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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모 Aug 09. 2024

나무 키우는 법

2020년 늦여름, 집을 나왔다. 갈 곳 없는 나를 위해 친구는 자취방의 공간을 기꺼이 내어줬다. 그날은 비가 많이 내렸고 학교 앞 감자탕집에서 소연이를 기다렸다. 친구의 집에 도착해 짐을 풀며 “머리 좀 밀어줘. 완전 빡빡이로”라고 말했다. 소연이는 이유도 묻지 않고 알겠다고 했다. 아마 물어봤더라도 이유를 명쾌하기 설명하기 어려웠을 거다. 다음날 내 어깨에 커다란 보자기를 두르고 거침없이 머리카락을 자르기 시작했다. “근데 바리깡은 있어?”라고 물으니 소연이는 고양이 털을 미는 악어 모양 바리깡을 내밀었다. 전원을 켜자마자 그 조그마한 기계에서 “부아아앙!”하는 무시무시한 소리가 나왔다. 곧이어 바리깡을 머리카락에 가져다 대는 순간 고통스러운 비명이 새어 나오고 악어 이빨이 머리카락을 마구 쥐어뜯었다.


곧장 소연이가 근처에 살고있던 영욱이에게 연락해 인간에게 사용할 수 있는 바리깡을 빌려왔다. 알고 보니 영욱이는 스스로 머리카락을 다듬어 헤어스타일을 유지하곤 했다. 그 인간 바리깡의 주인은 그 후로도 이따금 내 머리카락이 지저분하게 자라면 솜씨 좋게 잘라주었고 나는 보답으로 돈까스를 샀다.

 겨울이 올 때까지 여러 친구의 집을 전전했다. 영화를 전공하는 소희의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혜림이의 집에서 지냈다. 친구들은 더 오래 지내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누가 눈치 주지 않아도 쭈글쭈글한 성격 탓에 결국 코로나로 폐쇄된 학교에서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짐을 챙겨 학교로 가는데 엘리베이터에서 선배들을 마주쳤다. 나는 누가 봐도 집을 나온 듯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는 게 조금 부끄러웠다. 선배들은 쿨하게 머리를 밀어줬던 소연이처럼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저 밥은 먹었냐고, 마침 김밥을 사 왔는데 네가 좋아하는 돈까스가 들었으니 같이 먹자고, 자기가 쓰던 라꾸라꾸를 가지라고 말했다. 또 다른 선배는 빡빡이인 내 두상이 예쁘다며 모델링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때부터 봄이 올 때까지 강의실에서 먹고 잠들었다. 아침에는 학교 차고지의 버스를 타고 이태원에 가서 일했고 저녁에는 예대 앞에서 농구를 하거나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했다. 샤워실이 뜨거운 김으로 가득 찰 만큼 목욕한 다음 이태원 가자주류에서 사 온 포트와인을 마시면서 잠들었다. 강의실 안은 빗소리도 잘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했기 때문에 그해 겨울 테라스에 첫눈이 내렸는지도 몰랐다. 수북이 쌓인 첫눈을 밟으면서, 나만을 위한 듯한 넓은 흡연 공간에서 능선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웠다. 그동안 머리는 삐죽삐죽 자라서 밤톨을 거쳐 고슴도치가 됐다.


하루는 온열기를 가까이 두고 자다가 침낭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어쩔 수 없이 침낭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학교 근처에 살던 다슬이 버리려던 담요를 가져와 바느질로 구멍을 메꿔줬다. 나는 언니의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1년 동안 그 침낭을 덮고 잤다. 우리는 자주 타란티노 영화를 봤고, 강의실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예대에는 늘 귀신이 나온다는 괴담이 맴돌았지만, 나는 그곳에서 한 계절을 보내는 동안 무섭거나 외롭지 않았다.


