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같은 역사교과서인데 이렇게 다르다고?

교과서 서술에 따라 달라지는 학생의 배움

by 이메다

1. 서론

수업 준비할 겸, 지학사 교과서를 보는데 어려운 단어가 많아서 진땀을 뺐다. 우리 아이들이 이걸 이해할까 하는 생각에 다른 출판사 교과서를 몇 개 살펴봤는데, 내용 자체가 꽤 달랐다. 나는 임용준비할 때 교과서를 분석해 본 적이 없어서, 이렇게나 교과서가 다른 줄은 몰랐다. 그런데 정말 검정교과서는 출판사마다 나름의 색깔이 뚜렷하고, 출판사마다 학생들이 다른 내용을 배우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 교과서와 교육과정

1) 교육과정

우리는 먼저, 교과서와 혼동하기 쉬운 개념인 교육과정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가야 한다. 교육과정이란 국가가 교육목표와 경험, 혹은 내용, 방법, 평가를 체계적으로 조직한 교육 계획을 말한다. 교육과정은 각 학교급별, 과목별, 단원별, 주제별로 교육목표와 학생들이 배워야 할 내용, 그리고 평가할 요소 등을 정한다.


그러면 각급 학교는 해당 국가교육과정에 따라서 학교별 교육과정을 짜고, 거기에 따라 수업과 평가를 운영한다. 즉, 우리가 배워야 할 내용은 교과서가 아니라 교육과정에 명시돼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2) 교과서

그렇다면 교과서는 무엇인가? 교과서는 교육부가 개발한 국가교육과정에 기초해서 교육내용을 적절히 조합하여 학년별로 제시한 교재이다. 교육이란 국가교육과정에 따라 이루어지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같은 교육과정이라도 서로 다른 논조의 교과서가 만들어질 수 있다.


학생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 교육은 비효율적이다. 그렇기에 교육과정에서는 정말 핵심적인 요소만 강조하고, 교사와 각급 학교에게 많은 자율성을 준다. 헌법과 법률은 내용을 추상적으로 규율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 위임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이다.


그렇기에 각 출판사에게도 자율성이 부여돼서, 어떤 내용을 강조할지, 어떤 문체로 작성할지, 어떤 용어를 사용할지가 모두 출판사의 재량이다. 메뉴가 같더라도 레시피나 사이드메뉴, 토핑이 다 다르듯 같은 교육과정임에도 교과서가 다르다.


학교는 학교별 교육과정에 따라 가장 적합한 교과서를 선택하여 수업할 수 있으며, 이를 단순 참고자료로 활용하면서 교사 본인의 별개의 교재(학습지)를 만들어서 수업을 진행할 수도 있다. 고3 선생님들이 교과서가 아니라 부교재를 활용하거나, 수능특강으로만 수업을 진행해도 민원을 받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과서는 단순 교재일 뿐, 반드시 지켜야 할 성전이 아니기 때문이다.


3. 교과서 비교

먼저 내가 보려는 파트는 [9역02-04]로 중세 서유럽과 비잔티움 제국 파트이다.


1) 성취기준


성취기준이란, 수업을 듣고 나서 학생들이 보여야 하는 변화를 의미한다. 즉, 애들이 이만큼을 하도록 가르치라는 최소 기준이다.



해당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은 "비잔티움 제국과 서유럽 세계의 교회가 사회에 미친 영향과 교권의 변화를 이해한다"이다. 즉, 반드시 가르쳐야 할 내용은 ⓐ비잔티움 제국의 교회+사회에 미친 영향 ⓑ서유럽 세계의 교회+사회에 미친 영향 ⓒ교권(교황권)의 변화이다.


학습 요소를 보면 조금 더 자세해지는데, ①교황권의 변화, ②비잔티움 제국, ③서유럽과 이슬람 세력의 충돌(십자군 전쟁), ④종교 개혁을 포함하라고 해놓았다. 이 4가지 학습요소를 포함하면서, 반드시 가르쳐야 할 abc 내용요소를 보다 강조하고, 학생들이 저 abc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교과서를 작성하고 수업을 구성하면 된다.


