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윤(가명)이는 최근들어 학교에 가는 것이 두려워졌다. 원인은 친구들과의 단체카톡방에서 시작되었다. 하윤이를 포함한 친한 친구들 6명이서 만든 단체카톡방은 방과 후에도 서로를 이어주는 창구였다. 한창 아이돌에 빠져있을 시기인지라 각자 좋아하는 아이돌 사진을 뿌리거나 새로운 정보나 굿즈를 파는 곳을 정보 공유하기도 했다. 최근 최애(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나 인물을 이르는 신조어)가 컴백해서 들뜬 하윤이는 자신의 최애가 찍힌 사진이나 영상을 실시간으로 단체카톡방에 보냈다.
들뜬 마음이 너무 과했던걸까, 얼마 뒤 하윤이는 아이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달라졌음을 느꼈다. 카톡방에서의 대화에서 자신의 톡에 대꾸를 해주는 일이 사라졌고, 묻는 말에도 답 없이 톡이 흘러가버렸다. 불안감이 마음에 점차 스며들즈음, 무리 중 한 친구가 작심한 듯 이야기했다.
"하윤아, 미안한데 우리한테 전부 사과해줬으면 좋겠어. "
이유인즉슨 이러했다. 단체카톡방에서 읽는 사람도 배려해줘야하는데 너무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내용만 뿌려대어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었다는 것이었다. '좋아하는 마음이 앞섰던것 뿐이었는데 - '생각했지만 무리에서 미움받고 싶지 않은 하윤이는 전부에게 카톡방에서 진지한 장문의 카톡을 날려 사과했다. 예민한 친구들의 마음을 미처 읽지못한 눈치 없는 자신의 실수라 생각하며.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다음날, 한 친구가 '생각해보았는데 너의 사과가 다소 성의없게 느껴져 더 상처를 받았다며 한 명 한 명에게 일일이 사과하는 것이 맞다'는 결론을 통보한 것이다. 그 친구는 얼굴을 마주보고서는 못할 뾰족한 말들을 거침없이 카톡방에서 써내려갔다. 진동이 울릴때마다 하윤이의 마음은 저 바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사과를 하면 사과한 내용 중에서 꼬투리를 잡아 사과를 요구했고, 그 사과들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사과지옥'이었다.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은 아무렇지 않게 함께 조모임 활동을 했고, 복도에서 지나가면 심지어 평소처럼 인사해주는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카톡방에서의 친구들은 전혀 다른 태도로 돌변했다. 하윤이는 손에 잡히지도 않는 이 카톡방이 점점 나가지 못할 감옥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요즘 청소년들에게 카톡과 같은 소셜네트워크는 일상 그 자체이다. 단순히 놀이나 재미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닌 많은 일상 대화들이 오가며, 심지어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카톡 등을 이용해 대화하는 경우가 있다. 방과 후에 집으로 돌아가면 잠시 멈추었던 친구들 사이의 소통이 이제는 방과후, 24시간 연결되어있는 시대이다. 또래문화에 관심이 커지는 초등 중고학년부터는 카톡으로 친구들과 방과 후에도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고, 보고있으며 주말까지도 가족들과 무엇을 하는지 서로에게 생중계가 된다. 아이들끼리도 '과잉연결시대'가 된 것이다.
문제는 온라인 공간은 현실 공간과는 달리 조금은 사회적인 규제에서 풀어지게 된다는 점이다. 비대면으로 이루어지는 소통이다보니 현실에서는 하지 않은 행동이나 말들도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 점에서 더 해방감을 느끼며 아이들은 디지털에서의 소통에서 자유로움을 느낀다.
'디지털 발자국'이란 개인이 인터넷을 사용하며 알게 모르게 남기게 되는 데이터 흔적을 말한다. 현실세계에선 금방 지워지는 말과 행동들이 온라인에서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남게 되며 좋든 싫든 미래의 나 자신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아이들에게 자신이 보내는 카톡 한 줄, SNS 게시물 하나, 댓글 한 개가 모두 '데이터 발자국'을 남기고 있음을 설명하며 데이터 특성 상 언제든지 복구되거나 널리 퍼질 수 있음에 유의하며 온라인 상에서는 더 신중하게 말하고 행동해야 함을 이야기 해야 한다.
우리는 누구든 온라인에서는 현실과는 조금 다른 성격의 온라인 자아를 갖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안좋은 쪽으로 발현되어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게 되어서는 안된다. 자신이 하는 말 한마디가 랜선 너머의 상대방에게 어떻게 가닿을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특히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시기의 청소년 아이들에게는 이 부분이 더 중요하게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상대에게 말하기 전, 자신이 말하는 내용을 소리내어 한 번 말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온라인 속의 글자로는 느껴지지 못했던 감정이 소리내어 말하는 순간 훨씬 더 생생하게 느껴지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