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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를 설레게 한 여자

by Faust Lucas

8. 변태를 설레게 한 여자

친구가 오라 한다. 이 말을 들은 것도 1주일이 다 되어간다. 많은 사람을 관리하고 신경 쓰기에도 바쁠건데.., 고맙다. 그래서 오늘 가는 것이다. 차를 가져갈까? 대중교통으로 갈까? 아침부터 급하게 움직였다. 오전에 빨리 오라고 한 말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 지도를 살펴보니 10여 분 간격으로 차가 있다. 앞차는 시간이 애매하고 뒤차를 타기로 했다. 약간의 여유가 있길래 조금 방심했더니 조금 전 뒷였던 것도 놓쳐버린 것이다.

오랜만에 외각순환도로를 타고 하남에 내렸다. 대략 30여분 걸리는 거리인데 내려야 할 시각 5분 전에 창밖을 확인했다. 역시 20여 년을 다녔더니 몸이 시간을 기억하는 것 같다. 낯익은 거리였다. 치과에 들어서면 늘 반겨주던 프런터의 여성은 보이지 않았다.

누구에게 왔다는 신호를 주어야 하는데 대기 환자들 외에는 보이지 않는다. 바쁘게 오고 가던 한 여성이 반갑게 인사를 해준다. “사람들이 좀 많네요. 잠시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주차장 옆으로 가서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고 기온은 봄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희뿌연 구름이 가득했고 담배연기는 짙게 눈을 가렸다. 한참이 지나고 다시 올라갔다. 조금 전에 보았던 바쁜 여성이 안내를 해 주었다. 그녀의 시키는대로 입안을 헹궜다. 잠시 후 친구 녀석이 다가와 잠시 입안을 보더니 잔소리부터 한다.




양치질 잘하라, 치실 잘 쓰라 하면서 조금 입안 여기저기를 만졌다. 손가락에서 약간의 먼지와 짠내가 느껴졌다. 내 입 안이 더러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친구 놈은 가고 다시 입 안을 헹구라는 여성의 안내를 따라 물 가글을 했다.

얼굴에 코와 입만 나오는 하얀 종이가 덮여지고 미리 심어놓은 임플란트 자리에 덧씌울 본을 떳다. 한참을 입을 벌리고 끝났다는 말에 일어서려는데 잠깐만 그대로 있으란다.

그리고 스케일링를 해드려도 되겠냐고 원장님 하며 물었다. 짧은 대답만 돌아왔다 “알아서 해요” 양치질을 해도 시원하지 않고 혀로 느껴진 이의 표면은 까칠까칠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스케일링을 한지도 1년이 된 것 같다. 안 아프게 해준다며 아~ 하라고 한다. 약간은 시릿시릿한 느낌과 차가운 느낌들이 계속되었다.

잠시 후 입안으로 부드러운 손가락이 느껴졌다. 같은 손가락인데 사람이 느끼는 것은 다르다. 부드럽고 갸냘프다. 한참을 입을 벌려서인지 혀가 움직였다. 이것은 분명히 내 의지와는 무관하다. 가끔 혀가 손가락에 닿을 때는 민망했다.

이렇게 치과에 와서 다른 여성의 손가락을 혀로 핥는다면 이건 성추행범이다. 그것도 현행범이다. 안 움직이려 노력했다. 내 신체의 일부를 내 의지로서 컨트롤 되지 않았다.

입안 이곳저곳을 움직이는 손끝은 부드러운 자극을 주었다. 어떤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친구가 갑자기 말했다. 너무 오래하는거 아니냐고? 그녀는 얼른 끝내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는 양치질하기 어려운 치아 안쪽을 손가락을 움직여 치료해주었다. 잘 보이지 않는 입안을 청소하려고 자세를 잡으려는 그녀의 자연스러운 자세의 변화 때문일까? 그녀의 숨소리가 느껴졌다.

그녀의 고개가 더 내려왔음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의 머리가 69자세가 되었다. 온몸의 신경세포는 민감도가 급상승하고 있었다. 머리카락도 쭈삣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평소에 거추장스럽기만 했던 머리카락 끝에도 감각 세포가 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 끝은 바짝 다가온 그녀의 가슴까지의 거리를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있었다.

그렇게 의지와 육신의 조건반사적인 반응이 싸우다 보니 어느새 진료는 끝났다. 마지막까지 상냥한 인사로 오늘의 진료는 끝났다. 생각이 어지럽다. 그 여성의 이름도 궁금했고 마스크 안의 얼굴도 궁금했고 좀 더 알고 싶어졌다.

예전에 봤던 영화가 생각이 났다. 그중의 한 남성이 매력적인 여성에게 당신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고 사랑의 마음을 표현했던 대사였다. 하지만 그것은 영화고 나는 현실의 환자일 뿐이다.

계속 쓰다가는 90년대 모교수처럼 난리가 날 것 같다. 강의 중에 잡혀가신 것처럼 치료 중에 잡혀갈 수도 있겠다. 그런 엉뚱한 변태적 생각을 하다보니 시간은 어느새 그 끝에 도착했다. 이름도 궁금하고 전화번호도 궁금했다. 머리가 나쁜 나머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도움이가 나타났다. 지금까지 전혀 도움 안 되던 친구 녀석이 ‘풀서비스를 했으니 커피나 한 잔 가서 사오라’고 한다. 그녀와 같이 갔다 오라고 하는 줄 알았다.

역시 사람은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같이 가자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니, 그녀는 친구녀석을 본다. ‘바쁜 사람이야, 혼자 같다 와’ 그 말은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그녀와 대화를 이어 가고 싶었다. 잠시 다음 진료 날짜를 잡자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간호사는 원장의 말을 들어야 한다. 이름과 핸번을 알아내려는 시도도 실패했다. 상실한 마음으로 커피를 가져다주고 나니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다.


그녀도 내게 호감이 있는 눈치였다. ‘아이고, 별말씀을요’ ‘이런 친절한 아가씨는 우리 며느리 삼고 싶네요’ 갑자기 주변이 폭소다. 나중에 안 내용이지만, 내가 작가인 줄도 알고 아이가 셋이 있다고 아실거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도 좋았다고 한다. 나오기 전 바쁘게 오고 가는 그녀를 잠시 쳐다보았다. 눈으로 오라는 말을 걸었다. 역시 마음이 전해졌다. 다가왔다.

‘ 내 20여 년을 다녔지만, 오늘처럼 진료 후에 기분이 좋아진 적은 처음입니다. 너무 감사해서 뭐라도 보내 드리려 합니다.’
‘아닙니다. 커피도 주셨는데...’

그러면서 내가 펜을 잡고 종이를 찾으니 한 쪽에서 메모지를 꺼내어 이름과 핸번을 적어 준다. 글씨도 예쁘다. 밖으로 나오는데 입에서 휘파람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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