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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as Jul 09. 2022

아버지 군인


아빠 노릇하기 힘들다 190506

 ㅡ 딸아이 기숙사에 데려다 주고 오는길  ㅡ


'노릇'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흔히 일부 명사 뒤에 쓰여) '맡은 바  그 사람의 어떤 자격이나 직책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구실'을 낮게 또는 부정적인 어감을 가지고 이르는 말'이라 되어 있다.

매상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이해하라며 군인의 특성상 '어쩔 수 없다'는 변명과 핑계를 잘 활용(?)하며 이런저런 내 호칭에 걸맞는 '노릇'을 하지 않아왔다.

그러나 딸아이에게 만큼은 나름 최선을 다했다. 여기서 최선이란 나의 기준이다. 부대 일을 제외하고 이쁜 딸은 언제나 최우선 순위였다.

환경은 변화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했던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를 비롯한 주변 환경도 변하고 아빠의 사랑을 필요로 하며 느낄 수 있는 시간도 점점 줄어가는게 보이기 시작했다.

벌써 고3이다. 게다가 최근까지는 아이 엄마가 픽업해 주었는데 복직한 이후로는 불가이다. 그 전에는 아버지가 데려오고 데려다 주셨다.

더구나 작년 말 이 곳 양양으로 이사 온 뒤로는 거리가 너무 멀어졌고 교통도 불편해졌다. 아버지도 여든 가까이 되시니 해가 다르게 변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세상이 박해져 갈수록 별의 별 사건사고가 많다며 꼭 챙기신다. 좀 과하다 싶을 정도가 한 두번이 아니다.

여자 아이라며, 몸도 약하다며 학교에서 오갈데는 직접 데려 오시거나 데려다 주신다. 그리고 며칠은 힘들어하신다. 자식 때문에 부모님 힘들어 하시는 모습 보는 것도 못할 짓이다. 죄송할 따름이다.

이제 때가 된 듯하다. 그 동안 제대로 못한 아비 노릇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해야할 상황이 된 것이다. 연휴 전날 휴가를 내었다. 예전 같으면 가족들에게 써먹던 군인이라는 특수성을 잘 활용(?)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군복 입은 지 벌써 30년만에 처음으로 연휴 전날, 끝나는 다음날 휴가를 내었다. 그것도 하나의 연휴를 두고 앞뒤로 휴가를 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멀긴 멀었다. 장장 8시간 이상을 숫전히 운전만 했다. 또 다시 집 떠나 고생할 녀석 생각에 데려다 주는 차안에서 눈치보며 숨죽이며 거의 10시간 가량을 말 조심하며 눈치보며 운전했다. 그런 운전과 쇼핑까지 하며 기숙사에 데려다 주고 돌아오니 부모님들께서 안 주무시고 기다리고 계셨다.

''간만에 애비노릇 톡톡히 했네''

라며 안방에서 나오시며 맞아 주신다.

 ''한 참 운전하느라 힘들제! 저녁은 먹었냐?''

라며 웃으신다. 그 동안 ''너 대신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겠니'' 자격지심일까?  '너 대신에 그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겠니'라고 하시는 듯 했다.

그 꾸지람을 애써 모른 척했다. 또 저녁도 안먹었냐며 걱정하실까봐 먹었다고 대충 둘러 됐다. 그러나 역시 어머니는 어머니이시다. 언제 사놓으셨는지 아들이 좋아하는 찹쌀 도넛을 꺼내서 데워 주시고, 과일까지 내 주신다. 조용히 계시던 아버지도 칙즙을 주라 하신다.

사실 피곤하긴했다. 연휴 마지막 날이라 귀경하는 차량이 많을 걸 예상하고 오전 10시 전에 출발하려 했다. 그러나 어쩌랴! 그 어리게만 보이는 녀석도 이제 다 컸다고 화장하고, 또 뭘 그리 챙기는지 1시간 후, 30분 후 하다가 12시30분에야 집을 나섰다.

