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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Emilio Nov 26. 2020

구조를 만드는 것이 리더의 진짜 일

팀장으로 산다는 건2_#7

몇 개월 전, 다른 회사 팀장님 한 분과 만남을 갖게 됐습니다. 온라인에서 제 글을 보시다가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셨습니다. 황송한 요청이셨는데요, 정확한 조언을 드릴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고, 코칭은 제 전문 분야가 아니고, 미리 말씀드렸음에도 만나달라셨습니다. (다행히 코로나 거리두기 단계가 낮은 시기에 뵈었습니다)


미팅 장소에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단번에 그분임을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잔뜩 찌푸리고 피곤함이 묻어나는 얼굴이었습니다.


팀장의 고민

"고맙습니다... 어디다 얘기도 못 하고 있다가... 올리신 글들 보면서 용기 냈습니다. 실은 팀원들과 갈등이 심해서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대략 한 시간 가량 저는 듣기만 했습니다. 민감할 수 있는 정보는 제외하거나 명칭을 바꿔서 그분의 사정을 옮겨 봅니다.


- 회사는 중견 제조업체, 직책은 마케팅기획팀장(3년 차 팀장, 나이 40세 전후)

- 이전 부서는 마케팅실행팀이었으나 마케팅기획팀장으로 발령 난 것은 '기획-실행 조직' 간의 시너지를 위해서라는 경영진의 판단 때문이었음, 정작 본인은 원하지 않았음.

- 현상 1) 팀원들의 기획 실무역량 수준이 낮다고 생각함. 실제 일을 시켜보면 현장과는 거리 있는 아이디어만 가져옴. 나름 독려도 하고 질책도 하는데 나아질 기미가 없음.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팀원들과 관계는 매우 소원해진 상태임.

- 현상 2) 팀장이 된 이후로 제대로 된 기획안이 나오질 않아 소속 영업본부 회의 때마다 주표적이 되고 있음.  본인을 팀장으로 발령 내줬던 영업본부장은 재작년에 퇴사하여 신임 본부장으로부터의 압박이 심한 상황임.

- 현상 3) 원래 다섯이었던 팀원은 채널 부서가 해체되면서 셋이 더해져 여덟 명. 인원수가 늘어나면서 여러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음.


리더와 일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라 그 자리에선 딱히 뭐라 권고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하고 나오려는데, 팀장님께서 힘없는 목소리로 그러셨습니다.


"저도 이런 리더가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모든 게 팀원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잘못을 따진다면 리더인 제게 더 있겠죠."


제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팀장과 팀원들이 각기 다른 분야에서 있었던 상황이라 처음부터 신뢰가 부족했다.

- 이러다 보니 팀장은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게 됐는데, 사안별로, 때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이었다. 팀장이 일을 시키는 방식에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결국, 팀원들은 자신들의 실력을 펼쳐 보일 공간이 없었다.

- 신임 본부장과의 기본적인 인간관계는 이슈가 없다고 하니, 업무 성과를 향상하면 호전될 수 있다고 본다.

- 팀원이 늘어났는데, 팀을 운용하는 방식은 그대로였다.

- 팀장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으며, 개선을 위해선 뭐라도 하겠다는 점이 그나마 긍정적이다.


리더는 일이 되게 만드는 사람

생각을 정리하며, 그 팀장님께서 마지막 말씀 중 리더(leader)의 어원을 찾아봤습니다. 여러 설들이 있지만 제 눈길을 끈 건 '고대 유럽에서 가이드(길잡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지도책이나 내비게이션이 없는 때 야생동물이 출몰하는 지역이나 사냥감들이 있고, 안전하게 정주할 곳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구전을 통해 그런 노하우는 전수됐을 것이고, 생존을 위한 비책을 갖고 있던 그들은 무리에서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었을 겁니다. 그런 맥락에서 '가이드'를 '리더의 일 관리' 관점에서 재구성해봤습니다.


첫째, 가이드는 그 길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래야 일행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회의를 하다 보면 설익은 아이디어나 화두를 툭툭 던지면서 안을 만들어보라는 상사가 있습니다. 구체적인 설명 없이, 자기도 원하는 것을 모른 채 무조건 해보라는 식입니다. 좋은 리더라면 본인의 이해 정도를 설명한 후 함께 고민하자고 할 것입니다. 업무 지시는 항상 준비된 상태에서 명확하고 자세히 이뤄져야 하고,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아니라도 본인이 바라는 상(想)이나 기대 수준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체적인 업무 지시가 없다면, 직원들의 '이해력'은 떨어지고 '추리력'만 향상될 것입니다. 본인의 설명이 충분한지는 회의가 끝나고 팀원들이 회의실에 남아 얘기하는 상황이 반복되는지 살피면 알 수 있습니다. 아울러 지시한 사항은 반드시 회의록 등의 기록을 남겨서 서로 이해한 바가 일치하는지 확인할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둘째, 가이드는 무리에서 신망을 받는 사람이다.