봄이 왔을 때는 새로운 집을 찾아 헤맸다. 강의실에서 지내는 걸 교수님이 달가워할 리 없었다. 다시 짐을 챙겨 45리터 배낭을 멨다. 가죽 재킷을 입고 농구공을 품에 안은 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모습이 생각난다. 멋진 재킷을 살 정도의 돈은 있었지만, 보증금이 부족했기 때문에 고시원에서 살기로 했다. ‘펜트하우스’라는 이름의 고시원을 포함해 네 군데 정도를 돌아다녀 보고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했다. 학교 정문과 가깝고 방에 화장실이 있는 게 마음에 들었다. 이사하던 날은 맑고 화창했다. 거미줄과 죽어있는 벌레를 치우고 구석구석을 닦으며 방이 참 작아서 청소하기엔 좋겠다고 생각했다. 언제든 빨래를 할 수 있었고 매일 햇반과 김치, 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진라면과 짜짜로니를 섞어 만든 진짜로니와 원산지를 알 수 없는 김치로 만든 김치볶음밥을 자주 먹었다. 진짜로니는 내가 개발했다고 생각해서 자랑스러웠고 김치볶음밥은 그 형광색 김치로 만들어야만 단맛과 짠맛의 조화가 훌륭했기 때문에 특별했다.


방음이 안 되는 고시원은 해도 아예 들어오지 않았지만, 나는 1년 넘게 그곳에서 스스로를 잘 키웠다. 졸업 전시에 몰두한 탓에 밥을 잘 챙겨 먹지 못할 때도 있었는데 그때도 친구들이 도움의 손길을 줬다. 민규는 대전에 다녀오면서 성심당 빵을 사다 줬고 재열은 스팸을 까만 비닐봉지에 가득 넣어 가져다줬다. 상은이는 방에 놀러 왔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람이었는데, 비좁은 침대에 붙어 자면서 내 살이 너무 뜨겁다며 옆으로 좀 가봐.라고 했었다. 나는 더 옆으로 갈 수 없는 걸 약간 미안해하면서 “더 갈 데가 없어. 그래도 비 오니까 좀 시원하지 않아? 바로 머리맡에 창문이 있잖아“ 라고 말했었다. 상은이는 밥을 잘 챙겨 먹으라고 말한 뒤에 잠에 들었었다. 나는 그 후에도 진짜로니랑 김치볶음밥을 자주 먹었고 상은이는 커다란 봉투에 빵을 채워 가져다주곤 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좀 더 넓은 집에서 산다. 계절에 따라 해가 들어오는 방향이 바뀌는 게 보여서 겨울이 왔는지, 봄이 왔는지 잘 알 수 있다. 풀과 나무와 눈이 쌓이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집이다. 그때 고시원에 왔던 상은이가 이사 후에 놀러 와서는 집을 선물해 줬다. 종류가 다른 나무를 깎아 만든 묵직한 집이었다. 문은 경첩을 달아서 여닫을 수 있고 자석을 달아 위아래로 조립이 되는 지붕은 촘촘한 비늘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상은이는 지붕을 가리키며 “만들면서 여러 번 피본 거 있지”라고 말했다. 걔 손가락에 밴드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내게 집이 특별한 의미일 것 같아서, 이렇게 집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고 했다. 어떤 나무로 만들었는지 종이에 적는데 그때 나를 기꺼이 받아준 친구들이 생각나 눈물이 났다. 나를 심고, 친구들이 주는 햇살과 물을 받으면서 자랐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빡빡이인 내 얼굴, 친구들과 안녕했다가 안녕하는 내 얼굴, 보금자리가 생길 때마다 안도하는 내 얼굴이 떠오른다. 떠났기 때문에 애틋하고 그리운 것들이다. 떠났기 때문에 새로운 것들도 있다. 상은이가 집을 선물해 준 날, 나는 드디어 나에게 도착했고 전보다 깊게 뿌리를 내리며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겨울잠을 자고 다시 자라나는 풀들을 보며 이곳에서 계절 몇 바퀴를 보내는 상상을 한다. 그 계절에만 자라는 식재료로 요리해 친구들을 초대하면서 뿌듯함이랄까, 흐뭇함이랄까. 아무튼 커다란 행복을 느낀다.


다만 떠돌아 살 때처럼 짐은 많이 두지 않았다. 이사를 해서 무언가를 새로 샀다고 할 만한 건 옷장 하나 정도다. 집에 놀러 오는 사람마다 ‘곧 이사 할 사람의 집’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글쎄, 매일 너무 과분하게 좋은 집이라 생각하지만, 아마 언제든 떠나고 싶어 하는 성격 때문에 이렇게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공간이 그다지 차지 않는다. 다만 상은이가 만들어준 집에 소중하게 여기는 작은 물건들을 집어넣는다. 거기에는 친구들에 대한 사랑, 내가 찾은 편안함이 들어있다. 떠나는 일은 슬프지만 떠나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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