혼자 운전하면 조리고 힘들다며 같이 가시겠다는 걸 극구 말렸다. '차가 오래되어 힘도 떨어지는지 여럿이 타면 속도도 나지 않고 차에 무리가 되어 연료도 많이 든다'며 혼자 갔다 오겠다며 애둘러 표현했다.

사실은 구형, 2006.6.6 이쁜 딸 여섯살 때 인수받은 차이다. 요즘 나오는 차보다 승차감이 많이 떨어질 뿐더러 많이 들 늙으시기도 했다. 지난 3일에도 이 녀석을 데려 오는 길에 부모님과 같이 다녀 왔다. 왕복 운전만 6시간이었는데 무척 힘들어 하셨다.

이번에는 혼자서 가기를 잘했다.

양양-서울간 고속도로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차는 제속도를 내지 못했다. 고속도로 역시 제 노릇을 못했다. 날씨는 벌써 초여름인 듯 한데 몸도 약한 이 녀석 혹 감기들까봐 에어컨도 눈치보며 가동했다.

뒤자리 앉으라 했더니 굳이 앞에 타겠다할 땐 언제고 햇볕에 얼굴 탄다며 고장난 가리개를 만지작거려 의자에 걸어 둔 옷을 이용해서 조수석에 쏟아지는 직사광선을 막았다. 하나가 편해지니 불편해지는  것이 생긴다. 사이드미러도 가려 운전하기에 더 불편해졌다.

아는지 모르는지 차가 막혀 지루했던지 한 숨 자기도...  괜히 안스러웠다. 연휴인데도 과제니 수시니 해서 잠도 못자며 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있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며칠 전 데려올 때보다 소요시간이 두배가 약간 넘었다. 세상살이 힘들다 경제도 어렵다는 언론 보도는 다 가짜뉴스처럼 생각되었다.

가다서다를 반복하니 차도 힘들어함이 역역하다. 눈도 아프고, 어깨, 허리, 다리 등이 뻐근해지고 집중력은 떨어져갔다. 가끔씩 쳐다보니 졸고 있는 모습이 안스러워 보였다. '내가 아빠로서 앞으로 몇 번이나 이런 아빠 노릇을 더 할 수 있을까'라며 위안을 삼았다.

이제 몇 개월만 있으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거라는 둥, 그 동안 데려다 주고 온 아내도 무척 힘들었을 거라는 둥, 이런저런 생각 끝에 고속도로도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 졸업앨범 촬영 때 입을 옷을 인터넷 주문했다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입금했는데 연휴라 시간이 애매해 늦게 도착할 수 있다며 예비 옷을 준비해야 한다니... 쇼핑몰에만 가면 눈은 건조해지고 퍽퍽해지는데...

긴 연휴간 필요한 것은 미리 좀 사두자며 그랬는데...  이건 뭐 닥쳐서 하는 건 전혀 날 닮지 않은 듯하다. 그래도 어쩌랴? 귀하고 이쁜 딸인데...

그래도 이제는 고 3이라며 기숙사 들어갈 때 표정이 예전과는 달랐다. 대견했다.

부랴부랴 날아와 좀 쉬려하니 감사 문자가 왔다. '아빠 집 잘 도착하셔써요?? 다음엔 일찍 나올게요ㅜㅜ.. 안녕히 주무셔요' 하루 피로가 싹 가시며, 짜증도 참으며 '아비 노릇 참 힘들구나' 했던 생각은 금새 사라졌다.


그런데 이어진 추가 문자,

'아빠 근데 제가 노트북 충전기를 놓고 온 것 같은데 할아버지께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아마 책상에 있을거고 검정색이고 삼성이라고 써있고 제 이름표도 붙어있을 거예요' 라며 문자로 보내 달라는 것이다.


아빠 노릇하기 쉽지 않다. 제대로 하려면 시간, 체력, 인내 등이 없으면 안될 것 같다.  나의 아버지, 어머니가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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