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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강원 Nov 20. 2023

'클라우스 메켈레 & 오슬로 필하모닉'

북유럽의 바람이 휩쓸고 지나갔다.

국내 클래식 공연계에서는 프로그램 측면에서 항상 새로운 것을 갈망하게 만드는 형태로 운영이 된다.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과 8번은 워낙 많이 연주되었기 때문에 또보르작이란 별칭이 생겨났을 정도이고, 올해에는 브람스 교향곡이 기록을 경신중이다. 이런 와중에 오직 시벨리우스 레퍼토리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가 한국을 찾았다.


오슬로 필하모닉 내한공연 포스터 = (주)빈체로

오슬로 필하모닉. 인품과 실력을 고루 갖춘 지휘자 (故) 마리스 얀손스와 오랜 시간 동안 호흡을 맞추었던 노르웨이의 악단이다. 물론 수많은 사람들은 오슬로 필하모닉과 호흡을 맞출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의 내한 소식에 설렜다.


1996년생의 이 젊은 지휘자는 이 시대에 가장 떠오르는 지휘자로서, 이미 성공의 반열에 오른 젊은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닌다. 항간에는 새로운 바람이 필요한 클래식 공연산업 특유의 시장성에 따라 스타성(훤칠한 외모 등)을 갖춘 지휘자 정도로 평가절하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그가 가진 잠재력을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건지 언제나 궁금했다. 팬데믹이 아니었다면 벌써 두 번은 그의 비팅을 볼 수 있었겠지만, 번번이 공연이 취소되더니 2023년이 되어서야 그를 마주할 수 있게 됐다. 그가 풀어낸 음악은 어떠했을까?


이들은 한국에서 시벨리우스의 곡으로만 총 세 번의 공연을 진행했다. 

- 10월 28일 고양아람누리(바이올린 협주곡, 교향곡 2번)
- 10월 30일 롯데콘서트홀(투오넬라의 백조, 바이올린 협주곡, 교향곡 5번)
- 10월 31일 예술의전당(바이올린 협주곡, 교향곡 2번)
바이올린 협주곡의 협연은 재닌 얀센이 맡았다




시벨리우스 투오넬라의 백조

The Swan of Tuonela (Ben Garrison, 2011) = https://ferrebeekeeper.wordpress.com/2011/09/09/the-swan-

투오넬라의 백조는 핀란드의 민족 서사시, 칼레발라 중 레민카이넨의 이야기 속에 등장한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망자들의 땅에 들어서려는 레민카이넨은 삶과 죽음의 경계의 강을 건너야 했다. 이때 강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흑조의 모습을 잉글리시 호른으로 곡의 풍광을 그려낸다.


오슬로 필하모닉이 연주한 이 풍광은 본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 악단이 가지고 있는 힘이나 색채감을 함께 보여주는 도구로 사용됐다. 일종의 애피타이저였지만, 흡인력이 있었다.


이들의 연주는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영웅의 심리상태를 묘사하듯, 처음엔 밝은 색채감을 유지하며 밀도감 있게 곡을 풀어냈다. 이때 들려오는 잉글리시 호른은 생과 사의 경계선에서 흑조의 모습을 취한 것이 아니라 백조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었다.


곡이 점차 진행되자 그 분위기는 훨씬 무거워지고, 어두워졌다. 생사의 경계면이 죽음에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였다. 백조였던 한 마리의 새는 어느덧 흑조가 되어 유유히 강을 건너고 있었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신세계 클래식 페스티벌: 오슬로 필하모닉 (2023.10.31. / 예술의전당) = 이강원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영하의 온도로 내려갔을 때, 비로소 손이 가는 곡이다. 그만큼 차갑고 쓸쓸함을 잘 표현한 곡이다. 그래서 이 곡을 들을 땐 특별히 기대하는 부분이 있다. 시리고 시린 풍광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한데 바이올리니스트 재닌 얀센이 연주한 바이올린 협주곡은 이런 기대와는 거리가 있었다. 물론 곡의 특색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었으나, 시리고 시린 감성이 아닌 영상권의 낮은 기온을 풍겨내며 개성 강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었다.


프레이즈를 풀어내는 호흡법도 독특했다. 2악장에서는 이음새가 무한히 이어진 듯 어느 구간할 것 없이 쉼 없이 곡을 이어나갔다. 마치 목관악기 연주자들이 순환 호흡법으로 곡을 연주해 내듯이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겨울날에 전기매트를 깔고 포근한 이불을 덮은 상태의 기분이 떠올랐다.


3악장에선 꽤 원시적인 연주가 이어졌다. 팀파니와 진한 호흡을 맞추기보다는, ‘달가닥달가닥’ 소리를 내는 첼로나 더블베이스와 같은 현악기와 더 깊은 호흡이 이뤄졌다. 오케스트라의 힘에 밀릴새도 없이 불같은 테크닉을 보여주며 곡을 마무리 짓는다. 재닌 얀센이 풀어낸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시리고 시린 한 겨울의 연주가 아니라 따스함과 정열이 함께한 그런 연주로 정리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클라우스 메켈레 & 오슬로 필하모닉 (2023.10.28. / 고양아람누리) = 이강원


이번 투어의 첫 공연이었던 고양아람누리에서는 저음 혹은 중음역대를 기반으로 곡을 풀어낸다고 생각했다. 공연장의 풍부한 음향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악단 자체가 특별히 피치를 높게 가져가지 않은듯했다.
 
