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밖 아련한 어린 시절
나는 유치원을 다닌 적 없다. 거기는 잘 사는 집 아이들만 가는 곳이었다. 보통 2~3년 다니는 듯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천진난만하게 뛰어놀았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인지 뭘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저 동네 친구들과 해 질 녘까지 뛰어놀았다. 정확히는 무얼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국민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머리도 좋아진 것 같다. 개구쟁이로 놀기만 하던 모습들이 아련히 조금씩 기억난다.
어릴 적 모든 추억은 내가 자란 곳 부산에 전부 다 모여있다. 그전 기억은 거의 없다.
부모님 손을 잡고 야간열차를 타고 부산에 왔던, 저녁 무렵 시간, 피치 못할 사정으로 고향을 떠나야 했던 30대 초반 슬픈 얼굴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만 가물거린다.
추측 건데 고향에서 장사를 하셨다는 사실과 약주를 하시면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라는 아버지가 자주 부르시던 노래 가사가 아직도 귀에 맴도는 것을 보았을 때 말씀하시기 곤란한 사연이 있을 거라 짐작된다.
그러나 지금도 여기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부산은 서울 다음 가는 제2의 도시, 아시아 최대의 항구도시이다. 당시엔 몰랐지만 우리 집은 어려운 경제사정이었던 것 같다.
뭐 그때, 70년대는 다들 그러했지만... 하지만 유치원을 다녀야 할 시기의 기억은 어둡지만은 않다.
물론 지금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형들 따라다니며 놀고, 하숙을 하셨던 부모님 덕에 월급날이면 삼촌들에게 용돈도 받고 짭짤한 수입도 맛보는 시기였다.
하드(아이스크림)가 5~10원이었던 같은데 천원도 받고 했던, 꽤 큰돈이었다. 장기, 바둑도 알려 주셨고 나중에는 나와 내기도 하셨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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