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사랑

입맞춤

by Faust Lucas

소년은 소녀가 다니는 학원 시간에 맞추어 과목을 선택했다. 수업이 끝나면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기다렸다. 소년은 기다리는 소녀의 뒷모습만 보아도 안다. 소녀는 소년의 뒷모습을 본 적이 없다. 언제나 까까머리의 환하게 웃는, 반짝이는 눈 빛, 소녀를 향해 힘껏 머리 위로 쭉 뻗어 올리는 손만을 볼 수 있었다.

입구는 오가는 또래의 고등학생, 재수생들로 거의 한 시간 단위로 붐비고 혼잡했다. 하지만 소녀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녀에게는 무엇인지 소년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버스 승강장까지 비를 피해 같이 뛰었다. 소년의 책받침으로 소녀의 머리에 비 한 방울 안 떨어지게... 차창 밖은 비가 주룩주룩...
나란히 선 둘 사이는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소년이 제아무리 비를 막으려 했어도 소녀의 머리카락은 젖어 있었다.

가녀린 하얀 손으로 조심조심 머리카락에 달린 빗방울을 떨어내었다. 그 찰랑 거림은 향기로운 샴푸 향과 함께 소녀만의 체취까지 둘 사이 공간을 적절히 채워고 또 약간을 소년에게 전해주었다.

비는 밤을 새워 계속 내릴 듯 쉬지 않았다. 버스 맨 뒷자리에는 재수생처럼 보이는 형, 누나가 서로 손을 잡아가며 팔도 주물러 주고 빗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닦아주며 떠들고 있었다.

소년은 창에 비친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우리는 언제나 저들처럼... 그래도 재수하면서 저러는 건 아니야! 얼른 대학생이 되면 나는 그녀 머리카락에 코를 대고 이 표현할 수 없는 향을 느낄 거야' 라 다짐했다.

소녀는 오늘따라 소년이 이상했다. 창 밖만 보고 한숨을 쉬는가 하면 고개를 돌려 두리번거리는 게 이해가 안 되었다. '애가 왜 이러지? 한 참을 창만 보질 않나? 주변을 두리번거릴 않나? 어디 아픈가? 숨을 가끔 끄게 쉬고... 시험 성적이 안 나온 것도 아닌데...'

이 생각 저 생각을 아무리 해봐도 평소 같지 않았다. 내리면 어디 아픈가 물어야겠다고 생각하니 '오늘따라 버스가 왜 이리 더디 갈까? 비가 온다고 해도 너무 가다 서다를 반복하네'

소년은 버스가 빗길에 위험하게 너무 빨리 가는 것을 느꼈다. 차도 막히고 앞도 잘 안 보일 건데... 평소에도 너무 과속한다고 느끼던 터였는데... 날씨나 기상을 전혀 고려 안 하는 기사 아저씨가 생각이 없는 사람으로 보였다.
창에 비친 뒷자리를 힐끔 거릴라, 빗길임에도 과속하는 버스 기사를 노려 볼라, 난생처음 느껴보는 이 체취와 향을 하나도 남김없이 깊이 들이킬라 마음은 바빴다.

소녀는 뭔가 이상했다. 소년이 안절부절못하며 크고 깊은 호흡을 계속하고 얼굴도 빨개지는 그 아이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말도 안 하고... 기분 나쁘냐 물어도 대답도 안 한다. 뭔가 기분 나쁜 게 있나 보다. 혹 저번에 의대 다니는 사촌 오빠가 집에 다녀간 이야기할 때 표정이 안 좋던데.. 야가 삐졌나?' 내려서 물어야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집에 빨리 가서 모의고사 준비도 해야 하는데... 요즘은 여자 남자가 어디 있나? 이마에 손대보고 열이 많은지 알아보고 그때 오빠 이야기로 기분 나빴으면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비는 주룩주룩 계속 내렸다. 버스는 가다 서다를 계속 반복했다. 어느덧 벌써 둘은 다 같이 내릴 때가 된 것을 알았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이문세의 <소녀>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년의 귀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점점 들리지 않는다. 그의 심장 박동은 언제부터인가 소녀의 숨소리에 맞춰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마치 세네나 데처럼, 낮게 깔리는 첼로 소리 같았다. 가끔 보이는 새하얀 이 사이로 나오는 노랫가사는 소년의 마음을 대신 노래해 주었다. '내 곁에만 머물러요~~ 나 항상 그대 곁에 머물겠어요~~ 떠나지 않아요~~~~'

그렇게 창밖을 보며 멍하니 빗물에 스치고 헝클어진 불빛들이 아련해졌다.

