히 이런 화학적 의존성은 내성이 생겨서 더 강한 자극을 주지 않으면 효율성이 갈수록 더 떨어지므로, 처음에 잠시 효과가 있었다고 해서 이것이 계속 지속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애당초 이런 습관은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
출처: https://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896237.html 게티이미지뱅크 마지막으로,
의뢰인 중에 과학적 감정 결과가 자신의 기억과 다르게 나왔다고 해서 당황하고 놀라는 분들이 종종 있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우리의 뇌는 완벽하지도 않고, 그 뇌가 제공하는 기억은 더욱 더 그렇다.
때문에
여러 분석 도구를 통해 감정한 결과가
인간의 기억보다 부실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함을
꼭! 기억하기를 바란다.
(이 부분에서 '기억하기를 바란다'고 말하기가 아이러니하기는 하지만;;)
아무쪼록 2023년 첫 글은 이렇게 '기억'이라는 키워드로 시작해 보았다.
'기억'이라는 것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게도 만들고,
명쾌하게도 만들어 어떤 문제 해결에 도움도 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기억이 사실과 다를 수도 있음을 늘 자각하고,
여러 정보들과 교차 검증해서 만약 과학적 사실과 다른 기억이 존재한다면,
내 기억의 오류를 인정하는 겸허한 수용의 자세도 반드시 잊지 않기를
특수 감정인으로서 재차 당부하고자 한다.
우리의 뇌는 나의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