2) 교과서 목차 비교


큰 틀에서 서유럽 -> 동유럽 -> 십자군 전쟁 -> 종교개혁의 순서는 같다. 하지만 지학사미래엔은 서유럽 파트에서 서임권 투쟁, 교황권 강화 등을 다 다뤄버리지만 천는 장원의 구조까지만 설명하고 비잔티움을 설명한 다음, 다시 서임권 투쟁이나 교황권 강화를 다루는 차이점이 있다.


그래도 목차나 제목만 보면 구성이 다소 다를 뿐, 내용 자체는 비슷해 보인다. 물론 다른 파트를 보면 내용 자체가 다른 단원도 꽤 있다. 이는 다음에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다. 일단은 서술 측면을 살펴보겠다.


3) 교과서 서술 비교

(1) 게르만족의 이동과 프랑크 왕국


지학사의 경우, 게르만족의 이동의 원인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고 로마의 멸망도 따로 서술하지 않았다. 또한 프랑크 왕국이 내용요소가 아니라 그런지 과감하게 빼버렸다. 개인적으로 서유럽 사회를 설명하면서 프랑크 왕국과 로마 교회의 유착관계를 섬세하게 설명하지 않고는 서유럽 사회를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내가 의구심을 품고 다른 교과서를 찾아보는 계기가 됐다. 교회와 프랑크-신성로마의 유착관계가 서유럽 정치와 종교의 접점을 설명해 주는 핵심 기제이기 때문이다.


미래엔의 경우 게르만족의 이동 원인을 훈족의 압박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서로마 멸망 역시 서술하였다. 프랑크 왕국 설명은 천재에 비해 조금 덜하지만, 더 많고 다양한 내용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다른 교과서에선 빼버린 카롤루스 마르텔피핀을 소개하면서 로마 교회와의 유착관계를 상세히 전개하고 있다.


천재의 경우 미래엔과 마찬가지로 게르만의 이동 원인과 서로마 멸망을 밝히고 있다. 프랑크 왕국 설명에서는 미래엔에는 있는 카롤루스 마르텔과 피핀이 빠졌다. 대신 최초로 크리스트교로 개종해서 교회와의 커넥션을 만든 클로비스를 내세웠다. 또한 카롤루스 대제를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해 나갔지만, 미래엔에는 있는 카롤루스 르네상스 이야기는 소개돼있지 않다.


대충 봐도 같은 교육과정으로 만든 교과서라도, 그 내용요소가 다름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비슷한 내용 파트를 보면서 각 서술이나 용어의 차이를 확인해 보겠다.


(2) 봉건제와 장원제


확실히 지학사가 가장 설명이 부실하고 적다. 지학사는 성취기준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전반적으로 성취기준 외의 알아야 하는 요소들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는 대신 성취기준과 연관된 내용을 매우 강조하는 서술을 보였다. 반면 천재나 미래엔은 배경 설명이 더 자세하고 넓고 길었다.


구체적인 서술을 보겠다.


지학사는 프랑크왕국을 설명하지 않았기에 9세기말 서유럽 세계를 온전히 설명하지 못하고 그저 '이민족의 침입'으로 퉁치고 있으나 나머지 출판사는 보다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또한, 지학사는 기사 계급이 등장하는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고, 바로 지방 분권화된 세계가 형성되었다며 설명하고 있다. 다소 불친절하고 어려운 설명이라 교사의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


용어 선택의 경우, 지학사는 "지방 세력가", 미래엔은 "힘을 가진 사람", 천재는 "지방의 유력자"로 소개하여 미래엔이 가장 쉽게 단어를 풀어썼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아래를 보면 주종제도에 관한 내용인데 큰 차이 없이 대동소이하다. 다만 천재는 "쌍무적 계약관계"라는 한자어를 언급하면서, 구체적으로 뜻을 풀어준다는 차이가 있다.


