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06 수요일 버스에서 느꼈던 점
내가 사는 곳은 지하철이 1호선밖에 없는 지역이다.
당연히 지하철 노선이 많은 서울이야 버스보다는 지하철이 편하겠지만 우리 고장은 그렇지 않다.
사족이지만 대중교통 수송분담률(쉽게 말해서 대중교통의 효율)도 낮은 곳이다.
개인적으로 지하철보다 버스를 선호한다는 얘기를 하려다 우리 동네를 까게 되었군.
지하라 바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좌석이 서로 마주한다는 점 등에서 나는 버스를 더 좋아한다.
설령 지하철이 조금 더 빠르다고 해도 말이다.
그리고 오늘 점심 무렵에 버스를 타게 되었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어렸을 적에는 노인공경은 하나의 사회적인 가치로 통했다. 세대가 거듭해가며 삶이 팍팍해지는 것에 기성세대들의 책임이 없지 않기에 지금은 젊은이들이 딱히 그런 것에 크게 개의치는 않는 시대가 된 것 같다.
물론 예전에도 개인의 가치관이나 성격에 따라서 달라지는 부분이 있다. 나의 성향은 마음의 무거운 짐과도 같은 느낌이기 때문에 어렸을 때에는 뒷자리가 아니면 앉지 않았다. 내향적인 인간이라 양보를 하는 것도 뭔가 민망하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상한가.
자리가 크게 여유롭지 않았던 탓도 있어서 이번에도 나는 뒷자리에 앉았다. 몇 정거장을 가니 노인이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의 어르신들이 대거 탑승했다. 근처에 시장이 있어서 장을 보고 돌아가시는 것 같았다. 앞쪽에 자리가 없다보니 뒤쪽까지 들어오시자 뒷바퀴 자리(통상 높은 자리)에 앉아있던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어 정거장 전에 탔으니 아마도 내리는 것은 아니고 노인공경을 아는 젊은이였다. 외모가 약간 페이커를 닮았었다. 그런데 그 바로 뒷자리 대각선 자리에 앉아있는 다른 청년이 약간 안절부절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물론 나의 착각이었을 수도 있다) 마음이 불편해지면 몸이 편안할 수 없는 법이다.(그러는 나는?? 뒷자리는 예외라고 해두자)
요즘 mz세대니 뭐니 세대갈등을 유발하는 발언들이 많은데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가치가 비뀌는 것은 사람이 죽고 사는 것처럼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게다가 우리 사회가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는 이상은 이처럼 여전히 노약자를 생각하는 젊은이들은 존재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게다가 더이상 양보하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고령의 어르신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중년의 여성분도 있었다.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배려하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적이라고 합의를 본 사회는 지속할 가치가 있다. 나도 환자이고 약하기는 하지만 어르신들 보면 엄마 생각이 나서 일어나게 된다.(하지만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뒷자리에 탄다)
40대 이후의 인상은 숨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누가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물론 그렇다고 인상이 험악하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라는 편견을 가지는 건 멍청한 짓이다. 다만 말투나 인상에서 어느 정도 그 사람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긴 하다. 그만큼 정보를 주기 때문이다.
어떤 어르신이 자기 옆에 자리가 나자 앞쪽에 있던 자기 일행이 앉았나 하고 쳐다보면서 살짝 일어났다. 그런데 바로 옆에 서 있던 다른 어르신이 그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아니 언니, 지금 앞에 있는 일행 챙기게 생겼어? 앉을 사람부터 앉아야지
-그게 아니라 쟤가 환자라서
-하이고, 섭섭하네
(정확한 대사는 아니다)
처음에는 언니라는 호칭 때문에 두 분이 아는 사이인가 했는데 어째 그런 건 아닌 모양이었다. 혹은 시장이나 어디서 처음 본 사이일 수도 있고. 원래 나이가 들면 친화력이라고 해야 할까. 거침이 없어지는 것이 있으니.
그런데 약간 면박을 주는 듯한 말투로 얘기하는 분의 인상은 뭔가 강인해보였다. 소위 성격이 있어보이는? 자신의 주장을 확실히 말하거나 고집이 있을 듯해보였다. 게다가 뒤에 알게 되었지만 그분은 70정도고 다른 할머니는 81살이었는데 자신보다 10살이 많은 언니에게 타박도 잘하는? 분이었다.
어떻게 보면 요즘같은 F감성이라고 해야 하나 따스한 느낌을 원하는 시대상에서 보면 말투가 저게 뭐냐고 할 수 있다. 또는 첫인상이 별로거나 비호감으로 찍힐 수 있어보이는 분이었다. 나도 말투와 인상이 성격을 나타내는 지표인가 하는 생각에 잠겨있을 때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딱 봐도 힘이 없어보이는 가느다란 팔목에 하얀 머리가 인상적이신 어르신이 버스에 올랐는데 자리가 없어서 뒷자리까지 오셨다. 그걸 보고 강한 말투의 그분이 또 언니라는 호칭을 쓰며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었다. 순간 편견에 휩싸일 뻔한 나 자신을 책망했다. 말투야 성격이겠지만 그것이 곧 인성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남을 배려하고 남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이를 알아보는 것은 그렇게 어렵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말만 번지르르하고 나설 때 나서지 않고 희생하지 않는 이가 더 많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착하거나 존경할 만한 사람을 만나면 인정하는 말을 많이 하려고 한다.
요즘은 서로 간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매너인 시대지만 어르신들에게는 꼭 그렇지는 않다. 물론 아마 나도 그렇고 젊은이들도 그 나이가 되면 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타박을 들었던 할머니가 갑자기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어이구, ---가 지났나 안 지났나...안 지났겠지?
나는 바로 뒤에 있었기 때문에 들을 수 있었던 것이지 내가 귀가 좋거나 염탐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말씀하신 정류장은 방금 지났다. 여기서 선택지는 간섭하느냐 마느냐 둘 중의 하나일 것인데 어떻게 할 것인가? 나의 성향은 사해동포는 상부상조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오지랖은 별로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날의 컨디션마다 다르기도 하지만 이날은 곧바로 행동에 들어섰다.
-지났어요. 내리셔야 해요.
하지만 할머니는 못 들으셨다. 그래서 세 번 정도 더 말했는데 마스크를 껴서인지 아니면 어르신 귀가 좀 어두우신건지 옆의 할머니가 뒤에서 뭐라 그런다고 하고 나서야 뒤를 돌아보셨다. 민망민망.
뭐, 사실 관여를 하지 않았어도 할머니께서 금세 어딘지 아셨으리라 생각하는 데다가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닐지라도 서로에 대한 작은 관심이 남아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나의 작은 소망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