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작가
딸이 열두 살이 된 기념으로 둘이 영화를 보러 갔다. 강동원이 나오는 늑대의 유혹이었다. 강동원 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장면. 비 오는 날 우산 속으로 뛰어든 남자 주인공이 우산 사이로 꽃처럼 웃으면서 나타나는 그 장면. 강동원의 얼굴을 보는 순간 딸과 나, 그리고 극장에 있던 모든 여자가 다 같이 “와.” 하면서 손뼉을 쳤다. 정말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오고 손뼉을 치고 있었다. 물론 갓 열두 살 된 딸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손뼉을 치고 있었다. 영화를 보던 모두가 같은 마음이라는 걸 알게 된 우리는 단체로 웃었다.
집으로 오던 택시 안에서 나는 딸에게 말했다. 강동원 같은 남자랑 결혼해야 한다고 힘을 주며 말했고 딸아이는 당연하다고 대답했다. 그런 아이가 동원이가 아닌 성원이랑 결혼하겠단다. 오래 알고 지낸 남자 친구였기에 우리 부부는 고민하지 않고 허락했다. 결혼은 외모보다는 마음이 더 중요하기에 착하고 듬직한 성원이가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야구 선수 출신에다 잘 생기기까지 하니 더 바랄 게 없었다. 그렇게 딸과 예비 사위 둘이 결혼 준비를 하게 되었다.
결혼식을 코앞에 둔 어느 날, 딸의 표정이 어두웠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싸웠다는 것이다. 결혼 준비하면서 싸울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울면서 얘기하던 딸이 갑자기 결혼하지 않겠단다.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딸 이야기만 듣고 판단할 수 없기에 예비 사위한테 집에 올 수 있는지를 물어봤다. 집에 온 성원이 표정도 어둡긴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밥을 먹고 술 한잔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부부는 결혼 경험자로서 서로 상황에 대해 들어주고 이해할 수 있도록 조언도 해주었다. 그리고 딸아이와 예비 사위에게 부탁의 말도 했다. 둘은 고맙게도 우리 부부의 말을 잘 들어주었다. 어두웠던 분위기가 밝아지면서 우리 넷은 웃으면서 술을 마셨다. 그 순간 갑자기 예전에 남편과 내가 싸웠던 일이 생각났다.
남편과 싸운 이유는 생각나지 않았지만, 그때 친정으로 갈 수 없었던 상황은 또렷이 기억났다. 남편이 맏이라서 시댁에서 살아야 하는 것 때문에 어머니가 결혼 반대했다. 그런 어머니에게 내 인생이라고 고집부려 겨우 결혼 승낙을 받았다. 살다 보니 싸우는 날도 있었다. 싸우고 나면 늘 남편이 자동차 키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면 나는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걱정했다. 그날은 그런 걱정하는 것도 싫어서 남편이 나가기 전에 내가 먼저 차 키를 들고 나와버렸다. 차를 몰고 친정으로 갔다. 친정 동네 가까이 갈 때쯤, 어머니를 볼 자신이 없었다. 반대한 결혼 하고 싸우고 가면 좋은 소리 못 들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길가 식당 앞에 차를 세워놓고 한참을 울었다.
그때 그 마음이 불현듯 떠올랐다, 혹시 딸도 그럴까 봐, 걱정되었다. 또 예비 사위에게 우리는 만만한 사람 아니란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한마디 했다. “만약에 결혼해서도 싸우게 되면 난 무조건 내 딸 편이네. 내 딸로 인해 만난 인연이기에 내 딸에게 어떤 일이 생기면 난 무조건 내 딸을 보호할 것이네.” 순간 성원이는 굳어버리고 딸은 웃었다. 바로 그때 남편이 말했다. “난 무조건 자네 편이네. 난 장남으로 살아봤기에 누구보다 장남 입장을 이해하네. 그리고 나도 남자라서 자네의 어려움을 잘 아네.” 이번에는 딸 입이 삐죽 나오고 성원이가 남편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결국 우리 부부는 서로 성별이 같은 사람끼리 편들어주기로 하고 술자리를 마무리했다.
그때 그래서일까? 사위는 장모인 나를 조금은 어려워하는 것 같다. 그리고 잘하려고 애쓰는 게 보인다. 그게 안쓰럽기도 하고 고맙다. 막상 살다 보니 난 딸보다는 사위 편을 들 때가 많다. 우리 집에 와서 사위가 크고 작은 불만을 이야기하면 나는 딸보다는 사위 편을 들어준다. 어느 순간 사위는 우리 집에 오면 좋은 일이 생기게 된다고 말한다. 나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다. 그런 내가 들었을 때 사위 말이 맞기에 편을 들 수밖에 없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딸아이가 강동원을 아니지만, 늑대와 결혼한 게 맞는 것 같다.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운 늑대가 유혹하니 넘어갈 수밖에. 제 식구 사랑하고 잘 챙기는 사위가 난 늑대라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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