장원제의 설명은 각 교과서가 뚜렷하게 다르다. 지학사는 장원의 구조를 설명하고 있지 않으나, 미래엔천재는 각각 장원의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다른 내용으로 장원의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또한, 농노에 대한 설명을 보면 지학사미래엔이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천재는 농노의 뜻을 의식하며, 농노의 '농'민스러운 점과 '노'예스러운 점을 대비해서 보여주며 학생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용어 선택의 경우, 지학사는 '농사를 짓는다', 미래엔은 '경작한다', 천재는 '경작', '직영지에서 일하'다라는 단어를 써서, 역시 한자어를 쓰거나 풀어쓴 단어를 쓰는 등의 차이가 눈에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 봉건사회를 잘 나타내주는 말인 '지방분권적 사회'를 어느 대목에 넣었고 어떻게 설명했냐도 중요한 차이점이겠다. 지학사는 별다른 설명 없이 설명 초반부에 박아 넣어서, 학생들이 글만 읽었을 때는 이해가 어려우리라 생각된다. 미래엔은 주종제와 장원제를 모두 설명한 후, 정치구조인 주종제와 사회경제구조인 장원제를 모두 엮어서 중세 사회를 총평했고 천재는 농노와 장원의 구조에 대해 많이 설명하기 위해서인지, 정치구조인 주종제를 설명한 다음 중세 사회를 지방 분권적 사회라 총평했다.


(3) 총평

전반적 특징을 보자면, 지학사는 상대적으로 대학 교재처럼 쓰는 느낌이 있고 불친절하다. 내용이 압축적이고 선택과 집중이 눈에 보인다.


미래엔이나 천재는 둘 다 다소 다른 특징이 있으나, 용어를 풀어쓰려고 하고 그 배경을 자세히 설명하려는 편이다.


또한 프랑크 왕국에 대한 서술이나 장원제에 대한 서술에서 보이듯이, 각자 강조하고자 하는 주안점이 다소 다르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그리고 여기엔 나오지 않았지만, 천재 교과서의 경우 쉬운 난이도의 학습 활동이 상당히 많으며 지학사의 경우, 어려운 난이도의 사료 해석, 자료 해석 활동이 상당히 많다는 것도 큰 차이점이다.


4. 결론

같은 교육과정이라도 교과서 내용은 제법 다르다. 목차의 구성, 그리고 각 내용의 비중, 용어의 사용, 배경 설명의 정도 등에 따라 학생이 이해하는 정도가 다르고 교사가 수업해야 하는 내용이나 추가적으로 집어넣어야 하는 맥락, 설명 등도 달라진다.


지학사처럼 압축적이고 학술적인 느낌의 경우, 교사의 부연설명이 필수적이고 혼자 읽기 어려울 수 있다. 미래엔이나 천재는 적당히 균형 잡힌 느낌이며, 특히 적어도 이 부분의 경우에는 천재 교과서가 가장 친절하고 설명이 자세하다.


지학사는 프랑크 왕국 자체를 빼버렸으며, 미래엔은 카롤루스 마르텔과 피핀, 카롤루스 대제를 강조했고 천재는 클로비스와 카롤루스 대제를 강조하는 등 각 교과서마다 내용 선정도 조금씩 다르다. 특히 지학사 프랑크 왕국을 빼버린 탓에 봉건제의 배경을 설명하는 부분이 다소 부실해지는 부분이 보일 텐데, 프랑크 왕국의 존재는 교황권의 강화나 서유럽에 크리스트교가 뿌리내리는 과정, 서임권 투쟁과도 연관성이 있는 주제라 과감하게 특정 내용을 생략해 버리면 학생들의 다음 내용 이해도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장원제 설명에서 보이듯, 같은 내용을 소개하더라도 서로 다른 서술이 쓰일 수도 있다.


교과서는 다 같아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찬찬히 들여다보면, 강조점도 다르고 설명도 다르고 방향성도 다르다. 지학사는 저기서 힘을 뺀 만큼, 다른 파트에서 열심히 힘을 주고 상세하게 설명할 것이다. 즉, 같은 교육과정을 따른다고 하더라도, 같은 '배움'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출판사가 다르면 교과서가 다르고, 교과서가 다르면 교사의 '가르침'도 다르며, 다른 교과서와 수업은 결국 학생이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배움'을 다르게 한다. 교과서 선정은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이다.


5. 참고문헌

교육부, 「초·중등학교 사회과 교육과정」, 교육부 고시 제2018-162호(교육부 고시 제2018-150호의 일부개정)

김덕수 외 12명, 『중학교 역사1(2015개정)』, 천재, 2020

김태웅 외 9명, 『중학교 역사1(2015개정)』, 미래엔, 2020

박근칠 외 15명, 『중학교 역사1(2015개정)』, 지학사, 2020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백제 개로왕의 죽음과 개로왕 국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