모든 관계에 있어 '신뢰'는 기본입니다. 부부, 연인, 친구, 그리고 회사의 동료 간에도 말이죠. 위의 사례는 서로 신뢰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오히려 기획부서와 실행부서는 반목하기 십상이었는데, 그런 사람이 우리 팀장으로 왔으니 팀원들의 불만도 상당했을 겁니다. 관계에 대한 고려 없이 시작된 신임 팀장의 마이크로 매니징은 감정의 골만 더 깊게 했을 겁니다. 이럴 경우에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과거 가졌던 서로의 입장과 상대방에 대한 희망 사항을 솔직히 공유하는 게 요구됩니다.


또한, '신뢰'는 단순히 상대를 믿어주는 것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상대의 의견에 반하는 의사표시에 대해 상대가 비정상적으로 반응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 데까지 범위가 확장됩니다. 이는 팀워크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이슈에 대해서는 100% 만족은 되지 않더라도 팀원의 의견에 따라주는 아량도 필요합니다. 또한 팀장 본인의 의사결정에 오류가 있음을 솔직히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셋째, 가이드는 대략의 도착 시간을 가늠하며, 중간에 점검한다.

그 길을 알고 있는 가이드는 현재 무리의 수, 이동속도, 식량, 기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언제쯤 목적지에 도착해야 할지를 추정합니다. 다소 무리가 되더라도 여러 조건들을 통해 시한을 정해 무리에게 알립니다. 늘 그렇듯이 어떤 여정이든 편하고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여러 번의 회의를 거듭하고, 많은 이슈를 다루다 보면 납기에 대한 지시나 합의 없이 지나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팀원의 입장에선 납기에 대한 언급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해당 일을 미뤄놓고 있다, 나중에 결과 보고하라는 팀장과 의견 충돌을 겪곤 합니다. 애초 지시 단계에서 완료 시점을 명확히 지시하고 중간에 보고를 받는 식으로 진행하자고 합의하고 진행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위의 사례처럼 새로운 팀원이 새로 영입되었을 때는 '중간 점검'의 중요성이 더더욱 중요해집니다. 아울러 팀장의 시간을 확보해줄 '부팀장'을 활용하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현실적으로 6~7명이 한 명의 팀장이 관리할 수 있는 최대치라고 생각합니다)


넷째, 가이드는 오늘의 여정을 기억한다.

무사히 여정을 마치고 목적지에 대부분 무리의 사람들이 건강하게 도착했습니다. 다들 기쁜 얼굴로 안도감에 젖어 있을 때 가이드는 그동안의 여정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자신의 생각이 옳았던 점, 예상치 못했던 점, 잘못 대처했던 점 등. 그렇게 회상을 통해 교훈을 찾으려 합니다. 그런 자세는 전임 가이드가 가르쳐준 '가이드의 태도'였습니다. 그런 지식이 전수되지 않았다면 매번 같은 이유로 여정에 실패하고 말았겠지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란 속담이 있습니다. 저는 한 마리 소를 잃고라도 외양간을 제대로 고쳐둔다면 나중에 소떼를 잃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조직에선 잘 된 케이스만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실패를 직시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과의 실패가 권장될 수는 없겠으나 최선을 다한 과정의 실패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리더는 구조를 관리하는 사람

가이드는 무리 하나하나가 제대로 따라오는지 챙기지 않습니다. 그저 방향을 제시하고 조언하며 점검할 뿐입니다. 리더도 마찬가지입니다. 리더가 어떤 이유에서든지 세부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순간, 팀원들은 생각과 행동을 멈추고, 그것만 쫒을 겁니다. 설사 성과가 나더라도 그건 팀장의 개인 플레이지 팀워크는 아닙니다.


아쉬운 점은 많은 팀장이 일을 잘한다는 이유에서 승진되며, 팀장이 된 후에도 전보다 중요한 일을 할 뿐 실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분명 조직의 문제이며, 개별 팀장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장은 팀을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기에 진짜 리더로서 일을 시작하고 준비할 기회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습니다. 리더는 (팀원들이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일하는 구조를 만들고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외로운 마이크로 매니저가 되지 마시고, 함께 하는 가이드가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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