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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 Aug 29. 2022

바다 소녀와 도시 소년

결혼 방학 #3

나는 당신의 기대대로 살기 위해 이 세상에 있는 게 아니고, 당신도 내 기대대로 살기 위해 이 세상에 있는 게 아니다. - 브루스 리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의 의미는 자신의 안에 있는 소녀소년을 꺼내 교류한다는 의미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미디어에서 흔히 보는 사회계층을 뛰어넘는 사랑, 친구들 간의 찐 우정에는 대외적으로 보이는 멋진 모습 외 자신들만 알고 있는 우스꽝스럽거나, 상처받았거나, 혹은 유별난 모습들이 서로에게 보이고 수용되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하고 그 속에서 그들만의 하위문화, 유대감이 형성되고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이는 우리가 성인이 되어가면서 사회의 요구, 자신의 바람에 따라 쓰는 가면과 관련이 있다. 어디선가 그 가면을 쓴 사람을 임포스터(imposter), 즉 진짜 행세를 하는 사기꾼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영상에서는 많은 사람에게 그런 면모가 있으며 가면을 쓰는 삶은 대외적으로 자신을 더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내적으로는 많은 갈등과 불안을 야기하고 결국 과도한 노력이나 현실 부정, 스트레스를 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내가 특별한 존재인 이유가 내가 특별하게 예쁘고, 매력적인 사람 이어서라기 보다는 그의 “소년”을 비교적 잘 알고 사랑하며 존중하는 사람이라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동일하게 나에게 그가 특별한 이유는 누구보다 그가 나의 “소녀"와 친밀하기 때문이라고 느낀다. (물론 그는 여러모로 매력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마치 어린 왕자에게 별에 두고 온 “까칠한" 장미가 지구에서 만난 수천 송이의 장미와는 다른 이유처럼 말이다. 함께 한 시간. 익숙해짐. 서로의 다름을 수용함.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함.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함. 그것이 지속되는 관계성이 가지는 요소들이 아닐까? 역으로 지속되지 않는 관계의 대표적 사례로 볼만한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성격차이로 헤어진다"에는 물론 감정의 끝, 성격의 차이도 존재하겠지만 서로의 다름에 대한 수용과 존중과 인정의 마음이 그 경계를 짓는 것 같다.


그가  삶에 인이라는 포지션으로 들어온   8년이 되었다.   우리의 관계성은 남자 친구/여자 친구에서 함께 여행하는 여행친구, 함께 사는 하우스 매이트/가족으로 변해왔다. 연애 초기, 사람들은 우리가 비슷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우리에게  의견 충돌이나 싸움이 없었기에 나도 사람들 말처럼 어쩜 우리가 비슷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남자 친구/여자 친구의 시기를 지나 1  함께 여행을 하며 우리의 다름 여러모로 도드라졌다. 서로  소리를 내며 싸운 적은 없지만 나는  생애 부모님 말고는 처음으로 세상 서럽게 울며 하소연하는 모습을 그에게 많이 보였다. 내가 소위 세계 여행 아니라 그에게로 여행이었다고 말한  여정을 함께 하고 돌아왔기에 함께  결심을   있었다. 하지만 여행 , 나는 우리가 비슷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점이 비슷한, 많이 다른 사람이라 생각했고 그러니 열린 마음으로 알려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규정지었다. 우리의 다름은 알면  수록 끊임없이 발굴되고 있다.


최근 크게 인식하게 된 다름은 습도에 대한 민감성이다. 운정에 살 때, 지인이 운정이 꽤 습해서 제습기를 여러 대 사용하고 있으며 습도 때문에 살기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운정의 뜻이 구름 우물이라는 것도 그쯤 알게 되었던 것 같다.) 나는 한 번도 습기로 인한 불편함을 생각을 해 본 적 없었다. 그에게 물었더니 그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던 그가 속초에 오자마자 습기 때문에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의 괴로움이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우리가 칠한 페인트 냄새나 혹은 에어컨 설치가 늦어지고 거실에서 자는 등의 초기의 불편한 환경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 요인을 습도로 규정짓고 나자 내 눈에는 습도계의 숫자가 유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에어컨을 틀어도 습도가 떨어지질 않는다면서 습기와 에어컨이 싸우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르게 인지되는 세상에 살고 있었다. 그게 유난히 힘들어 함에 따라 나는 그가 없었다면 아마도 눈치 채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습기의 존재를 인지하게 되었다. 그놈은 분명 우리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사실상 그를 괴롭히는 것에 비하여 내게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그는 여행 중에도 동남아 국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겨울에 태어난 사람이라 더위를 싫어하나 했는데, 그가 높은 온도보다 견딜 수 없던 건 높은 습도였나 싶다. 결국, 그는 나와 함께 여름을 속초에서 보내려던 계획을 뒤로하고 파주로 돌아갔다. 정확하게는 속초 온 지 한 달 만에 볼 일을 보러 서울, 파주에 함께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방학이 예상보다 일찍 시작되었다. 나는 그를 내쫓은 습기를 습도계를 통해 시시때때로 체크했다. 개인적으로 습기로 인한 불편을 거의 (처음에는 전혀 못 느꼈으나 인지하고 나자 지하주차장 곰팡이 냄새 같은 이런저런 소소한 불편이 습기 때문인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못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진짜 범인이 맞는지 혹은 다른 요인이 있는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알게 된 것은 파주와 속초는 평균 15% 이상의 습도 차이가 난다. 온도는 파주가 평균 1~2도 정도 높다. 내 몸을 살펴본 결과, 나는 비교적 건성 피부인데 요즘 보들보들하고 수분기 있는 피부가 유지되는 것 같다. 나는 29도에 80이 넘는 습도에서도 그냥 있으면 에어컨을 켜고 싶을 만큼 덥다고 느끼지 않는다(지금 이 순간). 체질일까? 바다에서 자란 환경 때문일까? 그와 통화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는 아무래도 우린 함께 살기엔 너무 다른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습도 민감성 차이가 헤어짐의 이유라면 그건 성격 차이보다 더 원초적일까? 우스울까?라는 생각을 했다. 종종 만나는 사람들은 우리를 그냥 성인 남성, 여성 커플이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그 안에 바다 소녀와 도시 소년이 살고 있는 걸 눈치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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