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 엄마의 사랑

갚을 수 없는 사랑

by Faust Lucas



오징어 회 한 접시

오징어잡이 배는 둥근 유리등으로 온몸을 주렁주렁 감싸고 설악산 제일 북쪽 계곡에서 내려온 물이 잠시 고인 청초호를 뒤로하고 밤바다로 나아간다.

뒤로는 내일 아침 만선으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듯 긴 물살을 남기며 서서히 어두운 색으로 변해가며 설악산 너머에서 오늘의 마지막 석양을 반사 중인 바다로 나아간다.

그 배의 돛대는 아바이 마을로 이어지는 설악대교 밑을 지나가며 약간의 잔물결을 만들어 보낸다. 옆 쪽에서 삼삼오오 호수와 바다가 만나는 곳에 드린 낚싯줄도 살짝 흔들며 방파제 사이 한가운데 뚫린 작은 포구의 어귀를 지나 나아간다. 그러고 보니 오징어배가 며칠 사이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언제인가 엄마는 양양 시장에는 죽은 오징어만 있다고 하셨던 기억이 났다. 여기 오고 나서 몇 번인가 사드린 기억이 났다. 여기저기서 찾아오는 선후배 등과 식사를 할 때면 설악항 상원이네 집에 가서 회를 나만 먹고 다녔다.

물론 가끔은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매운탕, 회를 포장해 드리기도 했지만... 바닷가에서 직접 사드린 적은 한두 번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전화로 마트에서 나오신단다. 오징어 회 드시러 가자했다. 최근 주변에는 늙거나 나이 든 중년의 고아들이 늘어간다.

다들 하는 이야기는 부모님 살아 계실 때 맛있는 것 많이 사드려라는 것이다. 나도 알고는 있지만 잘되지 않는 그런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두 분 다 자연산 해삼이라 해도 그 맛있는, 씹는 맛이 제격인 해삼 껍데기에 쌓인 그 알맹이를 손도 안 대신다.

그러시면서 할아버지가 이 좋을 때 딱딱한 맛난 것 많이 먹으라 하셨다는 말씀도 잊지 않으신다. 어머니는 초장에 오징어를 잔뜩 찍어 드신다. 두 분이 튀겨낸 빨간고기(?) 생선구이까지 드시며 집에서는 이런 맛이 나지 않는다고 하신다.

하기야 친구나 말 벗도 없이 아들 하나 밥 챙기기 위해 낯 선 땅, 우리나라에서 제일 춥다고 알고 계시던, 한 여름에 에어컨도 필요 없을 정도로 춥다고 알고 계시던 곳을 따라오셨다.

약 25년 전쯤 부산에서 그 꼬불꼬불한 산길국도를 따라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구형버스를 타고 멀미하며 오셨던 기억을 지금도 가끔 말씀하신다.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아주 추운 곳에 아들 식사 거를까 하는 걱정으로 오셨으니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아는 지인도 없어 외식할 기회도 흔치 않으셨을 것이다. 기껏해야 아들과 함께하는 것이 전부인데 무심했던 지난 시간들이 아쉽기만 하다.

물론 이런저런 회식 등이 있을 때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매운탕을 포장해서 가기도 하고 회도 가끔 싸가기도 했다. 그러나 회는 바닷가에서 짠물 냄새 맡으며 먹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해삼에 이어 오징어회가 한 접시 나왔다. 초장에 찍어 드시며 조용하시다. 채하실까봐 중간에 '맛은 어떠세요?' 라며 한숨 돌리시게 하고는 소주 한 잔 하시겠냐며 권해 드렸더니 흔쾌히 '참이슬'로 답하시며 몇 잔을 드셨다.

젊었을 적 힘든 객지 생활을 이겨내느라 자주 드시기는 했지만 아들 결혼하고 며느리에게 실수하면 안 된다고 끊으신 분이다. 그런데 오늘은 몇 잔씩이나? 인사하러 온 주인에게 한 잔 받고 따라 주기도 하신다.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흐뭇해지며 예전 어른들 말씀이 생각났다. 부모들이 제일 좋아하는 소리는 자식들 책 읽는 소리와 입으로 음식 넘어가는 소리라고...

그런데 지금은 내가 바꾸어 말하고 싶다.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지만 자식도 듣기 좋은 소리가 한 가지가 있다. 부모님이 음식 맛나게 드시는 소리라고... 갑자기 마음속에서 '오지다'라는 단어가 떠오르며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오징어, 해삼 한두 점에도 난 이미 배가 부르다. 왜일까?


그 사랑으로 벌써 배가 부른 것일까?

그런데 왜 눈이 촉촉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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