또한 현악기를 세공하는 능력이 꽤 뛰어났다. 현악기의 높은 밀도감은 때때로 목관악기를 집어삼키는 순간이 보이기도 했다. 빵빵한 금관악기의 연주도, 팀파니의 연주도 현악기 못지않게 공을 들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편 곡을 풀어낼 때, 칸타빌레나 유연함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특히 오보에의 연주는 스틱 모양의 악기 형태를 그대로 표현하기라도 하듯 다분히 직선적인 연주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래서 곡이 진행되는 내내 좀 더 노래하길 바랄 때가 많았다.


그렇지만 쉽게 납득이 되는 연주였다. 얼굴 속에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핀란드인들의 이미지와 오랫동안 러시아 지배 아래 있었던 그들의 민족적인 성향이 서로 교차되면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자연의 풍광이 아닌, 민족적인 성향이 중심이 되는 해석이었던 것이다.


변화무쌍하지 않지만, 밀도 높은 연주. 이는 돈 후안의 죽음이 깃든 2악장에서도 잘 표현이 되었다. 곡의 초반부에 어둠의 풍광을 길게 늘어뜨리며 짙게 채색해나갔으나, 곡이 진행됨에 따라 그렇게 충격적인 비극으로 표현하진 않는 형태. 시시각각 이곳저곳에서 운명의 파도를 여러 군데에서 튀어 오르듯 일구어 내진 않으나, 거대한 해일을 만들어내고 있는 연주로 말이다.


동시에 클라우스 메켈레는 오케스트라의 정의를 확립 해나갔다. 여러 악기 군의 집합체로서, 개별 악기 군의 개성은 최소화시키고 큰 틀에서 하나 됨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 거대한 형체를 완벽하게 컨트롤하기엔 프레이즈 사이로 좀 더 다듬어야 할 구간이 더러 보였으나, 저음과 중음역대를 기반으로 무뚝뚝하고 단단하게 곡을 풀어내던 모습과 결이 맞아떨어지는 모습이다.


그래서 4악장 중 피날레로 향하는 길목에서 텐션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 모습이 ‘중심을 지키고 버텨내는 저항정신(투쟁의 모습과는 다른)‘으로 다가와 꽤 인상적이었다.


오케스트라의 정의. 예술의전당에서 같은 곡을 감상했을 때 1층 C 구역 가장 앞자리에서 곡을 감상하게 되었는데, 보통 이 자리는 악기 군들이 블렌딩이 잘되지 않는 곳이라 듣기 위한 음악이 아닌, 지휘자의 비팅과 현악기의 수석 주자들을 보기 위한 자리로 유명하다. 하지만 오슬로 필의 연주는 이곳에서도 앙상블이 맞아떨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앞 좌석에서는 거대한 틀 안에서도 미시적으로 순간순간의 변화를 꾀하는 지휘자의 비팅과 이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오케스트라의 모습 또한 꽤 인상적이었다. 이 속에서 비올라와 첼로는 나의 시선을 가장 많이 훔쳐 가기도 했다. 정말 훌륭하고 인상적인 연주였다.



시벨리우스 교향곡 5번

오슬로 필하모닉(2023.10.30. / 롯데콘서트홀) = 이강원

시벨리우스 교향곡 5번도 2번과 마찬가지로 현악기에 굉장히 공을 들이며, 밀도 높은 연주를 들려줬다. 다만 중저음에 기반해 각 악기 군마다 특징점을 최소화했던 교향곡 2번과는 좀 다른 모양새였다.


단적인 예로 1악장에선 현악기를 활용해 작은 틀에서 순간순간의 바람을 불어낼 뿐만 아니라, 스산한 새벽의 풍광을 만들어 내는 형태였다. 이로써 교향곡 2번에서 풀어낸 핀란드의 풍광이 사람 중심이었다면, 교향곡 5번은 자연이 중심이 되었다.


흐릿한 관악기 사이로 현악기가 스산하게 덧칠을 해내는 것이 새벽부터 아침까지 해가 떠오르고 있으나, 안개가 끼고, 밝은 회색빛의 구름이 드리워진 풍광을 그려낸 것 같았다. 이때 꽤 진득하게 이어지는 슬로모션처럼 표현돼 그 분위기를 점점 고조시켜나갔던 것 같다.


충분히 시간이 흘러 해가 중천에 걸려있을 무렵 구름과 안개가 걷힌다. 이어서 춤을 추고 있는 나비들의 모습이 여기저기 가득하다. 3악장 즈음 들려오는 금관악기의 소리.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는 산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삶을 향한 등반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이 무렵 더블 베이스를 통해 솩솩 긁어내며 들려오는 음향 효과들이 새들의 날갯소리를 표현하기도 했는데, 이런 음향적 효과만 보더라도 음악을 시각화하여 곡을 풀어낼 때, 얼마나 영리하게 곡을 설계했는지 잘 나타나는 대목이었다.




한국 관객들에게도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었다.

오슬로 필하모닉과 호흡을 맞춘 클라우스 메켈레. 교향곡 5번 중 1악장에서 점차 곡을 빌드업 해 나가다 또렷하게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땐 그가 지휘하는 브루크너도 괜찮겠다 싶었고, 곡의 풍광을 스케치하고, 채색하는 모습에선 그가 풀어내는 알프스 교향곡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메켈레가 RCO로 향한다는 사실이 기뻤다. 훤칠한 외모를 비롯한 스타성과는 별개로 관객들을 설득시키는 폼이 확실히 남다른 지휘자다. 이번 공연은 한국 관객에게도 그가 거장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지휘자임을 스스로 증명해낸 셈이었다. 앞으로가 기대된다.

인상적이었던 북유럽의 바람만큼, 앞으로 지휘계의 새로운 바람을 마음껏 불어주길 바란다.



※ 해당 포스팅은 얼룩소 선공개(https://alook.so/posts/DjtlXwV) 및 네이버 블로그(https://blog.naver.com/9regson/223269390868)와 함께 발행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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