애가 왜 이럴까?' 버스가 속도를 줄이자
소녀가 살짝 쳤다. 내리라는 신호였다.
소년의 평소 같지 않은 모습이 계속되었다. 걱정이 되었다. 내릴 생각을 안 하는 것을 보면 뭔가 이상함이 분명하다. '아직도 열이 나는 듯한 얼굴을 보면 확실하다' 다시 확인하기 위해 얼굴을 돌려 보았다. 맞다!

소녀가 고개를 돌리자 소년에게 그 체취는 더욱 가까이 느껴졌다. 중 3부터 알고는 지냈지만, 최근 학원 시간까지 맞춰가며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평소에도 예쁘다고 생각은 했지만 갈수록 정말 예뻐진다. 매일 집에 갈 때 같은 버스에서 오늘처럼 보아 왔는데 오늘은 왜 이럴까? 갈수록 정말 예뻐진다.

버스가 서자 소년은 스쳐 지나가는 소녀를 따라 내렸다. 소녀가 움직일 때마다 체취가 주위를 감쌌다. 그러나 정작 소녀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비는 어떻게 알았는지 딱 시간을 맞추어 그쳤다. 소녀의 뒷모습을 보는 걸 좋아했다. 이제는 100m 밖에서 뒤만 보아도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비 온 후 밤공기는 시원하고 상쾌했다. 밀폐된 버스와는 완전히 달랐다. 인도에 말을 내딛자 따라오라는 듯 평소와는 반대방향으로 걷는다. 걸음걸이도 예쁘다. 긴 생머리와 치마 밑으로 보이는 하얀 다리가 빛난다. '내 여자친구라는 게 좋다. 자랑스럽다' 사실 친구들도 부러워하기는 한다. 여고생이 아니라 여대생이라 해도 될 듯하다. 누나를 따라 걷는 남동생이 된 것 같다. 저런 누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애인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소녀는 버스에서 내릴 때 말했다. '말할 거 있어, 따라와!' 그리고는 인도에서 살짝 들어간 어두운 곳으로 걸었다. 평소 이쁜 걸음걸이가 아니었다. 그 이쁜 다리에서 발 끝까지가 화나 있는 듯했다. 몇 발자국을 뗀 다음 팔짱을 끼고 갑자기 돌아 섰다. 생각 없이 따라가다 부딪힐 뻔했다.

'이리 가까이 오너라! 눈감고 호흡을 천천히 해볼래' 손을 뻗어 소년의 이마에 손바닥을 대었다. 열이 없었다. '니 어디 아픈데? 아까는 얼굴이 블그스레 하더구먼, 아니면 저번에 사촌 오빠 공부 잘한다고 했더니 삐짓나? 미안하다. 내는 공부만 잘하는 그 오빠 별로다. 눈빛도, 목소리도, 말투도, 그리고 키가 별로다. 니 정도가 딱 내한테 맞잖아! 네가 좀 천천히 걸으면 나는 보통 때처럼 편하게 걸으면 되거든...'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못 본모습이었다. 그동안 하자고 하는 대로 따라만 하더니 완전히 달랐다. 사촌 오빠 때문에 기분 나빴던 거는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는 전혀 모르는 듯하다.
팔짱 긴 모습에, 소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게 처음이었던 것 같다.

언제나 소녀는 눈을 똑바로 못 쳐다보았다. 눈까지 감으라니...
게다가 그렇게 한 번 잡고 싶어 했던 이쁜 손으로 이마의 열이 있냐며... 걱정하고 있었구나!
사실 소년은 소녀와 같이 있기만 해도 좋았다. 만나 어떤 이야기를 하고 무엇을 먹고 하는 등의 사귄다는 의미의 데이트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그저 여자인 친구로만...

눈을 감은채 소녀의 부드러운 손끝에서 전해지는 체온을 느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얼굴에 표현할 수 체취가 와닿는다. 눈을 떠보니 소녀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다. 갸우뚱하는 눈빛이 일 순간 멈춘다. 소년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녀의 입술에 살짝 입맞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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